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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신선봉] 백두대간 종주길의 마지막 구간(진부령~미시령)의 정점이자 금강산 1만 2000봉 중 제일 남쪽 봉우리

by 김지지

 

가을이 왈칵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 멋진 가을날, 자신을 찾아오라고 손짓한 것은 강원도 북단 고성에 솟아있는 신선봉이다. 알고 있다. 신선봉을 찾아가면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동해 바다, 그리고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설악산을 만난다는 것을.

신선봉(1204m)은 백두대간 종주길의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미시령 구간의 정점이자 금강산 1만 2000봉 중 제일 남쪽의 봉우리다. 오랫동안 미시령옛길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이별한 채 홀로 자태를 뽐냈으나 결국에는 설악산의 합방 요청을 받아들여 2003년 8월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 함께 산행을 떠난 일행은 고교 동기들이다. 규철 선근 정형 창민이다.

미시령 신선봉 산행의 주요 기점

 

미시령옛길은 강원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길

우리는 미시령휴게소를 출발해 능선으로 이어진 상봉과 화암재를 거쳐 신선봉에 올라갔다가 다시 화암재로 내려와 화암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원주에 사는 또 다른 고교 친구인 구승 부부가 화암사에서 우리를 픽업해 우리 차가 있는 미시령휴게소에 내려놓는다. 귀찮을 법도 한데 부부가 한몸으로 움직이며 마다하지 않으니 역시 친구가 좋다. 우리 일행이 서울을 출발한 것은 개천절인 2018년 10월 3일 이른 아침이었다. 3시간을 달려 767m 높이에 세워진 미시령휴게소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구승 부부가 반겨 맞는다.

미시령휴게소는 철거된 지 오래이고 지금은 공사 중이어서 주변에 철조망과 돌무더기들만 가득하다. 미시령휴게소는 2011년 1월 31일 문을 닫았다. 5년 동안 흉물로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 8월 완전히 철거되었다. 미시령옛길은 강원도 영동(속초시·고성군)과 영서(인제군)을 잇는 고갯길(해발고도 826m)이다. 미시령에서 북쪽으로는 신선봉~대간령~진부령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설악주능인 황철봉~마등령~공룡능선으로 이어진다. 미시령 도로는 1959년 11월 개통된 후 한계령·진부령 도로와 함께 속초로 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했다. 과거 급커브 길을 따라 이리저리 올라가다 곳곳에서 아찔한 순간을 만나곤 했다. 그러다가 고갯마루인 미시령에 다다르면 1990년에 지어진 미시령휴게소가 반겨 맞아주었다.

사람들의 추억이 배어 있는 미시령휴게소가 문을 닫게 된 것은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였다. 일부러 미시령 고갯길을 오르는 차량이 드물고 휴게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급격하게 줄어 경영난에 허덕이다 결국 문을 닫았다. 수년 후 미시령에 세워있는 <彌矢嶺> 표지석 설명을 살펴봤더니 두 군데가 엉터리다. ‘황철봉’이 ‘황청봉’으로 ‘1959년 11월 개통’이 ‘1960년대 개통’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는 미시령휴게소에 주차하고 신선봉에 올라갔다. 그것도 모르고 미시령에 갔더니 ‘출입금지’란다. 신선봉행 안내 팻말이 있을 리 만무다.

철거되기 전의 미시령휴게소

 

상봉이 신선봉보다 더 높지만 그래도 주인공은 신선봉

우리는 먼길을 달려왔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실례를 무릅쓰고 공사장 옆에 쳐진 줄을 살짝 넘어 신선봉으로 향했다. 초반은 사방이 트여있는 능선길이다. 곧이어 숲길로 이어진다. 1시간 동안 쉬엄쉬엄 올라가니 샘물이 나타난다. 얼굴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샘물 옆에는 “이곳은 육군 제8군단에서 6·25전사자 유해발굴 작전 중인 지역”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샘물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선인재와 선인대(신선대)를 거쳐 화암사에 닿는다. 암릉 구간이 길어 하산길이라 해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신선봉 산행 초입의 등산로

