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 루거우차오(노구교)에서 벌어진 중일군 충돌… 중일전쟁의 도화선

↑ 노구교 사건 다음날 노구교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일본군

 

1937년 7월 7일 밤 10시반, 의화단사건 후 베이징 루거우차오(蘆溝橋) 부근에 주둔 중인 일본군 1개 중대를 향해 10여 발의 총성이 울렸다. 루거우차오는 베이징 서남쪽 8㎞ 지점에 위치한 융딩장(永定江)에 놓인 다리로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예찬한 곳이다.

이날의 총격이 일본군의 자작극인지 중국의 항일세력에 의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 일본군 중대장은 이를 중국 측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인원을 점검해보니 신병 1명까지 행방불명이었다. 신병은 곧 돌아왔으나 귀대 사실이 상부에 늦게 보고되는 바람에 상황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본군이 중국군을 향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다행히 전면전으로는 발전하지 않아 현지의 양군(兩軍)은 사태 확산을 막기위해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 사건을 ‘중국 측의 계획적 무력항일’로 단정하고 파병을 발표하자 중국의 국민당 정부도 대일항전을 내걸고 이에 맞섰다. 일본은 3개 사단을 파병한 데 이어 28일에는 베이징과 톈진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다. 8년간에 걸친 중일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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