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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선자령] 순백의 설산(雪山)을 만나는 겨울도 좋지만 트레킹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초록 계절이지요

↑ 선자령의 랜드마크인 초지(草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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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0㎞에 3~4시간

☞ 주차장~국사성황사~재궁골삼거리~선자령~전망대~국사성황사~주차장

 

■대관령숲길 목장코스(혹은 강릉바우길 제1구간)

2022년 8월 29일 고교 동창인 동정과 선근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선자령 순환코스를 다녀왔다. 나는 통틀어 네 번째이고 평창에서 두달살이를 하는 동정은 7~8월에만 네 번째다. 선근도 서너 차례 다녀왔다. 이 코스는 이름이 2개다. 사단법인 강릉바우길이 작명한 <강릉바우길 제1구간(선자령풍차길)>과 산림청이 주관하는 <대관령 숲길>의 목장코스다. 대관령숲길은 4개 순환코스와 12개 개별코스로 이루어진 길이다. 총거리는 103㎞나 된다. 대관령숲길 안내센터에서 시작해 다시 안내센터로 돌아오는 15~18㎞의 4개 순환코스는 목장코스, 소나무코스, 옛길코스, 구름코스로 이름이 지어졌다. 옛길코스는 강릉바우길 제2구간과 겹친다. 각자의 체력이나 취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거나 각 코스에서 추천하는 숲길만 걸어도 대관령숲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대관령숲길 안내센터> 사이트를 참고하면 좋다.

목장코스란 대관령숲길 안내센터(주차장)에서 출발해 국민의숲 트레킹길 입구(횡계3리), 샘터, 선자령, 전망대, 국사성황사 등을 지나는 17㎞ 순환코스로 한 바퀴 도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 다만 등산객 대부분은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5㎞나 떨어진 그것도 숲길이 아니라 마을을 지나는 국민의숲 트레킹길 입구(횡계3리)까지 가지 않고 주차장에서 가까운 양떼목장 옆을 지나는 코스를 선호한다.

대관령숲길 네 코스

 

■선자령

선자령은 강원도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의 한 고갯길이다.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경계에 있다. 선자령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멋진 곳이지만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계절은 눈쌓인 겨울철이다. 그래서 겨울철에 눈이 내린다 싶으면 평일에도 등산객들로 붐빈다. 겨울철 주말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주차장이 빽빽하다.

그런데 이번에 다녀오니 겨울 선자령을 두 번 다녀온 사람으로 초록 계절의 선자령이 겨울 설산 못지 않게 멋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쩌면 겨울 설산보다 더 멋질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유는 겨울철에 날씨 좋은 날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겨울 선자령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은 두텁게 쌓인 백설(白雪)과 청명한 날씨다. 하지만 겨울 3개월 중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날은 별로 없다. 대부분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시야나 시계가 좋지 않다. 그래서 1년 중 4~5개월은 비가 내리든 바람이 불든 늘 초록 옷을 입고 있는 선자령이 오히려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눈쌓인 선자령이 궁금할테니 겨울 선자령을 한 번은 찾아가되 초록 계절에 코스를 달리해 거니는 것을 권하고 싶다. 초록 숲길 사이에 난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것이어서 어느 길을 걷든 질리지 않는다. 능선과 숲속을 모두 걸을 수 있는 초록의 능선길이 환상적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되었다.

선자령 목장코스

 

■산행 들머리

주차장에서 선자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능선길과 계곡길 두 갈래다. 편의상 계곡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시내나 개울 수준이다. 두 길의 들머리는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대형 표지석 ‘대관령 국사성황당’이다. 그곳에서 오른쪽이 능선길이고 왼쪽이 국사성황당을 거치는 계곡길이다. 국사성황당에서는 능선길로도 이어진다. 표지석에는 국사성황당이라고 쓰여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성황사다. 현지 안내판에도 국사성황사로 표시되어 있다.

계곡길로 접근하는 방법은 또 있다. 하나는 표지석 방향으로 가다가 황색칠을 한 목재터널 못미쳐 왼쪽 공터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러면 양떼목장 펜스와 풍해조림지 삼거리(지도상 표기)를 지나 왼쪽 계곡길로 합류한다. 공터 입구에 안내판이 있다. 다만 공터 입구 지도에는 양떼목장이 표시되어 있지만 산행 중 만나는 표지판에는 양떼목장 표시가 없다. 선자령의 모든 표지판에는 양떼목장을 표시하지 않아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또 하나는 국사성황사로 가다가 왼쪽 계곡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도 양떼목장 옆을 지나가게 된다.

