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봉에서 바라본 서봉 정상(가운데)의 왼쪽 거대 암벽이 만경대이고 그 왼쪽 아래 바위가 두꺼비바위다.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5.3㎞ 거리에 4~5시간
☞ 운악광장(주차장) → 궁예대궐터 → 서봉 → 동봉 → 서봉 → 두꺼비바위 → 운악사 → 원점회귀
by 김지지
경기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이루는 한북정맥 상의 명산
운악산(935.5m)은 경기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를 이루는 한북정맥 상에 힘차게 솟아있는 명산이다. 경기도에서는 감악산(파주), 화악산(가평), 송악산(개성), 관악산(과천)과 함께 ‘경기 5악’으로 꼽힌다. 이름에 ‘악’(岳) 자가 들어 있는 산은 모두 기운찬 암릉·암벽이면서 험한 게 특징이다. 혹자는 설악(속초), 치악(원주), 삼악(춘천), 월악(제천)과 함께 운악을 ‘남한의 5악’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한북정맥(漢北正脈)은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산경표’에서 규정한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한 곳이다.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군의 추가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가다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장명산을 지나 한강과 임진강의 강구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망봉, 호명산, 사패산, 도봉산 등이 한북정맥 선상에 있다.
운악산 등산 길은 가평과 포천에 각각 3개 정도 있다. 그중 몇 개 길은 기암괴석을 조망하며 걷는다. 가평 쪽 등산길에는 눈썹바위, 미륵바위, 병풍바위, 남근석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있고 포천 쪽 등산길에는 사부자바위, 두꺼비바위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조망은 가평 쪽이 좋고 암릉 길은 포천 쪽이 발달했다. 그래서 가평보다는 포천 쪽이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포천 방향 등산길은 포천 운악광장(주차장)에서 출발해 무지개폭포 전망대와 궁예대궐터를 지나는 1코스, 자연휴양림을 거쳐 두꺼비바위로 오르는 2코스, 대안사를 들머리로 삼는 3코스가 있다.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1코스로 올라가 2코스로 내려오거나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원점회귀하는 산행이다. 따라서 출발에 앞서 어느 코스로 오르고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1코스는 조망 없는 숲속을 지나는 평이한 길로 상대적으로 편하다. 2코스는 경사가 급한 암릉길이어서 조망은 좋아도 힘든 편이다.
그런데 좋은 조망을 감상하려면 등산 때보다는 하산 때가 편리하다. 급경사 구간을 올라가는 경우 땅만 내려다보며 걸어야 해서 따로 시간을 내 조망을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산 시에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에 조망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 오를 때보다는 유리하다.
문제는 급경사 코스일수록 하산 시 조심조심해야 하므로 시간이 더디 걸린다는 것이다. 운악산에는 급경사의 좁은 바위 구간도 있다. 초보 등산자에게 이런 코스는 위험할 수 있다. 포천 방향 2코스가 그랬다. 문제는 이번에 함께 운악산에 오른 동행자가 체력 좋은 등산 애호가이지만 급경사 암릉길 하산을 유독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2코스가 이 정도인 걸 모르고 1코스 등산 → 2코스 하산을 선택했다. 결국 동행자 입에서 “판단 미스”라는 말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1코스 등산… 조망 없는 숲속 길
들머리 주차장 명칭은 운악광장 혹은 운악산광장이다.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주차 후 5분 정도 진행하니 펜션·카페가 있는 삼거리다. 직진하면 자연휴양림 옆을 지나 서봉 정상으로 오르는 2코스이고 왼쪽 방향이 1코스다. 포천시가 만든 안내판에 따르면 들머리에서 서봉까지 1코스는 2.43㎞이고 2코스는 2.15㎞다. 여기에 서봉에서 동봉을 왕복하는 0.6㎞를 더하면 전체 거리는 5.2㎞다. 그런데 산행 중 가끔 보이는 ‘119’ 제작 막대에는 각각 0.2~0.3㎞를 더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에 따르면 A코스는 2.7㎞, B코스는 2.3㎞다.
펜션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20분 정도를 천천히 오르니 멀리 무지개폭포를 전망하는 정자다. 한자로는 무지개 ‘홍’자를 써서 홍폭(虹瀑)이다. 현지 안내판에는 무지치폭포라고도 하는데 무지개의 현지 사투리가 아닌 듯싶다. 나무에 가로막혀 폭포의 일부만 보이니 별 느낌이 없다. 잠시 후 무지개폭포 상단과 하단 방향으로 갈라지는 데크 삼거리다. 폭포 하단 방향으로 200미터 정도 내려가면 폭포를 올려다볼 수 있다. 무지개폭포는 물줄기가 굵직한 한 갈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인 폭포다. 높이 20m, 길이 30m쯤 되는 이 폭포에 수량이 많을 땐 물보라로 인해 무지개가 걸려서 무지개폭포라고 한다는데 최근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폭포 상단으로 올라가려면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급경사 데크계단 길을 2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폭포 상단에서 10분 정도 진행하니 거북이가 머리와 가슴팍을 내민 모습의 대형 암석이 눈길을 끌고 그 끝에 마실 수 없는 약수터가 나온다. 20분 정도 진행하니 가파른 길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제법 너른 터가 나온다. 돌로 쌓은 성곽이 보이는 궁예대궐터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 대궐터는 신라 말기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면서 명성산을 지나 이곳 운악산에 와서 이곳에 성을 쌓고 반년 동안 대항하다 무지개폭포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역사적 근가 없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어서 도무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운악산에는 부근의 명성산과 함께 어딜 가나 태봉국 궁예와 연결된 상상의 전설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궁예의 여러 설화는 성장기는 경기 안성, 전성기는 철원, 전투는 포천, 최후는 평강(철원 위쪽 북한)에 지역적으로 집중된다고 한다. 포천의 지명 중에는 울음산(鳴聲山), 패주(敗走)골, 항서(降書)받골, 야전(野戰)골 등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궁예대궐터를 지나면 급경사 데크와 철계단이 고도를 빠르게 높여준다. 그러다가 첫 조망터를 만나는데 도봉산~북한산 능선이 멀리 남서쪽으로 펼쳐진다. 10분 정도 후 웅장한 병풍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는데 사실 병풍바위는 가평 쪽 조망이 압권이고 최고 절경을 자랑한다. 가평에서 바라보는 병풍바위는 설악산의 봉우리 몇 개를 떼어놓은 것처럼 빼어나다. 가평 방향 병풍바위는 한때 애국가의 배경 영상으로도 쓰였다. 운악산의 병풍바위를 사라키 바위라고도 하는데 무지치폭포처럼 어원을 알 수 없다.
