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밤의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으로 떠넘겨졌고, 두 사람은 논의 끝에 절충안으로 “서울의 중앙당에 속하되 북부지역 공산당 조직을 지도할 수 있는 중간기구로서 북조선 분국을 설치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10월 10일 비밀리에 소집된 ‘서북5도…대회’ 본회의에서 분국 설치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분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련 공산당의 1국 1당 원칙때문이다. 김일성은 이때 분국의 책임비서가 되지 않았다. 박헌영 등 국내파의 반발도 거셌지만 아직 김일성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소련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었다.

대신 소련은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10월 14일)를 평양에서 여는 등 그의 얼굴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김일성은 2개월 뒤 ‘북조선 분국’ 이름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꿔 책임비서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북조선공산당은 연안파가 주축을 이룬 조선신민당을 통합해 북조선노동당(북로당)으로 변신(1946년 8월)하고, 서울에서는 공산당·인민당·신민당 3당을 남조선노동당(남로당)으로 통합(1946년 11월)했다.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이 제대로 적용된 것은 1949년 6월 30일이었다. 이날 남․북 노동당은 평양에서 연합중앙위원회를 열어 당 이름을 ‘조선노동당’으로 바꾸고 김일성을 위원장, 박헌영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형식상으로는 합당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흡수였다. 남로당계가 몰락하는 시발이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북조선분국이 설립된 10월 10일을 당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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