국사성황사(國師城隍祠)에서는 네 분의 신을 모시고 있다. 김유신 장군과 범일국사, 나머지 신은 물신과 천신이다. 물신은 용왕, 즉 관음보살과 관련 있는 신이고, 천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 강릉시에서 매년 강릉단오제가 열리는 첫날,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 성황사에서는 범일국사를, 그리고 성황사 오른편 위쪽에 올라서 있는 산신각에서는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다. 한 번쯤 둘러볼 만 하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능선길과 계곡길 중 어느 코스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좋으냐는 것이다. 등산객 대부분은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지만 나와 동정의 경험상으로는 계곡길로 먼저 올라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계곡길은 숲길을 지나는 코스여서 조망이 없지만 능선길은 사방이 터진 곳이 많아 여유롭게 하산하며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능선길로 올라가도 사방은 터져있겠지만 오르는데 집중해야 해서 여유로운 감상을 방해한다.

선자령 남쪽 초지에서 바라본 양떼목장과 멀리 발왕산 모습

 

■국사성황사~계곡길~선자령

우리는 주차장에 주차하려다 비시즌에다 평일이고 가랑비도 내려 주차장에서 1.2㎞ 떨어진 성황사에 주차했다. 물론 사람이 많을 때는 선자령 주차장(대관령휴게소 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우리 진행방향은 성황사에서 왼쪽길로 들어가 5분 후 만나는 풍해조림지 삼거리를 지나 재공굴삼거리~샘터를 거쳐 선자령에 올랐다가 능선과 숲길을 거쳐 전망대에서 동해와 강릉을 바라본 후 성황사로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얼추잡아 9㎞쯤 된다. 주차장 해발이 830m이고 정상이 1157m이니 320m 정도만 고도를 높이면 된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잘 닦여 있어 초보 산행객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

국사성황사

 

성황사를 출발해 5~6분 후면 풍해조림지 삼거리, 다시 6~7분 후면 재공굴 삼거리다. 풍해조림지 삼거리에서는 왼쪽의 양떼목장 옆길을 거쳐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재공굴 삼거리는 목장코스의 일부인 국민의숲 트레킹길 입구(횡계3리)나 가시머리로 이어진다. 재공굴 삼거리에서 성황사는 0.9㎞, 선자령은 3.4㎞다. 다만 풍해조림지 삼거리에서 대관령휴게소(주차장) 방향 안내판(1.9㎞)은 있는데 중간에 거치게 될 양떼목장 옆길 안내표시가 없어 불편하다. 그곳이 풍해조림지 삼거리라는 안내도 없다. 표시가 있었다면 제법 볼거리가 있고 호젓한 양떼목장 옆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표시가 없어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길을 가다보면 진초록의 속새 군락이 곳곳에 보이는데 언제보아도 꼿꼿하다. 속새는 규산염이 들어 있어 뿔이나 목재로 만든 기구를 닦는 데에 쓴다. 옛사람들은 칫솔 대용으로 쓰거나 여름 방석을 만들어 사용했다. 가랑비가 내리니 초록 숲이 더욱 선명하고 반짝반짝하다. 낙엽송·전나무 혼재림과 자작나무 군락도 지나는 오솔길은 완만하게 이어진 흙길이어서 여느 숲길과 비교해도 정취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호젓하고 편안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심어지기 전 이곳에는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산에서 화전을 일궈 살던 주민을 내보내고 남은 빈터에 속성으로 자라는 낙엽송을 심은 것이다. 숲길에는 화전민들의 식수원이었던 샘터도 있다. 개울 건너에 있다는데 네 번이나 와놓고도 확인하지 못했다. 생각없이 걸었기 때문이다.

속새 군락지

 

선자령 일대에는 야생화가 많다. 보통 산에 가면 4~6종의 야생화를 만나는데 계절이 그러한지 선자령 일대에서만 발견된 꽃이 10종 이상이다. 꽃이름을 몰라 궁금해 하는데 곳곳에 꽃이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많아 제법 도움이 된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가는데 동정과 선근이가 왜 이리 늦게 오느냐고 성화다. 요즘은 어느 산에 가든 동행자들에게 이런 지적을 하도 많이 받아서 속으로는 미안하지만 그러러니 한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미타리, 흰물봉선, 짚신나물, 잔대

 

선자령 정상이 높지 않고 주변 산세가 넓지 않은데도 개울이나 계곡에 은근히 수량이 많다. 사실 선자령(仙子嶺) 이름은 선녀가 계곡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정도로 빼어나지는 않다. 선자령 아래 임도에 도착한 것은 성황사를 떠나 1시간 30분 정도 지나서였다.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0.2㎞ 경사길을 올라가야 한다.

