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바위에서 바라본 가마봉~옥녀봉 능선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거리와 시간 : 6.5㎞, 6시간
☞ 산행 코스 : 수우도 전망대 (1.6㎞) 지리산 (2.1㎞) 달바위 (0.8㎞) 가마봉 (0.5㎞) 옥녀봉 (1.5㎞) 여객선 터미널
사량도와 지리산은
경남 통영 사량도에 명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년쯤 전이다. 10여 년 전부터 전국 산하를 주유하면서 사량도의 그 명산을 의식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인연이 맺어진 것은 2024년 5월 6일이다. 동행자는 대학 친구 희용 부부와 우리 부부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 그 산의 이름은 맑은 날엔 저 멀리 지리산이 바라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智異望山)’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리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량도는 욕지도, 매물도, 한산도 등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섬이다. 다만 다른 섬들과 달리 ‘지리산’ 하나로 무명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섬이다. 산의 높이라고 해야 400미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등산객들이 전국 섬 산 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 산림청-월간산 지정 100대 명산 반열에도 올랐다.
사량도는 상도(윗섬)와 하도(아랫섬)가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에 잔잔한 동강(桐江)이 흐른다. 바닷물이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흐른다 해서 붙여진 것일 뿐, 진짜 강은 아니다. 사량도를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은 통영 가오치항과 미수항, 고성 용암포, 사천 삼천포항에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통영 가오치항이다. 사량도 상도에는 지리산·달바위·옥녀봉 등이 성채를 이루고, 하도에는 칠현산(349m)이 일곱 봉우리를 이룬다.
‘사량(蛇梁)’의 한자는 ‘뱀 사(蛇)’와 ‘들보 량(梁)’이다. ‘뱀 사(蛇)’ 자가 들어간 데는 섬의 모습이 뱀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상도와 하도 사이의 해협이 마치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했다는 설, 섬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설 등이 있다.
사량도 종주 코스
통영 가오치항을 떠난 여객선 사량호가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사량대교 아래를 지나 사량도 금평항에 도착한 것은 출항 47분 후였다. 도착 전, 여객선에서 바라보이는 사량도의 암봉들이 산성처럼 길게 이어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사량대교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오른쪽 상도보다 왼쪽 하도의 칠현봉 바위 능선이 더 멋을 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리산~달바위~가마봉~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상도의 암릉 종주길을 걸어갈 것이다.
산행은 섬의 서쪽에 위치한 돈지마을에서 출발해 낙타 등처럼 이어진 능선을 지나 금평항으로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울릉도처럼 순환도로가 뚫린 후부터는 등산객들이 돈지 보다 고도가 더 높은 수우도 전망대에서 출발하는 것을 선호한다. 금평항에서 들머리까지 교통 수단은 섬을 하루 7차례 순환하는 공영버스다. 동쪽의 금평항을 들머리로 삼아 서쪽의 수우도 전망대로 하산할 수도 있으나 산꾼들은 섬의 서쪽(지도상 왼쪽)에서 동쪽(오른쪽)으로 종주하는 방식을 권한다. 산길이 좁고 등산객이 많아 산에서 마주칠 경우 허비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란다. 결론은 금평항에서 버스로 이동한 수우도 전망대에서 시작해 능선을 종주하고, 금평항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우리 코스는
금평항에서 내려 수우도 전망대를 지나는 순환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방금 전 떠났다고 한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2만 원을 달라는 택시를 타고 수우도 전망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 대부분은 수우도 전망대에서 먼저 수우도와 남해도의 탁 트인 조망을 즐긴 뒤 출발한다.
들머리에서 가파른 오르막 흙길을 10여 분 오르니 오른쪽 돈지마을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고 길은 쉬워진다. 다시 10분 정도 진행하니 물고기 비늘 모양의 거대 바위가 쉬어 가라고 자리를 내준다. 저 멀리 금평항이 내려다보인다. 들머리에서 40분쯤 지난 곳부터 암릉이 시작된다. 절벽 위를 지나는 아슬아슬한 길이지만 튼튼한 목책 덕분에 위험하지는 않다. 다시 암릉과 흙길을 따라 30~40분 걸어가니 마침내 정상인 지리산(398미터)이다. 사실 2.1㎞ 앞에 지리산보다 2미터 더 높은 달바위가 있지만 사량도는 지리산에만 유일하게 ‘산(山)’ 자를 붙여 사량도를 대표하는 정상으로 삼는다.
지리산 정상부터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된다.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구간도 이어진다. 암릉을 따라 30분을 걸어가니 반듯한 데크길이 나타나고 그 끝에 늘씬한 모습의 노간주나무가 보초병처럼 서 있다. 노간주나무를 지나면 ‘위험구간’ 표시가 나타나고 우회로가 있음을 알려준다. 위험구간은 양쪽이 낭떠러지인 칼바위 능선 구간이다.
100미터 거리의 그 길을 지나야 비로소 최고봉인 달바위(월암봉)다.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쉬엄쉬엄 50분 걸렸다. 달바위는 사량도 최고봉답게 멋진 조망을 안겨준다. 동서남북으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앞으로 가야 할 가마봉~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암릉길이 하도(아랫섬)를 향해 길게 이어지는데 보는 이에 따라 공룡 등뼈, 날아가는 용, 낙타 등처럼 달리 보인다.
그런데 관련 글을 읽다 보면 달바위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민둥산이어서 불모산(不毛山)으로도 불린다는 글들이 보이는데 현지 지도에는 달바위와 별개의 봉우리로 표시되어 있다. 이번에 다녀온 종주 능선에서도 불모산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불모산이 어디란 말인가. 달바위에서 가파른 급경사를 내려와 뒤돌아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달바위가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설악산 공룡능선의 최고봉인 1275봉을 닮았다는 사람도 있다.
달바위에서 0.8㎞ 거리에 가마봉(303m)이 있다. 그 뒤에서 출렁다리가 흐릿한 모습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가마봉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경사는 엄청난 급경사다. 가마봉을 지나 아찔한 계단을 다시 오르면 출렁다리다. 아래쪽에서 출렁다리 방향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출렁다리는 사량도 종주 코스의 백미다. 3개 봉을 연결한 각각 39m, 22mr 길이의 현수교 2개가 암봉들과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른 지역 출렁다리에 비해 길지는 않지만 출렁다리 아래가 천 길 낭떠러지여서 스릴감은 못지않다. 출렁다리를 지나 우뚝 솟은 모습의 옥녀봉(281미터)으로 이어진 구간은 사량도 지리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아찔한 계단을 또 올라야 옥녀봉이 비로소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옥녀봉에서 금평항 여객선 터미널까지는 1.5킬로 하산 길이다. 급경사 하산길에 설치한 이곳의 파란색 줄은 굵으면서도 부드러워 붙잡고 오르내리는데 딱이다. 다른 지자체에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날머리에 해당하는 사량초등학교 아래 GU 편의점에 도착하니 6.5㎞ 거리를 6시간 걸렸다. 통영행 여객선 편 시간에 맞춰 이곳저곳 감상하며 쉬엄쉬엄 내려가다 보니 평균 시간보다 더 걸렸다. 평일이라 그렇지 등산객들이 많은 휴일이었으면 도착 시간이 더 늦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