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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여기저기] ① 숨은벽 ~ 영봉 : 숨은벽과 인수봉에서 아우라와 광채가 뿜어 나오고 거대 암벽의 자장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아

↑ 너럭바위에서 올려다본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왼쪽부터)

 

by 김지지

 

☞ 코스와 거리 : 총 7.3㎞

밤골공원지킴터 →(숨은벽 능선 2.8㎞)← 구멍바위 →(깔딱고갯길 0.9㎞)← 백운대피소 →(1.0㎞)← 하루재 →(0.2㎞) → 영봉 →(1.5㎞)← 육모정고개 →(1.1㎞)← 육모정고개지킴터

☞ 산행 시간 : 6시간 30분

 

■숨은벽을 찾아서

고교 친구 몇몇이 평소 북한산 숨은벽 능선이 좋다고 말해 궁금했다. 해서 추석 연휴를 맞아 대학 친구들에게 산행을 제안하니 흔쾌히 수락한다. 그렇게 떠난 숨은벽 능선 산행이 이뤄진 건 2020년 10월 2일. 동행자는 희용 동규 태성 정형 이렇게 넷이다. 태성에게 숨은벽은 처음이라니까 자신은 몇 번 다녀왔다며 심지어 나와도 함께 다녀왔다고 한다. 기억력 비상한 태성의 말이니 직접 올라가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결론은 초행길이 분명했다.

이름이 왜 숨은벽일까.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거대한 암벽인데도 북한산 초입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숨은벽은 급경사의 200m 암벽이다. 인수봉처럼 수직은 아니어도 경사도가 높다. 따라서 일반 등산객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숨은벽 코스가 인기가 많은 것은 숨은벽 아래까지 이어진 암릉을 따라 올라가면서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 등 거대한 암벽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북한산 주요 출입구에서 탐방객 6000여 명을 대상으로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무엇이냐’고 설문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숨은벽 단풍(11%)이 4위를 차지했다. 백운대 일출은 22%의 득표율을 얻어 1위에 올랐고 2위는 오봉(16%), 3위는 인수봉(14%), 5위는 북한산성 성곽(7%)이다. 북한산을 수십차례나 올랐는데도 그동안 숨은벽을 뵙지 못했다니 숨은벽에 송구할 따름이다.

 

 

▲능선길

숨은벽의 교통편은 대중교통과 승용차다. 대중교통은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704번 장흥행 시내버스나 34번 의정부행 시외버스를 타고 밤골 입구인 효자2동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승용차는 들머리 입구에 20여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만 늦어지면 만차이므로 서둘러야 한다. 들머리는 버스 하차 후 국사당 안내판이 있는 쪽으로 200~300m 올라간 곳에 있다. 밤골공원지킴터다.

그곳 안내판이 왼쪽길로 백운대(숨은벽)까지 4.3㎞, 오른쪽길로 백운대(밤골계곡)까지 4.1㎞임을 알려준다. 왼쪽은 능선길이고 오른쪽은 계곡길이다. 두 길은 정상 능선을 오르기 전 숨은벽 바로 옆에서 합류한다. 효자2동 정류장의 다음 정류장인 사기막골에서도 숨은벽으로 오를 수 있다. 사기막골은 밤골공원지킴터와도 연결된다. 북한산둘레길(백운대 방향)을 따라 1㎞를 걸으면 이곳에 닿는다.

밤골공원지킴터

 

우리 코스는 백운대(숨은벽)를 가리키는 왼쪽 능선길이다. 초반에는 비교적 완만한 소나무숲을 지난다. 경사는 점차 높아져 중경사를 거쳐 거친 숨소리와 땀방울을 요구하는 급경사로 치닫는다. 50분 정도 걸었을 때 만난 안내판이 우리가 밤골지킴터에서 2.2㎞ 올라왔고 사기막공원지킴터에서는 2.1㎞ 올라왔음을 알려준다. 백운대까지는 아직 1.9㎞ 남았으니 긴장을 풀지말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안내판의 밤골지킴터는 계곡길이고 사기막공원지킴터는 능선길로 내려가 사기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므로 사실상 능선길을 말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바람에 1주일 뒤 계곡길로 올라가 능선길로 하산할 때 밤골지킴터가 능선길인 줄 알고 그 길로 들어섰다가 올라왔던 계곡길로 다시 내려가야 했다. 밤골지킴터 옆에 괄호로 (계곡길)이라고 표시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다시 20분 정도를 오르니 급경사 바위길이다. 곧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아 왼쪽으로 우회한다. 그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가까이는 영장봉이, 멀리는 북한산의 효자리 계곡과 상장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그 너머에는 왼쪽으로 도봉산의 오봉이 오른쪽으로 자운봉·만장봉·선인봉 등 도봉산의 우뚝한 봉우리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성채를 이룬다.

