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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국립공원] ③ 초암사~국망봉~비로봉~비로사… 철쭉 절정기 놓쳤어도 초록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힘든지 몰라

↑ 어의곡 삼거리에서 비로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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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3㎞에 6~8시간

☞ 초암사~국망봉~비로봉~달밭골~비로사

 

by  김지지

 

소백산은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이다. 주능선 상의 주요 봉우리는 비로봉(1439m), 국망봉(1420m), 제1연화봉(1394m)이다. 3개봉은 백두대간 구간과도 겹친다. 북쪽에서부터 늦은맥이재(1260m)~국망봉(1420m)~비로봉(1439m)~연화봉(1383m)~죽령(689m)~도솔봉(1314m)~묘적봉(1148m)~묘적령(1020m)이 소백산을 관통하는 백두대간 구간이다. 3개봉에서 지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내린 지능선과 계곡을 합친 것이 소백산국립공원이다. 해발 1300m 이상의 고봉들이 줄지어 있어 험하거나 날카로운 암산(巖山)일 것 같지만 실은 부드럽고 순한 토산(土山)이다.

주요 들머리는 단양의 어의곡과 천동, 영주의 희방사, 초암사, 비로사이고 단양·영주 경계의 죽령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초암사로 올라가 비로사로 내려오는 산행에 남수 선근 정형 태훈이 동참했다. 철쭉축제가 막 끝난 2023년 6월 3일이었다.

소백산 국립공원 지도. 초암탐방지원센터와 주차장 표시가 없어 등산객이 들머리를 정하는데 불편하다.

 

■들머리와 날머리

승용차를 몰고 산행지로 갈 때 먼저 고려할 것은 원점회귀 여부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른 종주가 불가피하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초암사와 비로사의 경우, 어디를 들머리로 삼는게 좋을지 몰라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그 코스를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해서 산행기를 찾아봤으나 현지 지리에 익숙지 않아 잘 와닿지 않는다. 평소 힘든 코스를 들머리로 잡고 쉬운 코스를 날머리로 잡는 우리의 산행 패턴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산행 거리가 긴 초암사를 들머리로 잡는 게 맞다. 해서 소백산국립공원의 탐방로등급지도를 참고해 초암사 아래 주차장을 살펴보았으나 주차장 표시가 없다. 심지어 초암사에서 가까운 초암탐방지원센터(이하 초암센터) 위치 표시도 없다. 사설 지도를 살펴봐도 초암사에서 2.8㎞ 아래의 배점주차장 뿐이다.

산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2.8㎞나 걷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자 선근이 꾀를 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의 날머리 예정지인 비로사 부근에 달밭골 마을이 있고 그곳에 유황족욕카페가 있다. 등산객 차량은 비로사 아래 삼가탐방지원센터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진입할 수 없지만 유황족욕카페에 들어간다면 허용한다. 이런 점을 이용해 유황족욕카페에 주차한 후 달밭재~초암사~국망봉~비로봉~달밭재로 돌아와 족욕을 한 후 차량을 회수하자는 안이었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계획을 짜고 있던 중 초암사 아래에 초암센터와 주차장이 있다는 걸 선근이 뒤늦게 알게 되면서 우리의 들머리는 순식간에 초암센터로 바뀌었다.

초암탐방지원센터

 

소백산국립공원 지도에 초암센터와 주차장이 표시되어 있다면 일찌감치 이 코스로 결정했을텐데 지도에 표시가 없는 바람에 뒤늦게 코스가 확정되었다. 초암센터 주차장에서 출발해 초암사 → 국망봉 → 비로봉 → 달밭재를 거쳐 초암센터로 원점회귀하면 차량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지 지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달밭재~초암사 간 3㎞ 길에 대한 확신이 없고 13㎞ 거리에 3㎞를 추가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달밭재 아래 비로사로 택시를 불러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나중에 산행을 다녀와 소백산국립공원에 전화를 걸어 지도의 문제점을 알려주니 자기들도 그제서야 알았다며 고마워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택시를 불렀지만, 서로 다른 들머리와 날머리를 이어주는 ‘소백내차를부탁해’ 시스템도 있다. 카톡에서 ‘소백내차를부탁해’를 검색하면 상세한 내용을 알려준다. 이 시스템은 들머리 주차장의 특정한 곳에 키를 꽂아두면 조력자가 그 키를 찾아 날머리에 차량을 갖다놓는 방식이다. 현재 이 교통시스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의곡, 천동, 죽령, 희방사 네 곳이다. 천동~어의곡 구간만 3만원 내외일 뿐 나머지 구간은 4만~5만원 수준이다.

