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4년제 육군사관학교(육사 11기) 첫 졸업

↑ 서울 태릉 화랑대에서 열린 육사 11기 졸업식이자 임관식 모습 (1955년 10월 4일)

 

육군사관학교는 크게 네 단계의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1기~7기), 단기 육군사관학교(8기~10기), 4년제 육군사관학교(11기~현재), 여생도 모집(58기~현재)이 그것이다. 오늘날 육사의 모체가 되는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이하 경비사관학교)가 창설된 것은 1946년 5월 1일이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경비사관학교는 군사영어학교와도 관계가 깊다. 하지만 현재의 육사는 경비사관학교를 자신들의 뿌리로 여긴다.

군사영어학교는 군간부를 육성하려해도 언어장벽을 답답하게 여긴 미 군정이 1945년 12월 5일 설립한 군사학교다. 설립 초기에는 60여명의 교육생들을 상대로 영어와 기초 군사지식을 가르쳤으나 이듬해 경비사관학교가 문을 열면서 교육생들을 모두 그곳으로 옮기고 폐교됐다.

경비사관학교에는 군사영어학교생을 포함해 모두 88명이 입교했으나 1946년 6월 15일 졸업 때는 40명만이 남았다. 이들이 육사 1기다.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는 1기 졸업 다음날인 6월 16일 조선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하고 9월 24일 제2기생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제2기생으로 입교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모두 일곱개 기수 1800여명의 생도들이 45일에서부터 수개월까지의 단기 교육을 받고 군에 뛰어들었다. 이 기간에 입교한 사관후보생들은 대부분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등에서 군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짧은 교육기간에도 불구하고 숙련도는 높았다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5일부터는 국군 창설과 더불어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되면서 교육기간도 다소 연장됐다. 8기는 22주, 9기는 23주의 교육훈련을 받았다. 1949년에 선발된 10기(생도 1기)는 2년제 과정으로 입교했으나 곧 교육기간이 1년제로 줄고 그나마도 6·25로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전선에 투입됐다. 1950년 6월 1일 첫 4년제 정규과정으로 모집한 생도 2기생이 입교해 대망의 정규 사관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듯했으나 25일 만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교육도 받기 전 생도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육군사관학교는 전쟁 발발 3일 만인 6월 28일 휴교에 들어갔다. 생도 2기는 입학하자마자 전투에 투입되어 86명이 전사하고 12명이 실종되었다. 그런데도 생도 1기가 육사 10기로 인정받은 것과 달리 정규 육사 기수에 포함되지 않고 지금껏 그냥 ‘생도 2기’로만 불린다.

그러다가 1951년 10월 31일 경남 진해에서 4년제 사관학교로 다시 개교하고 1952년 1월 20일 개교식을 거행함으로써 정규 사관학교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개교식에 앞서 1월 2일 입학한 200명의 생도들이 그 유명한 육사 11기다. 미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4년제 첫 정규 육사였다. 11기는 선배들과 달리 참전하지 않고 1955년 10월 4일 졸업했다. 육사 11기부터 미국으로 군사 유학을 갔다. 초급 장교 시절엔 군 부패 척결에도 앞장섰다. 집단적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강했다. 그런데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육사 생도의 지지 시위를 놓고 첫 분열이 생겼다. 전두환 대위 그룹은 시위 찬성, 육사 교수부의 동기들은 반대가 많았다.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11기인 전두환·김복동·손영길·최성택 소령, 노태우·권익현 대위 등을 군 요직에 기용했다. 11기가 주도한 군 내 사조직 ‘하나회’가 세력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11기는 두 대통령을 포함해 대장을 5명 배출했다. 중장·소장만 20명에 달한다. 장관급과 국회의원도 수두룩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 11기만큼 권력의 영욕을 오래 겪은 집단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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