왼쪽으로 우회하지 않고 바위에 오르면 해골바위다. 바위 윗면에 2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그곳에 물이 고여 있어 해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해골바위를 지나 또다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 오르면 숨은벽 능선에서 최고 조망을 자랑하는 너럭바위(또는 마당바위)다, 다만 경사가 심한 슬랩이어서 나같이 짧은 다리나 주말 등산객이 오르기에는 버겁다. 슬랩이란 바위 표면에 요철과 홀드(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바위나 약간 나온 부분)가 없는 매끄러운 경사 바위를 말한다.

해골바위

 

너럭바위와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숨은벽·인수봉·백운대

너럭바위에 올라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운데 숨은벽, 왼쪽 인수봉(810.5m), 오른쪽 백운대(836.5m)가 “수고했다 어서오라”며 손짓한다. 너럭바위에서 보면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로 숨은벽이 솟구쳐오른 모양새다. 세 봉우리를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힘들게 올라온 시간도 한순간에 보상을 받는다. 다른 등산객들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백운대 너머로는 만경대(799.5m)가 몸을 숨기고 있고 백운대 오른쪽으로는 염초봉(662m)이 편안하게 누워있다.

저 아래가 너럭바위

 

특히 인수봉과 숨은벽은 우람하고 장엄하다. 거대한 암벽에서 아우라와 광채가 뿜어 나오는 듯 하고 과장하면 거대 암벽의 자장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인수봉의 뒷면(북쪽)은 남쪽 백운대피소에서 보이는 매끄러운 모습과 달리 울퉁불퉁 근육질이다. 트랜스포머의 변신 로봇같다. 인수봉 북벽 능선은 백운대 정상에서 보면 악어등처럼 생겼다해서 악어능선이다. 북한산에서 눈이 가장 먼저 쌓이고 가장 늦게 녹는다고 해서 ‘눈쌓인 성밖의 벽’이라는 뜻의 설교벽(雪郊壁)으로도 불린다.

백운대는 동서남 3면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이지만 숨은벽 아래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면 온갖 나무들이 바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곳에 단풍이 들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앞서 말한 ‘숨은벽의 단풍’이란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운대 북사면(北斜面) 단풍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너럭바위 주변을 살펴본다. 바위 틈에 뿌리 내리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가을인데도 솔잎이 연초록이다. 비록 모진 비바람에 한쪽으로 기울어있어도 전혀 기죽지 않은 늠름한 모습이다. 너럭바위 아래에 해골바위가 보이는데 이름이 왜 해골바위인지는 이곳에서 내려다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

백운대 북사면 단풍. 오른쪽 끝 바위가 장군봉이다.

 

너럭바위를 지나면 바위 사이에서 무리지어 사는 송림을 지나 숨은벽 능선의 날등을 지나게 된다. 양옆은 깎아지른 수직 절벽이다. 안전장치가 없고 폭이 넓지도 않아 아찔하긴 하나 나같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도 걸어갈 정도이니 위험하지는 않다. 그렇게 15분쯤 올라가면 숨은벽의 위용을 바로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전망바위다. 화강암 특유의 편안한 색깔에 거대한 경사면이 매끄러운데도 맞딱뜨리는 순간 압도당한다. 저 아래 너럭바위가 원경 조망터라면 이곳 전망바위는 인수봉과 숨은벽의 근육과 핏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근경 조망터다.