 

■초암사~국망봉~비로봉~비로사 코스

우리 산행은 초암사탐방지원센터(주차장) → 초암사 → 주능선 → 국망봉 → 조금전 주능선으로 Back → 어의곡삼거리 → 비로봉 → 달밭재 → 비로사 코스로 진행된다. 13㎞ 거리에 6~7시간이 걸린다.

초암사에서 주능선 오름길

 

▲초암탐방지원센터~봉두암쉼터~주능선

초암센터에서 주능선까지 오르막 구간(4.7㎞)은 여름에는 국립공원 사이트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산행한 날은 등산객이 적어서 그런지 예약을 하지 않아도 초암센터에서 예약을 받아준다. 주차장이 제법 넓다. 초암센터에서 초암사까지는 0.6㎞, 돼지바위까지는 4.1㎞, 국망봉까지는 5.0㎞다. 초암센터에서 초암사까지는 포장도로로 15분(0.6㎞) 정도 거리다. 죽계구곡 위를 가로지르는 죽계2교와 죽계1교, 그리고 초암사 일주문이 그 사이에 있다.

초암사 전각들이 새로 단장한 듯 모든 게 깔끔해 고찰·대찰의 느낌이 없다. 해서 평범한 사찰인 줄 알았는데 나름 유서가 있는 비구니 암자다. 사찰 내 삼성각 앞에 돌로 만든 개가 한 마리 앉아있어 알아보니 앞쪽의 원적봉이 초암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도둑과 같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성했다고 한다. 초암사 관련 이야기는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초암사 앞 계곡은 3㎞ 길이의 죽계구곡 중 제2곡이다. 그곳에 거대 바위 청운대가 있다. 가장 상류의 제1곡이 ‘금당’이고 하류의 제9곡이 배점주차장 부근의 ‘이화동’이다. 조선 명조 때 풍기군수 퇴계 이황이 계곡의 절경이 아름답고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랫소리 같다 하여 굽이마다 절경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 주며 ‘죽계구곡’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줄기 따라 콘크리트길이 이어져 절경과는 거리가 있다. 계곡의 규모 또한 다른 명산 계곡에 비해 크지 않아 인상적이지 않다.

초암사 일주문(왼쪽)과 들머리

 

초암사를 지나면 곧바로 ‘달밭골·국망봉 가는길’이라고 쓰여 있는 진입로다. 뒤이어 거리 표지판이 나오는데 국망봉 4.1㎞, 비로사(자락길) 3.1㎞로 되어 있다. 여기서 비로사(자락길)를 따라가면 비로사가 나오지만 그 전에 비로사에서 멀지 않은 달밭재를 지난다. 달밭재 길은 전체적으로 오르막인 <초암사→비로사> 길보다는 내리막인 <비로사→초암사> 길이 좋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초암사에서 국망봉 오르막은 전체적으로 완만하다. 숲이 깊어 조망은 없지만 온통 초록 세상이다. 반듯한 목교 4개, 정돈된 돌길, 목책길, 데크계단이 이어져 호젓하다.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이어져 땀도 식힐 수 있다. 초암사 진입로에서 1시간 40분 정도 오르면 데크로 만든 첫 조망쉼터다. 조망은 그저 그렇지만 잠시 숨을 고르기에는 적격이다.

쉼터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봉두암쉼터다. 이곳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신라시대 사찰 석륜암 터이기도 하다. ‘소백산 낙동강 발원지’라는 빗돌이 세워져 있고 봉황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높이 18미터의 거대하고 늠름한 봉바위가 우리를 내려다본다. 예전에는 봉바위 아래에 샘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등산객들이 샘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메워져 있다.

