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 ‘프로듀서 1호’였고, 그의 부인 마현경이 ‘아나운서 1호’였다. 한국의 방송사(史)는 이날의 정규 라디오 방송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나라가 없었던 일제 하에서 ‘6번째’는 그저 무의미한 수치에 불과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없으면 첨단 문명을 경험할 수 없다. 쌀 한가마니 가격이 5원이었을 때 월 2원인 청취료도 부담스러웠지만 수신기(라디오)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1~2명만이 들을 수 있는 미약한 수신기는 10∼15원이었고 가족용 수신기는 100원, 고급 수신기는 4000원이나 호가했다. 수신 계약조건도 까다로워 대문 밖에 청취 허가장을 붙여야 했고, 도청하는 사람은 1000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을 각오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팔려나간 라디오 수신기는 개국 1주일 후 1440대(한국인 275대 포함), 그해 연말 5260대로 증가했으나 점차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5년 후에는 1만 4000여 대에 머물렀다. 방송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7시간을 총독부로부터 허가받았으나 장비부족과 인력 문제로 규칙적이지 않았다. 개국 초기의 방송 언어는 한일 양국어 편성비율을 3대7로 했다가 1933년 조선어 방송채널인 연희방송소가 개소되고부터는 일본어방송을 제1방송, 한국어방송을 제2방송으로 하는 2중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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