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2세, 3세 때 각각 부모를 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뿐인 누이와 할머니도 떠나 보냈다. 백내장으로 눈이 먼 할아버지와 단 둘이 외롭게 살았으나 할아버지마저 16세에 그의 곁을 떠나면서 그는 천애고아가 되어 백부와 함께 살았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때문인지 그의 소설에선 자주 우수에 젖은 서정성과 미화된 죽음이 묻어나온다. 도쿄대학에서 영문학과 일본 문학을 공부한 가와바타는 1926년 반 자전적 소설 ‘이즈의 무희(伊豆의 踊子)’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주로 일본적 미학을 추구했다. 그는 ‘일본적’이라면 모든 것을 찬미했다. 1948년에 그 정점을 이루는 ‘설국(雪國)’을 발표, 작가로서의 존재를 뚜렷히 했다. 1968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해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특히 일본 펜클럽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제펜클럽대회를 유치(1957년)하고 일본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노벨상을 수상할 때도 그는 국제펜클럽 부회장이었다. 데뷔 시절의 무용가 최승희를 일본에 알리는데 도움을 준 그는 1951년 최승희를 모델로 한 소설 ‘무희(舞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사회활동을 펼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즈시의 한 아파트에서 73세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유서도 없었고 자살 동기도 뚜렷하지 않았다. 입에는 가스관을 물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쓰다만 원고지에는 ‘또’자가 쓰여있었다. 만년필은 뚜껑이 열린 채였다. 1972년 4월 16일 오후 6시, 가와바타는 그렇게 일본인들의 곁을 떠났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지 1년 5개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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