봉두암쉼터(왼쪽)와 봉바위

 

봉바위에서 데크계단을 따라 3분쯤 오르면 눈코입이 돼지와 정말 흡사한 돼지바위가 어서 오라는 듯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두툼하고 푸근한 옆모습이 영락없는 돼지 얼굴이다. 돼지바위 옆에 포즈를 취한 선근과 비교하니 얼굴 높이는 3m, 몸 길이는 7~8m가 되어 보인다. 돼지바위를 지나 0.6㎞의 급경사 데크계단을 쉬엄쉬엄 50분 정도 올라가면 국망봉으로 이어진 소백산 주능선이다. 태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하면서도 천천히 올라가는 태훈 덕분에 우리도 천천히 올라가니 급경사라 해도 거뜬하다. 선근은 무릎이 아프다면서 사뿐사뿐 잘도 걷는다. 천하무적 남수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는데 평소 무겁게 갖고다니는 배낭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거운 배낭을 메지말라는 경고 사인으로 이해했다. 천하무적 남수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는데 평소 무겁게 갖고다니는 배낭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거운 배낭을 메지말라는 경고 사인으로 이해했다.

참고로 전문가들은 “보통 배낭 무게가 3~4kg만 넘더라도 근육통을 유발할 수 있고 장시간 메고 다닐 경우 심하면 허리디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배낭 무게가 1㎏ 증가하면 무릎이 받는 하중은 4~5배 증가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는 가방무게가 몸무게의 7~8% 이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배낭을 꾸릴 때는 가벼운 것을 아래에 넣고 무거운 것은 배낭 등판 가까이에 붙여 넣어야 한다. 그래야 무게 중심이 배낭 상단 등판 쪽으로 쏠리며 등에 착 달라붙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낭 무게가 어깨에 집중되지 않도록 허리끈을 충분히 조여야 한다. 배낭은 절대 어깨로 메는 것이 아니다. 어깨로 백패킹 배낭을 메고 산행하는 것은 근육통과 디스크 증상을 유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배낭은 몸 전체로 메는 것이다. 특히 허리끈을 골반 위에 걸치도록 하여 적절히 조여 줘야 몸의 중심인 골반으로 무게를 분산하게 된다. 그래서 배낭을 고를 때도 등판이 잘 맞는지만 보지 말고, 허리끈이 맞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돼지바위

 

▲주능선~국망봉~비로봉

들머리에서 4.7㎞ 거리의 소백산 주능선에 올라서자 비로소 소백산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좌우로 뻗은 주능선이 소잔등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남서쪽(왼쪽)으로는 2.8㎞ 떨어진 비로봉(1439m)을 거쳐 연화봉(1383m)~도솔봉(1314m)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백두대간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북쪽(오른쪽)으로는 암봉인 국망봉(1420m)이 우뚝 솟아 있다. 국망봉까지 0.3㎞를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게 내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 갈 수도 없어 국망봉을 향해 걷는다. 철쭉축제가 며칠 전 끝나 철쭉의 절정이 지났어도 늦게 핀 철쭉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몇 년 전 6월 4일 이곳을 찾아왔을 때도 철쭉이 지나 아쉬웠는데 이처럼 철쭉의 개화시기를 맞추는 게 어렵다.

주능선에서 바라본 국망봉

 

소백산은 철쭉 산행의 원조다. 웅장하고 부드러운 소백산릉에 분홍색 철쭉이 핀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지금이야 전국적으로 철쭉 명산으로 이름난 곳이 많지만 예전에는 지리산 세석과 더불어 소백산 철쭉의 명성이 자자했다. 철쭉은 꽃이 작은 산철쭉과 꽃이 크고 연분홍빛이 도는 철쭉으로 나뉘는데, 소백산에서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철쭉나무들이 터널을 이룬다. 소백산에서도 철쭉 군락지로 인기있는 곳은 상월봉~국망봉, 비로봉~연화봉 일대다. 그중에서도 상월봉~국망봉 일대가 호젓하고 빼어나다.