곧이어 애기봉이다. 안내판이 없어 모르고 지나치는데 별 특징이 없고 애기봉이라는 별도 이름을 달아줄 정도가 결코 아니어서 차라리 안내판이 없는게 나아 보인다. 운악산은 가평이든 포천이든 데크 시설을 자랑해도 좋을 만큼 깔끔하고 튼튼하다. 들머리에서 3시간 정도 오르니 서봉(935미터)이다. 이곳에서 2코스로 바로 하산하면 되지만 동봉이 지척(0.3㎞) 이어서 동봉을 다녀오는 게 좋다. 서봉에서 동봉까지 길은 능선 숲길에 조망도 있어 걷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다. 왕복 시간도 20분에 불과하고 서봉에서 동봉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으니 필히 다녀올 것을 권한다.
동봉에는 가평군과 포천시에서 따로 만들어 모양이 각기 다른 정상석이 2개다. 가평군 정상석에는 ‘운악산 비로봉’, 포천시 정상석에는 ‘운악산 동봉’이라고 씌어있다. 동봉에서 가평 현등사 방향으로 200여 m 나무데크길을 따라 내려가면 현등사와 대안사(포천 3코스)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2코스 하산… 가파른 암릉 구간
2코스는 몹시 가파르다. 철계단, 데크계단, 로프의 연속이다. 서봉에서 주차장까지는 2.2~2.3㎞다. 서봉에서 2코스 방향으로 100~200미터 진행하면 동봉과 3코스 계곡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다. 포천 쪽 운악산 최고 전망대다. 그때부터 하산하려면 길게 이어진 암릉을 지나야 하고 급경사 철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급경사 하산이 끝나면 거대 바위가 쉬어가라로 자리를 내주는데 그곳에서 방금 지나온 전망대 방향을 바라보면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 암봉이 서봉 전망대를 떠받치고 있다. 쉼터에 안내문이 있어 거대 암봉의 이름이 만경대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동봉에서 서봉 쪽을 바라보아야 제대로 된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쉼터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두꺼비 바위가 내려다보인다. 그곳부터가 두 팔 두발 모두 필요한 진짜 급경사 암릉·암벽 구간의 연속이다. 혹자는 위험하다고 하고 혹자는 스릴이 넘친다고 으쓱한다. 이 구간에는 급경사 철계단과 로프도 있지만 호치키스(스테이플러) 모양의 플라스틱 ‘ㄷ자 꺾쇠’도 어김없이 박혀 있다. 우리는 내려가지만 이곳으로 올라오려면 팔이 뻐근할 것 같다.
그런데 운악산의 플라스틱 ‘ㄷ자 꺾쇠’는 내가 가장 칭찬하는 받침이다. 몇 년 전 왔을 때 가평 쪽 운악산에도 같은 호치키스가 있었는데 그때는 철제로 된 흰색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노란색 두 종류였는데 포천 쪽 ‘ㄷ자 꺾쇠’는 한결같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이곳 ‘ㄷ자 꺾쇠’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가 와도 물이 묻어도 미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의 유명 산을 대부분 다녀봤지만 운악산만큼 안전하게 만들어진 ‘ㄷ자 꺾쇠’는 과문하지만 유일하다. 바위틈 곳곳에 설치된 이곳 <ㄷ자 꺾쇠>는 팔만 뻗으면 잡힐 정도로 촘촘하게 박혀 있어 바위 구간을 오르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미끄럽지 않다. 곧이어 사부자바위와 궁예성터를 지난다. 왜 사부자바위인지 설명이 없고 왜 궁예성터인지 근거가 없다. 다만 궁예성터에서는 계곡 건너편 1코스 주변 신선대와 치마바위의 웅장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지나쳐 두고두고 아쉬웠다.
서봉에서 급경사 암릉 구간을 조심조심 쉬엄쉬엄 2시간 정도 내려가니 운악사다. 산길에서 내려다보면 요새처럼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계단이 가파르게 내리막을 만들어 좁고 협소한 병풍처럼 바위에 둘러싸인 풍경이 신비감을 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함석 슬레이트, 비닐 등의 재료가 보여 어수선하고 사찰의 느낌이 약하다.
그래서 운악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운악사 내 칠성각 뒤편 바위 절벽 사이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꼬리 폭포가 있다고 한다. 소꼬리 폭포 옆으로는 또 다른 바위산 위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제단이라는 기도 제단이 모셔져 있는데 탁 트인 풍경이 일품이란다. 휴양림을 거쳐 원점회귀하니 6시간 30분이 훌쩍 지났다. 보통은 4~5시간 걸리는 거리이니 그만큼 우리가 쉬엄쉬엄 걸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