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스페인 바스크족의 분리 독립 위한 무장투쟁 단체 ‘ETA(바스크 국가와 자유)’ 창설

 

바스크족은 기원전 2세기부터 차례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로마군과 서고트군 그리고 이슬람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와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민족 자체가 일반 스페인 사람들과 다른 데다 언어까지 판이하게 달라 스페인 주류 사회와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21세기 현재 스페인 북동부에 250만명, 프랑스 남서부에 50만명가량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우스카라’라는 고유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인 스페인어나 프랑스어와 완전히 달라 언어학자들은 유럽에서 인도·유럽어가 퍼지기 전에 쓰이던 언어가 살아남은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아직까지 형성 기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순수 바스크인의 약 85%가 ‘Rh-’ 혈액형이라는 점도 ‘바스크 신화’로 불리며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길게 뻗은 코, 두터운 눈썹, 강한 턱뼈를 특징으로 하는 얼굴 형태도 스페인 지역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고 키도 평균 3㎝ 정도 크다. 이런 이유로 바스크인들은 오래전부터 스페인 중앙과 별개의 자치 사회를 만들어 운영해왔다.

사정이 이런데도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가 바스크 자치정부를 중앙정부에 강제 합병하고 바스크 고유 언어까지 사용을 금지하는 등 탄압을 가하자 바스크인들은 중앙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게다가 19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에서 제철업을 중심으로 공업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그 영향으로 대표적인 공업지대를 이룬 덕에 다른 지방보다 부유해진 것도 독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프랑코의 탄압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을 더욱 결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립운동은 강경과 온건 노선으로 갈라졌다. 온건파이면서 다수파인 바스크 국민당은 합법적 수단을 통한 자치 확대와 독립을 추구한 반면 1959년 7월 31일 창설된 좌익 무장세력 ‘ETA(바스크 국가와 자유)’는 즉각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ETA는 1968년 첫 암살 테러를 시작으로 납치, 폭탄 테러, 암살 등으로 프랑코 정부에 대항했다. ETA는 경찰, 정치인, 언론인은 물론 조직원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법조인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테러를 자행했다.

1975년 프랑코 사후 1978년 신헌법이 제정되고 1980년 자치주 의회 선거를 실시, 카탈루냐 지방과 함께 자치권을 회복해 활동이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1990년대 들어 다시 테러 활동을 강화해 스페인 중앙정부에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40여 년간 829명이 숨질 정도로 ETA의 테러는 집요하고 대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상당수 바스크인이 ETA의 무장 테러에 싫증을 내고 고향을 떠나는 일이 많아지자 ETA는 2011년 10월 무기를 내려놓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2014년 2월 실제로 무장해제를 시작하면서 바스크의 분리 독립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2018년 5월 2일에는 공식 해산을 선언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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