선자령 계곡길(왼쪽)과 계곡

 

■선자령~능선길~국사성황사

1시간 40분 만에 정상에 올라서니 북쪽으로 곤신봉~매봉~소황병산으로 이어지는 11㎞의 백두대간 길이 초록의 마루금을 이루며 길게 뻗어있다. 사이사이에서 도도하게 바람을 맞고 있는 백색의 풍력발전기 바람개비가 분위기를 살려준다. 선자령 주변은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다. 모두 44기인데 총 발전량은 소양강 다목적댐의 절반에 해당하는 98Mw이다. 약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라고 쓰여있는 7m 높이의 정상 표지석이 우뚝하다. 선자령은 위에서 소개한 <대관령 숲길>의 소나무 코스로도 이어진다. 선자령에서 출발해 대관령자연휴양림을 거쳐 다시 선자령으로 원점회귀하는 18.23㎞를 걷는데 7시간 정도 걸린다.

선자령에서 바라본 북쪽의 곤신봉~매봉~소황병산으로 이어지는 11㎞의 백두대간길

 

선자령 남쪽으로 내려가면 선자령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초지(草地)가 넓게 펼쳐있다. 이곳 초지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보아도 환상적이다. 겨울에는 온통 순백으로 덮여있지만 8월 말인 지금은 어느덧 초록이 누렇게 바뀌고 초록은 드문드문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멀리는 발왕산, 가까이는 양떼목장을 감상하며 초지 옆길로 쉬엄쉬엄 내려가는 데만 7~8분 걸린다.

초지가 끝나면 20~25분 거리의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온통 초록이어서 절로 힐링이 된다. 숲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왼쪽이 전망대로 가는 오름길이고 오른쪽이 7, 8부 능선의 평지길이다. 갈림길은 500m 지나 다시 만난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니 숲길이 끝나고 동해 바다와 강릉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새봉(1050m)에 있어서 새봉전망대로도 불린다. 전망대 동쪽은 급경사여서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동해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강릉시내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흰색의 한국공항공사 무선표지소 시설이 마치 외계인이 타고온 우주선처럼 보여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선표지소에서 무선표시장치인 VOR과 TACAN이 만든 신호를 공중으로 방사하면 항공기는 전파를 수신해 목적지와 방향을 찾는다. VOR는 민항기에 방위 정보를 제공하고 TACAN은 전투기에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10곳이 있는데 이곳 선자령 말고 경북 예천·포항, 부산, 대구, 전북 부안, 경기 송탄·안양·양주·제주에 있다.

전망대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헤어졌던 갈림길이 만나고 다시 5분 정도 내려가면 위에서 내려다본 무선표지소 옆 콘크리트길이다. 이후 계속되는 콘크리트길 양쪽으로는 사철 푸르른 주목나무가 군락으로 도열하고 있다. 주목나무는 겨울철 눈이 켜켜히 쌓였을 때가 가장 멋지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주로 쓰이는 구상나무로 알았는데 나중 확인해보니 주목이란다. 콘크리트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사거리다. 오른쪽(서쪽)은 200m 아래 국사성황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동쪽)은 지금은 옛길코스로 불리는 강릉바우길 제2구간인 대관령옛길이다. 소나무코스도 일부 겹친다.

대관령옛길은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이이)의 손을 잡고 강릉과 한양을 오가던 길이다. 율곡의 친구이자 강원도 관찰사였던 송강 정철은 이 길을 지나 ‘관동별곡’을 썼다. 청운의 꿈을 안은 영동의 선비들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정취가 서린 옛길이기도 하다. 김홍도는 이 길 중턱에서 대관령의 경치에 반해 화구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성황사에 도착하니 이곳을 출발한지 2시간 50분이 걸렸다. 우리 셋은 전날 발왕산 산행을 12~13㎞ 했는데도 체력이 끄덕없는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도 함께 다니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선자령 능선길의 숲속

 

■대관령휴게소에서 맛본 장칼국수

성황사 주차장에서 동정이 우리 두 사람에게 “용평 읍내로 짬봉 먹으러 가자”고 한마디 하니 그 말을 들은 주차장 관리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관령 휴게소의 대관령국수집에서 파는 장칼국수가 정말 맛이 좋으니 그곳에 가보라”고 추천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10년 후배가 하는데 황기 등으로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 정말 맛있다”고 덧붙힌다. 해장이 목적이고 유명 짬봉집이 있는 용평읍까지 가는데 시간을 잡아먹느니 강릉의 명물인 장칼국수도 괜찮겠다 싶어 메뉴를 바꿨다.

그래도 휴게소에 맛집이 있을까 긴가민가 하며 대관령국수집(010-9117-1103)에 들어서니 키가 크고 친절하고 선한 인상의 여성 주인이 우리를 맞는다. 장칼국수와 감자전을 시켰는데 감자전은 담백했다. 장칼국수에 일가견이 있는 선근이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하니 더 맛있게 느껴졌고 실제로도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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