 

사실 이 글을 쓰고 몇 년 후 다시 한 번 올라갔는데 샘물은 마치 멧돼지가 파놓은 것처럼 작은 웅덩이로 바뀌었고 말라 있었다. 산길은 사람의 손을 덜 타서인지 나무들이 무성했다. 이 때문에 드문드문 보여주던 조망도 완전히 사라졌다. 실망을 상쇄해준 것은 여기저기 피어있는, 말로만 듣던 눈부시게 하얀 함박꽃이었다.

우리는 샘물에서 신선봉으로 올라가는 가운뎃길로 들어섰다. 몇 분을 올라가니 사방이 열려있는 무명 암봉(혹은 990암봉)이다. 뱀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미시령길이 내려다보이고 그 건너편에서 울산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울산바위는 우리가 신선봉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 모습을 보여주어 마치 우리를 쫓아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너덜길이 계속되다가 신선봉까지 길게 이어진 암릉이 나타나 기대감을 높여준다. 너덜길에서 상봉까지는 10분 거리다.

상봉 정상에는 2m는 족히 넘는 가지런히 쌓은 돌탑이 사주경계를 단단히 하고 있다. 돌탑 옆에 서니 동쪽으로는 멀리 속초 앞바다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마장터 계곡의 깊고 긴 주름들이 내려다 보인다. 높이를 따지면 상봉이 1239m여서 1204m인 신선봉보다 35m가 더 높지만 그래도 이곳의 주인공은 저 멀리 보이는 신선봉이다. 주변 풍경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고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신선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상봉(왼쪽)과 무명봉

 

상봉에서 신선봉까지는 암봉 옆길로 가는데 절벽같은 바위 사이를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 내리막 구간이 두 군데나 이어진다. 그렇게 30여 분을 내려가니 화암재 삼거리다. 그곳에서 오른쪽이 화암사로 가는 하산길이어서 잠시 유혹에 빠졌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정상을 향해 진격했다. 그런데 수년 후 다시 가보았을 때는 화암재를 가리키는 표지석마저 없애 버렸다. 등산로를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갑자기 미시령~신선봉을 막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의 보호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궁색하다.

상봉에서 신선봉 가다가 바라보이는 신선봉 모습. 중간은 이름없는 암봉인데 귀티가 난다.

 

신선봉 정상은 날카로운 바위를 불룩하게 쌓아놓은 모습

숲길을 거치고 숲 위로 치솟은 조망바위를 지나 5분쯤 진행하니 헬기장이다. 그곳에서 왼쪽이 대간령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종주로이고 오른쪽이 신선봉 길이다. 그런데 수년 후 다시 찾아갔을 때는 어린 수목을 키우려고 각목으로 만든 4각의 구조물이 헬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신선봉 정상까지 펼쳐진 150여m의 숲과, 또다시 이어진 크고 작은 너덜길을 지나니 날카로운 바위를 불룩하게 쌓아놓은 신선봉 정상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대형 바위 상단에 부착된 ‘신선봉 1204m’라고 씌어진 표시석은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화암재와 함박꽃

 

화암재에서 50분 정도 올라온 정상에서 전형적인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동해 쪽으로 넓게 펼쳐진 신평벌과 속초 앞바다의 수평선, 영랑호와 청초호와 도원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 쪽을 바라보니 겹겹이 펼쳐진 능선 끝에 대청과 중청이 쌍봉처럼 솟구쳐 있고 그 앞에 공룡능선이 펼쳐있다. 귀때기청봉은 상봉 너머로 빼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언제보아도 늠름한 울산바위는 신선봉에서 바라보니 새롭다.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왜 신선봉에서 설악산 모습을 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울산바위 뒤로 보이는 달마봉에도 오르고 싶으나 저곳도 출입금지여서 언감생심이다.

