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
1914년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
1912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
1913년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
1909년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
1911년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
1908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
1907년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는 대한제국 내정 간섭이 목적 을사조약(1905.11.17)을 ‘늑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과 절차에 불과할 뿐 을사조약에 내포된 […]
1905년
일본, 러일전쟁 승리 후 대한제국에 대해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지위 확보 러일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1905년, 일본이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영국과는 제2차 영일동맹(1905.8)을 체결해 사실상 대한제국에 […]
1904년
러일전쟁,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 바꿔놓아 1895년 4월 17일 일본이 청국과 체결한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 승리의 산물이었다. 조약에 따라 청국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요동반도, 대만, […]
1903년
↑ 영화계가 우리나라 최초 영화 상영의 근거로 삼고 있는 1903년 6월 23일 자 황성신문 영화 광고. 국내 최초 영화 상영장은 동대문 전차 차고 […]
1902년
하와이 이민의 산파는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 하와이는 미주 지역 한인 이민의 시발점이자 미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한인들을 처음 하와이로 유인한 것은 사탕수수였다. 19세기 중반 미 […]
1911년
↑ 이상룡과 임청각 의병의 한계를 절감하고 구국 계몽운동으로 방향 틀어 이회영 등과 함께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한 이상룡(1858~1932)은 경북 안동의 유림 명문가 자제로 […]
1901년
인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계 최고의 상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1893년 3월 작성하고 2년 반 뒤인 1895년 11월 27일 이를 수정한 유언장에서 시작된다. […]
↑ 정한의논도(征韓議論圖). 왼쪽은 이와쿠라 도모미이고 중앙은 사이고 다카모리다. 1877년 작 조선이 일본의 달라진 위상을 인정하지 않자 일본 조야에서 ‘정한론(征韓論)’ 고개 들어 1868년 1월 쇼군의 막부 […]
‘권력욕의 화신’ ‘개혁 군주’ 평가 엇갈려 서태후(1835~1908)는 중국 안휘성에서 만주족 지방 관리의 딸로 태어났다. 16살이던 1851년 함풍제의 즉위 후 궁녀로 선발되어 자금성에 입궁했다. 서태후가 […]
서양인들이 밟아보지 못한 길을 뚫고 간다는 탐험 원칙 고수 스벤 헤딘(1865~1952)은 탐험가이면서 지리학자였다. 실크로드 역사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라면 첫손에 꼽는 탐험가의 신화다. 그는 서양인들이 […]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