소백산 철쭉

 

국망봉에는 스토리가 있다.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고려의 왕건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허사로 끝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려 국망봉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이후 국망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국망봉에서 평평하게 이어진 초원 능선을 따라 1㎞ 정도 지난 곳에 상월봉(1272m)이 있다. 상월봉이 장화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국망봉

 

국망봉에서 조금전 주능선을 지나 비로봉까지 가는 능선 거리는 3.1㎞다. 사실 소백산의 산행 맛은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능선을 걷는 것이다. 소백산을 자주 찾게 되는 것도 이 능선길 때문이다. 국망봉~비로봉 능선은 숲길이다. 2년 전 겨울,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갈 때는 한겨울의 나목(裸木)을 수목으로 인식하지 못해 숲이 없는 평탄한 초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온통 숲이다. 그리고 그때는 평탄한 능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한참을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하는 안부도 있고 능선길이 생각보다 길었다. 결국 국망봉에서 비로봉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다. 길을 가다가 만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필시 안내산악회 단체 회원들이다. 정신없이 따라가야 하는 안내산악회의 산행 방식은 쉬엄쉬엄 걸으며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는 우리의 산행 체질과는 맞지 않는다. 물론 안내산악회의 장점도 많다.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고 여러 산을 가봤다는 기록으로 남기려면 안내산악회가 좋다.

국망봉 쪽에서 바라본 비로봉과 연화봉 능선

 

▲비로봉~달밭골~비로사

비로봉(1439m)은 길게 펼쳐진 소백산 주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백산 최고 조망대다. 북쪽으로는 국망봉 능선이, 남쪽으로는 연화봉 능선이 끝을 보여주지 않은 채 오르락내리락 길게 이어져있다. 남쪽으로는 지리산·덕유산에서나 볼 수 있는 깊은 계곡과 너른 숲이 시원하게 펼쳐 있다. 정상은 어의곡, 죽령, 희방사, 천동, 비로사, 초암사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광장이기도 하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어의곡삼거리~국망봉 능선

 

전국 어느산에 가도 이처럼 길다란 능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비로봉의 너른 정상부에는 돌탑이 놓여있고 사방을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와 벤치도 있다. 소백산 비로봉의 ‘비로’는 비로자나(毘盧遮那)의 준말이다. 비로자나는 부처의 진신 즉 법신불의 존칭이며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금강산·오대산·치악산·묘향산도 정상이 비로봉이다. 정상은 아니지만 속리산에도 비로봉이 있다.

비로봉 정상석(왼쪽)과 비로봉 아래 모습

 

비로봉에서 20분 정도 머문 뒤 하산을 시작한다. 비로사까지는 4.0㎞, 그 아래 삼가주차장까지는 5.5㎞다. 하산길 초반은 급경사의 데크계단이지만 곧이어 잘 정돈된 돌길과 야자수 메트 그리고 잘 다져진 흙길이 이어져 힘든지 모른다. 삼가샘터 데크와 양반바위를 지나면 적송 군락지와 전나무 숲이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있다. 달밭골까지 내려가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달밭골은 소백산 제1자락길의 중간에 자리 잡은 산촌이다. 10여 가구가 산 곳곳에 숨어있듯 띄엄띄엄 살고 있다. 해발 690m의 높은 위치와 청정한 자연에서 자란 산나물이 달밭골의 대표 특산품이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해 음식점과 민박 등을 겸한한다. 족욕카페도 있다.

