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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국립공원] ‘울산바위’는 국내 최대 수직 암릉인데도 크게 힘들지 않은 설악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

↑ 울산바위 최고 지점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들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7.5㎞ 거리에 4시간 정도

☞ 설악동탐방지원센터 →(2.7㎞)← 흔들바위 →(1.0㎞)← 울산바위 정상 →(3.7㎞)← 지원센터

 

십 수 년만에 자영업 그만둔 친구와 함께 떠난 힐링 여행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 설악산 다녀왔다고 하면 십중팔구 최고봉인 대청봉까지 올라갔다는 얘기다. 대청봉이 아니면 공룡능선 정도는 주파해야 한다. 이 정도 급이 아니라면 설악산 ‘등산’이 아니라 설악산 ‘여행’ 쯤으로 치부하는게 등산객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내게도 설악산은 대청봉이나 공룡능선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대청봉이나 공룡능선이 아닌 코스를 이용한 때가 가끔 있었다. 인제군 남교리에서 출발해 12선녀탕계곡 → 대승령 → 장수대 분소로 내려오거나 한계령 → 귀때기청봉 → 대승령 → 장수대분소로 하산하는 코스다. 이번에는 각각 4시간, 2시간 정도 걸리는 설악동지구의 울산바위와 토왕성폭포를 다녀왔다. 두 곳은 설악산국립공원 입구에서 멀지 않고 짧은 코스인데도 처음이다. 그동안 여행이 아니라 등산에만 집착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힐링이다. 자영업을 하는 대학친구가 십 수년만에 업을 그만두고 당분간 쉰다고 해서 그를 힐링시키자는 게 이번에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일행은 이희용(대장)과 김태성, 한상철, 김정형 4명이고 일정은 2019년 10월 28일, 29일 이틀이다. 첫날은 설악동지구에서 둘째날은 오대산 선재길과 강릉 안반데기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2019년 10월 28일 오전 8시에 만나 서울을 빠져나가니 전형적인 가을날씨여서 출발부터 마음이 가볍다. 올 가을엔 휴일에 비가 오는 날이 많아 더욱 그랬다.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설악동탐방지원센터 쪽 입구로 접근하는데 교통체증이 심하다. 알다시피 설악동탐방지원센터 입구 바로 앞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편도 1차선이어서 관광시즌에는 평일 공휴일에 관계없이 늘 교통체증이 심하다.

오래간만에 와서 그런지 관광시즌이면 늘 붐볐던 설악동의 음식점들과 숙박업소들 앞이 한산하다. 요즘은 맛집이든 쾌적한 숙박지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어 굳이 설악동지구에서 숙박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음식점들이 현재의 주차장을 입구에서 좀더 아래쪽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그래야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걸어가면서 음식점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주차장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주차장 아래에 위치한 켄싱턴호텔 입구 주차장에 5000원을 주고 주차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것 같다.

설악동지구 지도
나를 뺀 3명 친구의 공통점은 좀처럼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

오전 11시 30분쯤 설악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신흥사를 향해 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희용의 뇌와 입이 풀가동한다. 쉴 새 없이 머릿속 지식을 뿜어낸다. 그래서 오늘도 문화해설사는 희용의 몫이다. 희용의 지식이 특히 빛나는 분야는 역사와 종교다. 최근에는 회사 업무와 관련있는 재외동포나 다문화 가정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2018년 10월 ‘세계 시민 교과서’ 책을 발간하고 수시로 라디오 출연이나 단체 강의를 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 전국 어딜 가도 사찰은 있는 법이고 불교와 관계된 곳이 많아 희용의 설명은 도무지 끊기는 일이 없다.

희용은 체력도 타고나 산을 좋아하고 음주와 가무도 즐긴다.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예전에는 이런 희용의 설명을 경청했는데 요즘은 내 태도가 예전만큼 성실하지 못하다. 열심히 들어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성과 상철은 오늘도 희용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다.

상철은 배려와 관심이 체질화된 품성의 소유자다. 지금도 대학 동기 중 여학생들이 가장 신뢰하는 산소같은 존재다. 태성은 조곤조곤한 말투에 호기심이 많다. 실실 웃으며 우회적으로 화두를 툭툭 던지는 식으로 화제를 끌어낸다. 나를 뺀 3명의 공통점은 좀처럼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주변 사람들과 충돌까지는 하지 않지만 겉으로든 속으로든 흥분하는 편이다. 해가 갈수록 수양 부족을 실감한다.

