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잘못 없는 여성 스타 일순간 파멸과 고통으로 몰아가
1998년 12월, 서울 세운상가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미스코리아 출신 유명 탤런트의 섹스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1999년 1월 인터넷 ‘유즈넷’ 뉴스그룹 페이지에 이 탤런트의 섹스 스틸 사진이 뜨면서 탤런트의 실명이 거론되더니 급기야 2월부터는 그녀의 섹스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전국을 강타했다. 언론이 모(某)양, A양, O양으로 기사화하면서 동영상에는 그녀의 이름 이니셜을 딴 ‘O양 비디오’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이름은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이중성과 인터넷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는 상징어가 되었다.
꼭꼭 숨겨져온 개인의 성생활 그것도 유명 스타의 성이 이처럼 만천하에 까발려진 예는 없었다. 매일 TV에서 접하던 유명 여성 스타의 발가벗겨진 성을 안방과 사무실에서 은밀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꿈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호기심이 폭발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집단 관음’이라며 점잖게 나무라는 전문가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모두가 동영상을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O양 비디오’ 얘기뿐이었다. 동영상을 보지 못하면 대화에도 끼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소문으로만 돌다가 그쳤을 일이 이처럼 빅뱅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전적으로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과 보급에 있었다. 그때까지 인터넷이 편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실감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자기복제와 무차별 유통을 통해 괴물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채우는 데만 머물지 않고 O양을 향해 돌팔매를 던졌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우리 사회를 매우 빠르게 파고들었는데도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터져나온 ‘O양 비디오’를 계기로 아무 잘못 없는 여성 스타를 일순간 파멸과 고통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런 점에서 O양은 인터넷이라는 문화적 충격의 희생양이기도 했지만 누군가 맞아야 할 돌을 대신 맞아 그 자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순교자이기도 했다.
‘O양 비디오’, 21세기의 우리에게 의식 전환을 요구한 화두
개인의 성은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이란 의식이 자리 잡은 것은 전적으로 O양의 희생 덕이었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했으며 몇 년 후 누군가가 그 테이프를 유포했다. 그녀가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사회가 막연하게 요구해온 윤리규범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피해자인 O양에게만 돌이 날아왔다는 점에서 그것은 부정을 저지른 서구 여인이 가슴에 달아야 했던 주홍 글씨와 다를 바 없었다. 쏟아지는 비난과 인생 파멸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던 O양은 수개월 후 미국에서 돌아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했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역시 피해자였는데 무엇이 죄송했을까.
겉으로는 성에 무관심한 척하다가 남몰래 탐닉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 심리가 일으킨 폭발적인 반응과, 뒤이은 손가락질을 홀로 이겨내기에는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었겠지만 크게 보면 20세기 마지막 해에 우리 사회에 던진 문화적 충격을 혼자 뒤집어썼기 때문일 것이다. ‘O양 비디오’는 채 준비되지도 않고 경험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믿기지 않는 사실에 우리의 의식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데서 온 당혹감이었고 충격이었다. 그것을 O양 혼자서 맨몸으로 맞은 것이다.
다소의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O양 비디오’를 본 뒤 더 이상의 호기심이 사라졌는지는 몰라도 대중의 집단 흥분 상태는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O양 비디오’ 사건은 21세기의 우리에게 의식 전환을 요구한 화두였다.
‘B양 비디오’, 돈벌이로 배포되었다는 점에서 악질 중의 악질
2000년 봄이 되자 이번에는 “유명 가수 B양의 비디오가 있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만 비디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일본 에로배우의 포르노물이거나 합성한 것으로 추측되어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0년 11월 19일 한 연예 관련 사이트에 일부 네티즌이 B양 동영상을 띄워놓으면서 비디오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녀는 혜성과 같이 등장해 1년 반 만에 톱스타 대열에 오른 유명 댄스 가수였다. 비디오 중간의 일부만을 공개한 이 샘플에는 풀 버전을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결국 이 사이트는 한때 서버가 중단되었다. 한국인이 임대한 미국의 이 포르노 사이트는 동영상의 풀 버전을 19.9달러로 제공하면서 복사를 방지하기 위해 잠금 기술을 적용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유통되었던 ‘O양 비디오’와 달리 ‘B양 비디오’는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통해 돈벌이를 목적으로 배포되었다는 점에서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그러나 유료로만 볼 수 있다던 ‘B양 비디오’도 11월 26일 밤 일부 해커(크래커)들이 복제 방지 암호를 푼 뒤 개인 사이트에 게재하고 이 동영상이 계속 복제·유포되면서 인터넷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돌변했다. 대기업의 메인 서버가 한때 다운되고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 계열사에서는 공문이나 사내 통신을 통해 “B양의 파일을 유통하는 직원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단속하는 일도 벌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범인은 B양의 데뷔 당시 매니저이자 비디오 속 남성 파트너였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1998년 12월 B양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가지고 이 같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검찰 조사 밝혀졌다.
B양은 용기 내 대처했으나 세상은 여전히 가혹해
그런데 ‘B양 비디오 사건’은 유포 과정과 네티즌의 뜨거운 반응만 같았을 뿐 이후의 전개 양상은 ‘O양 비디오’와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O양 비디오’라는 예방주사 덕에 돌팔매를 던지는 사람들이 적었고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던 O양과 달리 B양의 태도는 어느 정도 당당하기까지 했다. 연예인 ‘모(某)양’이 ‘A양’을 거쳐 ‘O양’으로, 이것을 다시 탤런트 ○○○양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Q양 혹은 B양이 댄스가스 △△△양으로 바뀌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은 것도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부아가 치밀고 분통이 터졌지만 또한 본인도 피해자였지만 그래도 B양은 파문이 서둘러 가라앉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세상과 타협한 O양의 방식을 택했다. 처음에는 합성이라며 모른다고 했다가 상대 남성의 등장으로 ‘몰카’라고 변명을 하기까지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로 B양은 초기에 네티즌의 비난을 샀다. 그렇다고 해도 그 누구도 B양을 비난해서도 안 되고 비난할 수도 없다. B양의 변명은 20대 여자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엄청났기에 어쩔 수 없는 방어법이었다.
다행인 것은 뒤로는 즐길지언정 앞에서는 점잖은 태도를 취해야 했던 O양의 386 팬들에 비해 “매춘도 아닌 사생활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B양의 N세대 팬들의 목소리가 한결 커졌다는 점이다. 24살의 B양도 용감했다. 비난의 화살을 피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숨기긴 했지만 11월 29일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눈물의 고백을 하고는 예정된 일정 중 일부를 소화했다. 개인 콘서트를 했고 3집 앨범을 냈으며 방송 컴백을 시도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가혹했다. 누구도 B양을 방송에 못 나오게 하지는 않았지만 방송사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고 2006년 6월 마침내 B양은 노래 ‘사랑 안해’로 다시 가요 순위 정상에 올랐다. 그날 B양은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쏟아냈다. B양에서 가수로서의 온전한 자기 모습을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