 

숨은벽 릿지 등반

일반 등산객은 숨은벽 아래에서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포기하고 전망바위와 숨은벽 사이에 뚫려있는 구멍바위 오른쪽으로 급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백운대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 <추락위험지역 출입제한> 설명문이 있다. 요점은 안전장비 착용하고 2명 이상 이동하고 위험지역과 날씨를 살펴보라는 내용이다. 암벽등반 기술은 기본이다. 숨은벽은 암벽 아래 출발점에서 정상까지 길이가 200m나 되고 양 옆은 깎아지른 듯한 50m 이상의 절벽이다. 따라서 일반 등산객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 숨은벽 정상을 향해 암벽을 오르는 릿지 등반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인수봉(왼쪽)과 숨은벽

 

‘릿지(Ridge)’는 원래 능선을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우리나라 산꾼들에게 ‘릿지’는 바위가 많은 암릉을 뜻한다. 릿지 등반은 일반적인 바위산 등산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암벽등반 장비를 갖춰야 하고 암벽등반 기술도 익혀야 한다. 북한산에는 원효봉 릿지, 염초봉 릿지, 망경대 릿지, 인수봉 릿지, 숨은벽 릿지 등 여러 암릉이 뻗어 있다. 그중 숨은벽 릿지는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고 스릴과 절경을 모두 느낄 수 있어 북한산의 여러 릿지 등반 가운데 최고 인기다. 릿지 등반에 갓 입문한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도 숨은벽 릿지다. 해서 염초 릿지, 만경대 릿지와 더불어 북한산 3대 릿지 코스로 꼽힌다.

 

인수봉·백운대 한 눈에 들어오는 북한산 최고 조망터

숨은벽 아래 구멍바위를 지나 150m쯤 내려서면 ‘밤골공원지킴터 2.8㎞, 백운대 1.3㎞’  안내판이 보인다. 밤골매표소 방향이 계곡길이다. 이곳에서 백운대로 오르다보면 깔딱고개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30분쯤 오르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바위 사이 통로가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안내판이 있다. 오른쪽으로 500m를 가면 위문을 지나 백운대이고 100m를 직진하면 도선사나 영봉으로 이어지는 백운대피소라는 안내다. 우리의 목적지는 영봉이므로 백운대로 가지 않고 부근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백운대피소와 하루재를 지나 영봉으로 떠날 예정이다.

점심을 마치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왼쪽의 인수봉 아래 숲으로 이동하는데 자일을 이용해 인수봉 위아래 암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모습이 힐끗힐끗 보였다. 자세히 보려고 인수봉 쪽으로 다가가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멋진 조망터가 나타난다. 신세계다. 그곳에는 평평하고 너른 바위가 있고 주변에는 고운 색깔의 소나무들이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고깔 모양의 거대한 인수봉 남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10여명의 전문등산객이 부슬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각기 다른 코스에서 자일에 의지한 채 내려오고 있다. 개미처럼 보였다.

인수봉 앞에서

 

인수봉은 전체 형상이 마치 어린아이를 업은 듯 하다고 해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리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대포알을 세워놓은 듯한 200여m의 화강암 봉우리는 산악인들의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인기가 높다. 서쪽 백운대 위에는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일반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다. 만경대도 보이나 부슬비 때문에 흐릿하다.

조망터에서 인수봉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종일 바라봐도 질릴 것 같지 않다. 북한산 최고 조망터 중 하나일텐데 왜 이제야 알았는지 이해가 안됐다. 해서 북한산의 모든 코스를 꿰뚫고 있는 희용에게 물으니 자신도 몰랐단다. 다음에 올 때는 이곳에서 인수봉과 백운대를 바라보면서 점심을 해결하리라 마음먹고 하산하니 바로 아래가 백운대피소다. 정리하면 도선사에서 올라온다고 했을 때 백운대피소에서 왼쪽길로 올라가면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위문이고 대피소 뒤쪽 길로 올라가면 앞서 소개한 최고 조망터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숨은벽 정상(왼쪽)과 전망바위(오른쪽)

 

▲계곡길

숨은벽 능선길을 따라 영봉까지 다녀오니 새롭게 궁금한 게 생겼다. 하나는 초입에서부터 백운대 아래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계곡길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숨은벽 뒤에 우뚝 서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숨은벽 정상 모습과 인수봉의 옆모습이었다. 여기에 “다음에 올 때는 인수봉 아래 전망터에서 점심을 먹으며 감상해야겠다”고 한 1주일 전 나와의 약속도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해서 숨은벽을 다녀온지 정확히 1주일만인 10월 10일 또다시 숨은벽을 찾아갔다. 1주일 전 먼저 다녀왔다고 해서 마치 전문가인 양, 숨은벽 초보자인 고교 동창 선근이를 꼬드겼더니 넘어온다. 경기도 죽전에 사는 선근이가 이른 아침에 기꺼이 차를 몰고와 마포의 나를 픽업해 국사성황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한 두 대 주차공간이 있다.