달밭골에서 초암사까지는 3㎞ 거리의 자락길이다. 우리처럼 초암사에 주차한 등산객들이 원점회귀하는 길이기도 하다. 달밭골에서 초암사 가는 자락길은 잠깐의 오르막을 거쳐 초암사까지 2㎞의 내리막이다. 다녀온 산행객의 말에 의하면 초암사에서 달밭골로 가려면 오르막 때문에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도 시간상 달밭재를 거쳐 초암사로 갈 수 있었으나 지레 겁을 먹고 비로사에서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달밭골

 

달밭골에서 1㎞ 가량 차도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비로사다. 우리는 하산 중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비로사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달밭골에서 비로사까지 1㎞ 길이 번거롭게 느껴져 달밭골로 올라오도록 요청했는데 흔쾌히 응해준다. 게다가 비로사도 둘러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었다. 당초 기사가 요청한 택시비는 초암센터까지 3만 5000원이었으나 고맙게 생각해 4만원을 전했다. 내 경험상, 전국 어딜 가나 개인택시 기사들은 친절하다. 지역 정보도 풍부하다. 이곳 택시기사도 친절해 전화번호(010-3522-9371)를 남긴다. 오늘 산행 거리는 12.24㎞였다. 평균보다 많은 7시간 30분이 걸렸다.

비로사는 비교적 규모가 큰 전각들이 계단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초암사처럼 최근에 지은 듯 새 절이어서 고찰의 느낌은 없다. 그러나 설명에 따르면 680년(문무왕 20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로 불상, 당간지주 등의 유물이 남아 있어 이 절의 깊은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비로사 입구 좌측 위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영주삼가등 당간지주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비로사 경내에는 거북받침 위에 비신을 세운 진공대사 보법탑비가 있다.

 

■초암사와 비로사

소백산은 화엄교의 원천이면서 한국불교 신앙의 뿌리로 인정받는 산이다. 중국 당나라 유학 후 귀국할 때 화엄종을 들여온 신라말 의상대사(625~702)가 화엄사상을 가람으로 형상화한 사찰이 소백산에 산재한 부석사, 초암사, 비로사, 성혈사 등이기 때문이다. 초암사는 전해오는 창건 얘기가 흥미롭다.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었는데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사찰을 세워 초암사(草庵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초암사의 사세가 대단했다는 것은 초암사 주변 암자에서도 드러난다. 1549년 퇴계 이황이 소백산을 유람하고 기록으로 남긴 ‘유소백산록’을 비롯한 자료에 따르면 초암사 부근에는 석륜암 등 여러 암자가 있었다. 하지만 창건 이후 초암사 연혁은 전하는 것이 거의 없고 6·25때 소실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도 초암사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주시사’(2010년)에 따르면 한일합방 직후 영주경찰서장으로 와 있던 일본인이 초암사에 있던 이 불상을 훔쳤는데 1912년 한 일본인이 이 불상을 조선총독부에 기증하고 1916년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초암사

 

의상대사가 창건한 비로사도 한동안 위세가 대단했다. 고려 태조는 비로사 진공대사를 존경해 입적 후 시호와 함께 탑호를 내렸다. 지금도 남아 전해오는 진공대사보법탑비가 그것이다. 왕이 김부식으로 하여금 부처님 치사리를 봉안토록 하고, 고려말 고승 환암대사가 중창했다. 조선 초에도 한글 창제에 앞장섰던 김수온이 왕실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불타 숙종 때 중창했지만 다시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영주 삼가동 석조 당간지주, 진공대사탑비, 적광전의 보물 제996호 석조아미타불과 석조비로자나불 등 신라말 고려초 귀중한 유물이 남아 오랜 역사를 전한다.

초암사와 비로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신 초암사에는 대적광전이, 비로사에는 적광전이 있다. 불교에서 전(殿)은 부처와 보살을 모신 곳이고, 나머지를 모신 건물은 각(閣)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즉 붓다를 법당 한가운데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법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란 뜻이다. 주불 양편에서 보좌하는 협시불은 법당마다 차이가 난다.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절도 있고, 붓다의 십대 제자인 가섭존자·아난존자를 모신 곳도 있다.

적광전(寂光殿) 혹은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연꽃에서 태어났다는 석가모니불의 정토)의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세계에서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 대적광불로도 불린다. 격을 높여 대적광전 혹은 적광보전이라고도 하고 비로전 화엄전 광명전 대광명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불교의 수많은 경전 중 ‘화엄경’을 으뜸으로 치는 화엄 계통의 사찰에서 본전으로 삼는다. 어떤 전각이 본전인지를 알면 그 절이 불교의 수많은 가르침 중 어떤 걸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비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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