우리는 신선봉 아래 헬기장에서 뒤늦은 점심과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화암재를 거쳐 화암사로 내려갔다. 한동안은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어느정도 가면 계곡 옆 숲길이 이어진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선재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호젓하다. 화암사 입구에 도착하니 구승 부부가 다시 우리를 맞는다. 오래 걸리는 구간이 아닌데도 쉬엄쉬엄 오르내리다보니 9시간이나 걸렸다. 구승 부부가 우리를 미시령휴게소까지 데려다 준 덕분에 우리는 편히 속초 외옹치항에서 신선한 회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성인대(신선대)에서 올려다본 990암봉(왼쪽)~상봉~신성봉 능선

 

미시령~신선봉~대간령 구간은 개방해야

사실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신선봉 코스는 우리가 갔던 코스가 아니라 인제군 창암에서 출발해 마장터와 대간령을 경유해 신선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신선봉에서 대간령까지 하산길은 1시간 남짓 걸린다. 수년 후 다시 가보니 대간령(새이령)~신선봉 구간도 출입금지다. 내가 몰랐을 뿐 2003년 8월 신선봉 구간이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출입금지였을 거 같다. 국립공원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구간은 자연휴식년제가 아니고 영구적으로 출입금지란다. 그러면서 “공단 직원들이 신선봉에 있다가 누군가 올라오면 2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고 한다.

마장터에 출발해 대간령으로 올라오는 코스의 들머리는 미시령옛길의 초입에 위치한 인제군 용대리 창암의 박달나무 쉼터다. 그곳에서 2㎞ 정도 가면 소간령(작은 새이령)이 나오고 다시 1㎞ 정도 지나면 계곡 중간에 널찍한 터가 보인다. 과거 말을 풀어 기르거나 모아두던 마장터다. 그곳에서 다시 2.5㎞를 오르면 대간령(큰 새이령)이다. 창암에서 대간령(큰 새이령)까지는 고도 차가 200m에 불과해서 전반적으로 평탄하다. 하지만 대간령~신선봉 구간은 간단치 않다. 3㎞ 구간이 줄곧 오르막인데다 온통 숲길이어서 조망도 없다.

대간령 모습

 

대간령(641m)은 남쪽 신선봉(1204m)과 북쪽 마산봉(1052m) 사이에 위치한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샛령(새이령)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이 되었고 큰 샛령은 대간령으로 작은 샛령은 소간령으로 불린다. 대간령은 일제가 진부령 도로를 내기 전까지는 과거 강원도 인제와 고성 사람들이 넘나들던 요로였고, 미시령과 한계령 길이 포장되기 전에는 백두대간의 동서를 이어주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미시령~신선봉~대간령~마장터~창암까지는 14㎞에 7시간 정도 걸린다. 하루 코스로는 제격이다. 하지만 미시령~신선봉~대간령 구간은 추억의 장소로만 남을테니 아쉽기만 하다.

대간령~미시령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로의 일부인데도 출입금지여서 백두대간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악산을 관통하는 백두대간길은 대간령-미시령-마등령-희운각-대청봉-한계령-점봉산-단목령 구간이고 이 가운데 마등령-희운각-대청봉-한계령 구간만 개방구간이고 나머지는 비개방구간이다. 국립공원공단이 설악산의 5개 구간을 금지하면서 탐방안전성과 자연보전성을 평가했는데 이중 대간령~미시령 구간(5.5㎞)이 가장 낮은 것으로 되어 있다. 바꿔말하면 출입금지 명분이 가장 낮다는 뜻이다. 내가 볼 때도 이 구간을 막아놓은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설악산의 금지 구간은 나름 이해되는 측면이 있으나 설악산 언저리에 위치하고 100대 명산 축에도 끼지 못하고 설악산과는 판이하게 다른 산세의 이곳까지 출입을 금하는 것은 과하다. 산양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이 구간 만은 풀어야 한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울산바위. 왼쪽 아래 암반이 성인대(신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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