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우표 발행
↑ 우리나라 최초 우표. 5문(왼쪽) 우표와 10문 우표 우리나라 최초 우표는 개화파 홍영식과 생사를 같이했다. 그는 1884년 4월 22일 설치된 우정총국의 초대 우정총감에 […]
↑ 우리나라 최초 우표. 5문(왼쪽) 우표와 10문 우표 우리나라 최초 우표는 개화파 홍영식과 생사를 같이했다. 그는 1884년 4월 22일 설치된 우정총국의 초대 우정총감에 […]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영국·미국·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아 이제 거리낄게 없게 된 일본은 1905년 11월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특명전권대사로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의 외교권을 […]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토목기술상의 문제로 단념하고, 나폴레옹도 홍해와 지중해의 수위차가 25㎝에 불과한데도 10m로 너무 높게 측정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프랑스가 이토록 수에즈운하에 집착한 이유는 […]
‘아우슈비츠’가 인간도살장이이었다면 유대인을 격리·수용하기 위한 ‘게토’는 그 도살장으로 가는 대기실이었다. 1940년 11월 16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게토가 세워졌다. 둘레에는 3m 높이의 콘크리트벽이 쳐져 외부와 차단됐고, […]
잉카제국은 오늘날의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남으로 칠레까지 아우르는 길고 큰 제국이었다. 신석기문명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로마에 비길만한 전국적 도로망에 뇌수술을 할 정도로 과학도 발달했다. 특히 […]
↑ 아퀴드넥 섬 남단 대서양 연안의 대장원 저택과 ‘바다의 절벽길’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로드아일랜드州 ▲로드아일랜드 이주사 […]
성모 마리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 같은 장소에서 목동들에게 3가지 계시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리스본 북부의 구릉지대 파티마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
경허는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만공은 덕숭 문중의 뿌리 경허(1849~1912)는 조선 500년 동안 억불숭유로 인해 사실상 맥이 끊긴 ‘간화선’(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을 살려내 근대 선불교의 […]
↑ 조텐지(承天寺) 경내에 있는 饂飩(우동)·蕎麦(소바) 발상지 비(왼쪽)와 ‘御饅頭所’ 비. 쇼이치(聖一) 국사는 귀국 후 후쿠오카에서 만두(饅頭)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御饅頭所’라는 간판을 써주었다. by 장상인 […]
중국 청나라 말기 절대권력을 행사한 ‘서태후’는 이름이 아니다. 1861년 함풍제가 병사하고 후궁에서 태후에 오른 서태후가 서쪽에, 정실이 동쪽에 기거해 편의상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
1980년 11월 14일, 한국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언론통폐합 조치가 이뤄졌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가 임시총회를 열어 상업방송 체제를 공공방송으로 전환하고 지방주재기자를 철수하며 유일한 대형민간통신사를 신설한다는 내용 등을 […]
대원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던 1873년 11월 3일(양력 12월 22일). 이미 9일 전인 10월 25일(음력) “각종 세금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있다”며 […]
그 시절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현실은 비참했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일요근무·철야작업은 예사였고, 만성 위장병과 신경통ㆍ피부병 등도 다반사였다.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고 시다(보조원)는 12∼15세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
1955년 12월 1일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사는 중년의 흑인여성 로사 파크스 부인이 버스에 올라타 백인석 뒷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곧 백인 전용석이 다 차버리자 운전기사가 […]
↑ 김종필(왼쪽)과 오히라 5·16 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의 의장은 한일회담을 서둘렀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은 ‘청구권’ 명목으로 일본에서 받아낼 요량이었다. 회담은 1951년부터 진행됐지만 […]
태평양전쟁 개전 초부터 1942년 여름까지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태평양의 섬들을 잠식해 들어갔다. 파푸아뉴기니 동쪽에 위치한 솔로몬 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인 과달카날섬 역시 거의 무혈입성이었다. […]
1977년 11월 11일 밤 9시15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의 시민들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 한국 대 이란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었고, 시내 삼남극장에서는 700여 명의 방청객이 […]
그 무렵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5년 간이나 바깥세상과 소식이 끊겨 있었다. 16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1856년에 이미 그는 국민적 영웅이었고, 탐험기 ‘남아프리카 전도여행’이 7만 권이나 […]
20세기 초까지 유럽 최고의 명가를 꼽으라면 단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家)이다. 그러나 1차대전이 이 가문에 치명타를 날렸다.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 됐으니 오스트리아를 이끌어온 합스부르크가에 불똥이 튀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