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헌트 모건
초파리를 본격적으로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초파리는 먹다가 방치해 놓은 과일 그릇 속에서 흔히 발견된다고 해서 영어로는 ‘fruit fly’로 불린다. 식초같이 신 것에 잘 날아든다고 해서 우리말로는 ‘초(醋)파리’라고 한다. 몸길이는 2~3㎜에 불과하고 번식력이 뛰어나며 생명 주기가 짧다. 알에서 성충이 되는 데도 2주일이면 충분하고 수명은 2~3개월을 넘지 못한다. 초파리는 이처럼 그저 그런 존재인데도 오늘날 유전학, 발달생물학, 노화 연구, 진화 등 각 방면의 연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0년 3월 발표된 초파리 게놈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초파리의 유전자는 사람의 질병 유전자와 75% 일치하고 유전자 수(1만 3,600개)도 사람(2만 6,000~4만 개)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초파리 유전자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생명체는 많지만 3개월 만에 초파리의 일생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명이 긴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유용하다.
초파리를 과학계에 데뷔시킨 학자는 1900년 하버드대 윌리엄 캐슬 교수였지만 초파리를 본격적으로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학자는 미국 컬럼비아대의 토머스 모건(1866~1945) 교수였다. 모건은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거부였고 외증조할아버지(프랜시스 스콧 키)는 미국 국가를 작곡한 유명 변호사였다. 아버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주재 미국 영사를 지내면서 가리발디의 이탈리아 독립 투쟁을 지원했고 삼촌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의 장군이었다.
모건은 어릴 적부터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 캔터키주립대(현 캔터키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바다거미의 진화적 관계를 연구해 1891년 존스 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펜실베이니아주 브린모어여대의 생물학과 교수를 거쳐 1904년 뉴욕 컬럼비아대로 전직했다.
학자로 활동하던 초기에 모건은 염색체가 유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멘델의 유전 이론을 믿지 않았다. 당시 모건의 관심을 끈 것은 100년 전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제창한,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잘 발달하고, 그렇지 못한 기관은 점점 퇴화·소실된다는 ‘용불용설’이었다. 그래서 착수한 것이 동굴 속에서 동물의 눈이 퇴화하는 현상에 대한 재현 실험이었다.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다고 가정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이 변하는 것이므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맞다면 하루종일 컴컴한 곳에서 동물을 기를 경우 쓸모없어진 눈은 언젠가 퇴화할 것이고 퇴화된 눈은 유전될 것이라고 믿었다. 모건은 초파리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퇴화된 눈이 여러 세대를 거쳐 유전되면 자연히 앞이 보이지 않는 초파리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험은 대학원생 퍼낸더스 페인이 맡아 1908년부터 진행했다. 페인은 암실에서 2년 동안 69세대째 초파리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나 초파리의 눈이 퇴화하지 않는 등 기대했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실험을 중단했다.
모건이 다음 연구 과제로 삼은 것은 초파리에 방사선을 쪼여 인공적으로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드는 실험이었다. 방사선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돌연변이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초파리의 번데기·애벌레·알에 방사선을 쪼였다.
그러던 중 1910년 5월 마침내 모건이 기대한 결과가 나타났다. 사육하던 초파리 1,000여 마리 중 3마리에서 흰눈 초파리가 태어난 것이다. 일반 초파리들은 눈이 붉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정확한 답을 찾으려면 더 많은 실험이 필요했다. 모건은 흰눈 초파리와 정상적인 붉은눈 초파리를 교배하는 실험도 시작했다. 하지만 교배로 태어난 1세대(F1) 초파리는 실망스럽게도 암컷 수컷을 불문하고 모두 붉은눈이었다.
그토록 기대하던 흰눈 초파리는 1세대의 붉은눈 초파리들을 다시 교배했을 때 태어났다. 멘델의 연구에 따르면 우성과 열성 형질은 3 대 1 비율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모건의 2세대(F2) 초파리들도 붉은눈 3에 흰눈 1이었다. 붉은눈의 초파리는 모두 3,470마리였고 흰눈은 782마리였다. 약간의 오차를 감안한다면 이 수치는 멘델의 3 대 1 법칙에 가까웠다.
또 하나 새로운 패턴이 발견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암컷과 수컷의 수는 비슷했지만 흰눈 초파리의 비율만은 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붉은눈 초파리는 암컷이 2,459마리, 수컷은 1,011마리인 반면 흰눈 초파리는 수컷이 782마리나 되었는데도 암컷은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멘델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멘델의 법칙에 따르면 제2세대에서 수컷이든 암컷이든 4분의 1이 열성 유전자인 흰눈을 갖고 태어나야 했다. 물론 다른 교배에서는 흰눈을 가진 암컷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흰눈 형질은 항상 암컷보다 수컷에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났다.
막연히 가정으로만 존재했던 유전자 실체 드러나
모건은 만약 어떤 유전자가 X염색체에 실려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했다. 당시는 이미 성을 결정하는 인자로 ‘성염색체’의 존재가 밝혀져 있었다. 초파리의 성염색체는 사람과 같은 구조였다. 즉 수컷 초파리는 어미에게서 물려받은 X염색체와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Y염색체를 갖고 있고 암컷 초파리는 각각 아비와 어미에게 물려받은 X염색체를 2개 갖고 있었다.
모건은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되면 수컷 초파리는 눈 색깔에 대한 유전적 지시를 단 하나만 물려받는 반면 암컷은 두 가지 지시를 다 물려받게 된다. 붉은눈은 우성이고 흰눈은 열성인 상황에서 수컷 초파리는 단 하나의 X염색체를 가지므로 흰눈이 열성 형질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발현된다. 반면 암컷은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므로 정상 X염색체가 우성이면 우성 형질이 먼저 발현되기 때문에 열성인 흰눈은 태어나지 않게 된다. 물론 2개의 X염색체 모두 열성이면 흰눈이 태어났다. 수컷 초파리보다 암컷 초파리에 흰눈이 적게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모건은 이 실험을 통해 X염색체에 초파리 눈의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유전자가 염색체에 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염색체설’의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동안 멘델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건도 결국 멘델의 연구 결과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모건과 연구원들은 새로운 돌연변이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등이 굽은 형, 노란 몸, 작은 날개를 비롯한 40종류의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모건 연구팀은 새롭게 발견한 돌연변이를 체계적으로 교배하고, 교배된 자손들을 다시 그들의 부모와 형제 혹은 다른 돌연변이들과 교배하는 실험을 계속 이어갔다. 그 결과 막연히 가정으로만 존재했던 유전자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유전학은 유전자가 어떻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모건은 ‘초파리에서의 유전적 전달 메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기술도 모건 연구팀이 초파리를 대상으로 만든 유전자 지도 작성 원리가 바탕이 되었다. 방사선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위험에 눈을 뜨게 해 준 것도 초파리 연구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