美 페리 제독 함대, 일본 앞바다에 출현
1853년 7월 8일 오후 5시쯤, 3500t급의 증기선 ‘사스크에한나호(號)’를 기함으로 한 4척의 증기선과 범선이 일본 에도(현재의 도쿄)만 우라가항 근해에 출현했다. 일본인이 ‘흑선(黑船)’이라고 칭한 배들은 1852년 […]
1853년 7월 8일 오후 5시쯤, 3500t급의 증기선 ‘사스크에한나호(號)’를 기함으로 한 4척의 증기선과 범선이 일본 에도(현재의 도쿄)만 우라가항 근해에 출현했다. 일본인이 ‘흑선(黑船)’이라고 칭한 배들은 1852년 […]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왼쪽)과 산타 크로체 성당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산타 크로체 성당과 산타 마리아 […]
↑ 초입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흥분과 기대가 얼굴에 가득하다. 1년 동안 기다렸으니 그럴만도 하다. ☞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의 아침가리 계곡은 […]
↑ 노구교 사건 다음날 노구교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일본군 1937년 7월 7일 밤 10시반, 의화단사건 후 베이징 루거우차오(蘆溝橋) 부근에 주둔 중인 일본군 1개 중대를 […]
1947년 7월 3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의 한 목장주가 전에 보지못한 커다란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는 부근에서 파편을 주워 보관하고 있다가 7월 6일 로즈웰 보안관에게 이 […]
재즈(Jazz)의 고향은 미 남부의 뉴올리언즈다. 때문에 재즈에서는 18∼19세기 이 지역 흑인 노예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온다. 이 곳 태생의 루이 암스트롱에게 뉴올리언즈의 공기는 어머니의 자궁과도 […]
1987년 연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해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고문을 받다 숨지고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발표가 이어지면서 전국이 들끓었다. 이런 와중에 5월 […]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7월 충북 단양에서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남양군도에 끌려갔던 조병기씨가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13년 간이나 남태평양 고도에서 혼자 짐승처럼 살다가 1955년 7월 […]
1099년 7월, 이슬람 세력이 1차 십자군 전쟁에서 패함에 따라 그동안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가 성지로 여겨온 예루살렘은 기독교 수중으로 넘어갔고 그곳에는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다. […]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