계곡길은 초반의 모든 명산이 그러하듯 부드럽고 유순하다. 계곡은 비교적 넓게 발달했으나 가을이라 물은 없다. 여름철에 다시 찾아오면 짙은 그늘과 콸콸 흐르는 계곡물이 반길 것 같다. 초입에서부터 완만한 숲길을 20분 정도 걸으니 비교적 규모가 큰 폭포가 나온다. 수량은 적으나 맑고 투명하다.

폭포

 

폭포 오른쪽 데크를 지나 치고 올라가는데 앞서갔던 젊은 여성이 거꾸로 내려오면서 “계곡 오른쪽길이 아니라 왼쪽길”이라며 그 길로 걸어간다. 얼떨결에 우리도 여성을 따라 계곡 왼쪽 급경사 산길로 올라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참을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그 길이 아닌 것 같아 가던길을 멈추고 살펴봤더니 그 길은 이 글 위에서 소개한 안내판(밤골지킴터 2.2㎞, 사기막공원지킴터 2.1㎞)이 세워져 있는 능선길과 만나는 길이었다.

결국 다시 계곡쪽으로 내려가 백운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1시간 정도를 오르니 삼거리다. 왼쪽으로 가면 1주일 전 숨은벽 앞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왔던 급경사길이고 직진하면 역시 급경사의 백운대 방향이다. 계곡길 초입에서 2.8㎞ 올라온 삼거리에서 백운대까지는 1.3㎞다. 저 아래 폭포에서부터 계곡길이 급경사라는 것은 막연히 느꼈지만 우리가 숲 한가운데 있어 어느 정도인지는 실감할 수 없었다. 나중에 능선길로 하산할 때 내려다보니 경사가 거의 45도는 될 정도로 급해보였다.

 

인수봉 아래 전망터에 서니 삼라만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해

계곡길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으니 다음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숨은벽 정상 모습을 알아볼 차례다. 그러러면 다시 백운대 아래까지 급경사의 돌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돌계단을 워낙에 잘 정돈해놓아 나무데크를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 것 같다.

백운대와 숨은벽 뒷봉우리 사이 좁은틈을 지나면 갑자기 세상이 확트인다. 이제 인수봉 아래 멋진 조망터를 선근에게 알려줄 차례다. 1주일 전 바람대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데 쾌청한 가을 날씨에 따사로운 햇살이 더해져 밥맛이 꿀맛이다. 무엇보다 바로 앞 인수봉 바위 무대에서 수 십명은 될 듯한 배우들이 우리를 위해 줄타기를 하며 바위에 오르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인수봉 옆에서 바라본 오봉과 도봉산 능선. 오른쪽 가까운 봉이 영봉이다.

 

1주일 전에는 가랑비가 내려 도봉산 쪽이 흐릿했는데 오늘은 날씨 덕에 사방이 뚜렷하다. 가까이로는 영봉과 상장능선이, 멀리는 오봉과 도봉산 줄기가 길게 뻗어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은 물론 그 너머 알지 못하는 이름의 산들도 멋진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덕분에 세상의 삼라만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지만 행복한 경험이다.

1주일 전 왔을 때는 궂은 날씨여서 금방 내려갔으나 이날은 천천히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암벽등산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려는 등산학교 팀이 여기저기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20~30대 젋은이들이 많이 보여 대견하고 흐뭇했다. 상투적인 얘기 한마디.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인수봉 아래 전망터에서 현장 학습 중인 등산학교. 저 멀리 백운대 보인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봉우리에서 숨음벽 정상을 내려다보는 맛이란…

마지막 궁금증을 해결할 차례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놓인 봉우리에 올라가 숨은벽 정상을 내려다보고 정상적인 등산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인수봉 옆구리를 보는 것이다. 봉우리까지는 5~10분이면 충분하다. 그곳에서 숨은벽 정상을 내려다보니 삐죽 튀어나온 모습이다. 그곳에도 암벽을 타고 정상으로 올라오는 사람, 먼저 정상에 올라가 쉬는 사람 등 암벽 크라이머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묘기를 뽐내고 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백운대 북사면 능선이 아래로 길게 뻗어있고 그 끝에 장군봉이 마치 원숭이나 코끼리 모습으로 백운대를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에서 인수봉 옆구리를 오르고 내리는 클라이머들끼리 주고받는 얘기까지 뚜렷하게 들린다.