힐링 여행을 함께 떠난 친구들. 울산바위에서

 

전망대에서 설악산 일대를 바라보니 만산홍엽은 아니지만 역시 명불허전

매표소를 통과하자 새빨간 단풍이 우리를 맞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완연한 가을인데도 싱겁고 심심하다. 날씨가 계속 따듯한데다 가을에 비가 많이 와서다. 그래도 가을에만 볼 수 있는 빨강 노랑 단풍은 언제나 내 눈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설악동탐지원센터에서 2.8㎞를 올라가니 흔들바위다. 그런데 흔들바위가 예전보다 작게 느껴진다. 예전에 보았던 흔들바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 바위를 갖다 놓은 것처럼 낯설다. 게다가 과거 흔들바위를 최종지로 선정하고 올라갔을 때는 다소 힘들었던 것 같았는데 오늘은 흔들바위보다 한참 위에 있는 울산바위를 목표로 삼으니 거리도 짧게 느껴지고 힘들지도 않았다. 목표를 멀리 높게 잡으라는 교훈을 얻었다.

흔들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설악산의 주요 봉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대형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 설치된 사진 안내판을 보면 왼쪽부터 달마봉(640m), 노적봉(716m), 권금성(670m)이 보이고 그 뒤로 화채봉(1320m), 대청봉(1708m), 중청봉(1676m), 소청봉(1550m)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그 앞으로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한참 오른쪽 끝으로 황철봉(1381m)이 모습을 드러낸다.

설악산 주요 봉들. 소나무 가장 우측 상단 옆이 노적봉이고 조금 떨어진 오른쪽이 권금성이다. 권금성 뒤쪽은 화채봉이고, 화채봉에서 오른쪽 능선 따라가면 보이는 높은 봉이 대청 중청 소청이다. 대청 앞이 공룡능선이다.

 

중청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주요 봉들. 울산바위도 보인다.

 

전망대 바위 한쪽에서 앳돼 보이는 20대 여성이 홀로 미소를 지으며 셀프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담는다. 나중 울산바위 정상에서도 만나 물어보니 싱가포르에서 왔단다. 혼자 하는 여행인데도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으니 보기에 좋다.

바위 전망대에서 설악산 일대를 바라보니 만산홍엽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명불허전이다. 다만 초록 누렁 주황 빨강이 한데 어울려 가을 풍경을 자아내긴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누렁이든 주황이든 빨강이든 단풍 색이 선명치 않아서다. 설악산이 이 정도이니 다른 곳은 더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의 단풍 맛은 역시 불붙는 듯한 빨간 색이 제격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북미 대륙에서의 가을 단풍은 빨갛고 주황 색이다. 그러나 유럽인에게 단풍은 노란색일 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자칫 지루할 수 있어 이 글의 맨 아래에서 소개한다.

 

울산바위까지 왕복 7.6㎞를 4시간 30분 동안 걸어

바위 전망대를 지나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니 마지막 체력 테스트를 하려는 듯 길게 이어진 급경사 나무 데크가 다소 위압적인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발아래 데크만 보면서 한발두발 올라가니 힘들다는 느낌 없이 어느덧 울산바위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설악산의 풍경을 대표하는 국내 최대의 수직암릉이다. 6개의 거대한 봉우리와 크고 작은 30여개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해발은 873m이고 둘레는 2.8㎞다. 고서에 따르면 울산(蔚山)이라는 명칭은 기이한 봉우리가 울타리를 설치한 것과 같은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울산바위 정상에 서니 왼쪽으로는 저 아래 바위 전망대에서 보았던 각종 봉들이 다시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오른쪽으로는 금강산의 최남단 봉인 상봉과 신선봉이 멀리 보인다. 울산바위와 신성봉 사이에는 미시령을 지나는 56번 국도가 설악대명콘도(소노캄델피노)까지 뱀꼬리처럼 길게 이어지고 그 오른쪽으로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너편 성인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모습. 울산바위 왼쪽은 달마봉이고 뒤는 화채봉이다.

 

현재 울산바위에 오르는 탐방로는 설악동 소공원길을 이용하는 코스가 유일하다. 울산바위와 가까운 지역은 고성 쪽인데도 고성에서 올라가는 탐방로는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울산바위에 올라가려면 수십㎞를 돌아 설악동 지역을 경유해야 하는 고성 지역 주민들이 고성 지역에서 울산바위에 오를 수 있는 정식 탐방로 개설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울산바위에서 내려오면서 오전과 오후 햇살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오전 햇살이 웬지 불안정하고 직선적이라면 오후 햇살은 고즈넉하고 편안하고 차분했다. 사진 속 피사체도 오전과 오후 느낌이 달랐다. 울산바위에서 설악동탐방지원센터로 원점회귀하니 오후 4시 쯤이다. 울산바위까지 3.8㎞이니 왕복 7.6㎞를 걸은 셈이고 4시간 3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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