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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부부 (24)] 박정희와 세 여인-후편… 부잣집 딸 육영수가 빈농 아들에 이혼까지 한 8살 연상의 박정희를 선택한 것은 뒷모습이 든든하고 주관이 확고해보였던 첫 인상 때문

↑ 박정희 대통령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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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박정희-육영수와 첫 만남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박정희는 육군본부 전투정보과 비공식 문관으로 근무 중이었다. 박정희는 어머니의 제사를 위해 방문한 고향집에서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당일 야간 서울행 열차를 타고 올라가 6월 27일 오전 7시 용산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국군 주력부대가 한강 남쪽으로 철수하고 한강인도교마저 6월 28일 새벽 폭파되자 그날 광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 남쪽으로 도강했다. 박정희가 자진해 한강을 넘어 군에 복귀했다는 것은 공산주의와 확실히 절연했다는 것을 군 요로에 자연스럽게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의 자진 도강은 11년 뒤 그 한강을 반대 방향으로 건너 정권을 장악하게 하는 역사적 선택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부대 복귀 보름 후 1년 2개월만에 소령으로 복직하고 전투정보과장으로 발령받았다.

박정희 소령이 육군본부의 이동에 따라 대구와 부산을 옮겨다니던 1950년 8월 어느날, 박정희의 부관인 송재천 소위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박정희의 대구사범 한 회 후배로 충북 옥천 농업고등학교 교사 재직 중 육군 소위로 임관한 늦깍이 장교였다. 송재천 소위는 외가 쪽으로 6촌동생인 육영수라는 25살 아가씨가 있는데 부산에서 가족과 피란살이를 하고 있다며 한번 만나보지않겠느냐고 넌지시 박정희의 의중을 떠보았다. 박정희가 만날 의사가 있다고 하자 송재천은 그 길로 부산 영도에서 셋방을 얻어 살고 있는 육영수의 어머니를 찾아가 만남을 성사시켰다. 박정희와 육영수는 1950년 8월 하순 영도다리 옆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육영수 출생과 학창시절

육영수(1925~1974)는 충북 옥천군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큰언니 육인순과는 11살, 오빠 육인수와는 7살, 막내 동생 육예수와는 4살 터울이었다. 아버지 육종관은 옥천에서 유명한 갑부였다. 대궐 같은 저택은 대지가 3000평이나 되었고 저택을 둘러싼 담은 세로 100m, 가로 50m나 되었다. 육종관은 이 대저택을 자신의 왕국처럼 다스렸다. 육종관은 본처 이경령에게서 낳은 육영수 형제 말고도 5명의 소실들에게서 18명을 생산해 자녀가 모두 22명이나 되었다. 이 다섯 소실들은 대부분 육종관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고 그밖에도 많은 여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육종관은 자식 모두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고 평균 이상으로 교육했다. 여자는 고교, 남자는 대학까지 보냈다. 소실 중에는 일본 여성도 있었다. 소실 중 한 명(큰개성댁)은 육종관이 사 준 서울 사직동에서 살았다. 이 집은 육종관의 여러 자녀들이 서울에 유학할 때 기거하는 거점이 되었다. 육영수도 서울 배화여고에 다닐 때 이 집에 살았다. 육종관은 이재에도 밝았지만 기계를 다루는 데에도 호기심과 재능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촌에 사는데도 포드자동차, 시보레승용차, 트럭, 사이드카(오토바이)까지 갖고 있었다. 사진기는 물론 촬영기까지 갖고 다니면서 촬영해 식구들에게 상영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믿음직스러운 육영수에게 죽향보통학교 상급반 시절부터 장부정리, 편지대필, 헌돈 다리미질, 고물상에서 가져온 헌 부속품에 기름칠하기 등등의 심부름을 맡겼다.

큰언니 육인순은 1935년 결혼한 홍순일과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훗날 대성해 일가를 이뤘다. 홍순일은 춘천고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거쳐 고등문관시험 양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해방 후 강원도 소방청장, 허정 교통부장관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6·25 때 인민군에 납치, 행불되었다. 장남 홍세표는 외환은행장을 역임하고, 딸들은 장차 사회적으로 성공할 남자들을 지혜롭게 선택해 결혼했다. 장녀 은표는 장덕진 전 농수산부장관, 차녀 소자는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 3녀 정자는 유연상 전 영남대 재단이사장, 4녀 지자는 정영삼 전 한국민속촌 회장, 5녀 재희는 전 서주산업 회장 윤석민과 결혼했다.

육영수는 1938년 4월 서울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 배화여고)에 입학했다. 성적은 바닥권을 맴돌았다. 4년제이던 배화고녀 입학 첫 학기의 평균성적은 전교 118명 중 107등, 4학년 마지막학기에는 102명 중 91등이었다. 육영수는 1942년 3월 배화여고를 졸업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상급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해 옥천 교동집으로 내려왔다. 1945년 10월 중학교 과정인 옥천공립여자 전수학교의 가사 담당 교사가 되어 1년 반을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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