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드골 프랑스 대통령, 알제리 독립 선포… 알제리 132년만에 독립

프랑스인에게 알제리는 식민지가 아니었다. 알제리를 점령한 1830년 이후,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프랑스계 2세·3세에게 알제리는 고향이었고 프랑스 그 자체였다. 그러나 1954년 5월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디엔비엔푸를 빼앗겨 100년에 걸친 인도차이나 지배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도 민족해방운동의 불길이 치솟았다. 11월 1일 민족해방전선(FLN)이 알제리 전역에서 대불(對佛) 항전을 시작한 것이다. FLN이 점차 대량학살을 일삼고 프랑스군이 무자비한 고문과 살육으로 응수하면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5만명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난 프랑스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FLN의 저항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스 내부에서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식민주의자와 프랑스군의 잔학상이 알려지면서 프랑스인과 국제여론이 알제리 독립 쪽으로 기울었고 이 때문에 1958년 5월, 위기의식을 느낀 현지 주둔 프랑스 군부와 식민지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청사를 점거하고 코르시카섬까지 장악한 반란군은 사태 해결에 드골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반란은 드골이 총리로 선출되면서 진정됐으나 반란군은 머지않아 드골에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 알제리로 날아간 드골이 “당신들의 말을 알겠다” “프랑스령 알제리 만세”를 공공연히 외치면서 그들을 안심시켰으나 드골은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1961년 1월 알제리 민족자결정책의 시비(是非)를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알제리는 서서히 프랑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 해 4월, 백인 비밀군사조직 OAS가 현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미 시기와 명분을 놓쳐버린 반란이 성공할 리 없었다. 한동안 폭격기와 탱크를 동원한 OAS의 테러와 폭력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래도 독립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1962년 7월 3일 드골이 알제리의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알제리 식민통치도 132년 만에 막을 내렸다. 비싼 대가를 지불했던 독립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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