숨은벽 정상(왼쪽)과 인수봉 옆구리(서쪽)와 정상 모습

 

계곡길로 올라왔으니 능선길로 하산한다. 힘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암릉 위를 걸어내려가며 사방의 암벽과 멋진 조망을 감상하는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다만 안내판을 잘못 이해해 능선길을 끝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중간에 계곡길로 내려간 것은 아쉽다. 그러면서도 능선길로 올라갈 때 잘못 알고 올라갔던 코스를 내려갈 때 또다시 잘못 알고 같은 길로 내려간 것은 그 길에 뭔가 나를 끌어들이는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낸다. 능선길 하산이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아침 역광을 피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선근의 성능좋은 휴대폰으로 멋진 사진을 많이 건졌다.

숨은벽 아래에서 포즈 취한 선근

 

■우이령에서 영봉으로

백운대피소에서 영봉으로 가려면 인수구조대를 지나 하루재까지 1㎞를 가야한다. 하루재에서 직진하면 백운대지킴터나 도선사 쪽으로 내려가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영봉(604m)이다. 하루재에서 영봉까지는 200m에 불과하지만 급경사여서 길게 느껴진다. 태성이가 “또 올라가냐”며 툴툴거린다.

우이령에서 올라가 영봉을 거쳐 하루재로 내려갔던 2년 전과 달리 하루재에서 바로 영봉으로 올라가니 과거 하산할 때 보이지 않던 장소들이 눈에 들어와 새롭다. 희용이가 “그래서 일부러 올라간 길과 같은 길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마디 한다. 영봉에 올라 인수봉을 바라보았으나 정상 부근이 비구름에 가려 머리가 잘려나간 모습이다.

영봉 정상 전 기념촬영

 

영봉만 오르려는 등산객을 위해 우이령에서 영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살펴본다. 들머리는 우이령 출발지에서 10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있는 육모정공원지킴터다. 그곳에서 영봉까지는 2.6㎞ 거리다. 육모정공원지킴터를 지나면 산으로 난 오솔길이다. 그 길을 따라 15분(1㎞) 정도 올라가면 소나무 사이로 단아한 돌계단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곧바로 영봉 줄기를 배경으로 자리잡은 용덕사다. 계곡 가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으로 사찰 내 공간은 넓지 않고 가람은 단출하다.

용덕사

 

경내에 들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약간 앞쪽으로 숙어진 커다란 바위벽에 새겨진 5.12m 높이의 마애약사여래불이다. 멀리서 보아도 흰 달빛으로 빛나는 만월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마애불은 여성약사불이어서 인근 도선사의 남성약사불과 함께 부부약사불로 불린다. 사찰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마애불의 조성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발행한 문헌에는 ‘사찰이 1910년경 창건되었다고 구전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용덕사 뒤에는 거대한 바위 아래에 조성한 산신각이 있다.

용덕사를 지나 숨이 헐떡거릴 쯤 깔딱샘이 있다. 보랏빛 꽃도 길가에 피어있다. 처음 보는 야생화여서 사진을 촬영한 뒤 알아보니 산부추란다. 한 시인은 산에 핀 산부추를 보고 “밤하늘 높이 쏘아올린 폭죽이 연이어 터지며 빛을 뿜는 모습 그대로”라고 표현했다.

영봉 능선에서 촬영한 산부추

 

육모정고개를 지나 급경사길을 지나면 영봉 능선의 봉우리에 이른다. 한눈에 도봉산과 북한산이 조망된다. 가운데 왕관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상장능선이 길게 뻗어있고, 오른쪽으로 오봉과 우이암을 위시한 빼어난 절경의 도봉주능선이 멀리 자운봉으로 이어져 있다. 뒤이어 헬리포트를 지나면 마침내 영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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