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년 7월, 이슬람 세력이 1차 십자군 전쟁에서 패함에 따라 그동안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가 성지로 여겨온 예루살렘은 기독교 수중으로 넘어갔고 그곳에는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다. 이후 80여 년 간 예루살렘 왕국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불세출의 영웅’ 살라딘이 등장하면서 이곳에 소용돌이가 쳤다. 살라딘은 쿠르드족이었음에도 26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던 파티마 왕조를 끝장내고 그곳에 새로운 왕조를 세운 당대를 풍미한 인물이었다. 그는 종족과 종파로 뿔뿔이 갈라진 아랍을 하나로 묶은 위대한 군주였다. 겸손하고 동정심이 많았으며 학문도 사랑했다.
살라딘은 이집트에서 술탄의 지위를 공고히 한 후 영토 확장에 주력했다. 북부 아프리카 지역과 시리아를 정복한 그의 최종 목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재점령이었다. 1187년 7월, 살라딘은 먼저 갈릴리 호숫가에 세워진 요새 디베리야를 공격했다. 50㎞쯤 떨어진 곳에 포진하고 있던 예루살렘 왕은 살라딘의 디베리야 공격이 자신의 군대를 끌어내기 위한 계략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디베리야를 구출하기 위해 2만 병력을 그곳으로 출동시켰다.
7월 4일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독교군이 지중해와 갈릴리 호수 중간에 위치한 하틴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불볕 더위에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마실물조차 구할 수 없어 기진맥진해 있었다. 1만5000명의 기독교군과 1만8000명의 이슬람군이 하틴에서 맞붙은 이 전초전에서 기독교 왕은 체포됐고 기독교군은 참패했다. 살라딘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쳐들어가 88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왕국이었던 예루살렘을 10월 2일 마침내 점령했다.
살라딘은 이때도 관대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예루살렘의 왕을 풀어주고 성안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공격을 하루 늦춰 주었다. 나중에 3차 십자군을 이끌고 온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열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헐몬산’의 눈을 퍼서 녹지않게 가져가 리처드 왕에게 전하기도 했다. 이후 예루살렘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까지 760여 년 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1999년 미 타임지는 ‘지난 1000년 세기의 인물’을 선정하면서 살라딘을 12세기의 인물로 당당히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