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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 산책] 규슈 후쿠오카의 조텐지(承天寺)는 일본 우동(うどん)의 발상지… 13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와

↑ 조텐지(承天寺) 경내에 있는 饂飩(우동)·蕎麦(소바) 발상지 비(왼쪽)와 ‘御饅頭所’ 비. 쇼이치(聖一) 국사는 귀국 후 후쿠오카에서 만두(饅頭)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御饅頭所’라는 간판을 써주었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이다. 이 우동은 일본 음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우동은 발상지가 어디일까. 대체로 ‘시고쿠(四國)’ 지방으로 알고 있다. ‘사누키(讚岐)’ 우동이 일본 전역에서 유명하기 때문이다.

사누키는 가가와(香川)현의 옛 이름으로 세토(瀨戶) 내해에 연해있는 시고쿠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전국 현 중에서 1인당 우동 소비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동이 유명해서 일명 우동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우동을 처음 들여온 이는 쇼이치(聖一) 국사… 우동(うどん)의 어원은 온돈(饂飩)

하지만 하카다(博多, 현 후쿠오카)가 일본 우동의 발상지라는 게 정설이다. 지인에게서 “하카다(博多)가 일본의 우동 발상지입니다. 조텐지(承天寺)가 그곳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일본 우동의 발상지가 후쿠오카라는 것도 생소했지만, 절(寺)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의아했다. 그래서 지인과 함께 하카다역을 향해 달렸다. 하카다역 근처는 수 백 년 이어오는 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조텐지(承天寺) (출처 후쿠오카시 홈페이지)

 

조텐지(承天寺)를 수소문했으나 마음만 급할 뿐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물어물어 찾아가 절 내부를 밖에서 기웃거리면서 들여다봤으나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 다만 오랜 역사를 안고 살아온 아름드리나무들이 길고 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중문으로 들어서자 석판 위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비(碑)가 서 있었다.

<1241년(仁治 2년) 중국 송나라에서 귀국한 쇼이치(聖一) 국사는 갱(羹), 만(饅), 면(麵)의 제법과 함께 제분 기술도 일본에 들여왔습니다. 갱(羹)은 양갱(羊羹), 만(饅)은 만두(饅頭), 면(麵)은 온돈(饂飩)·소바(蕎麦)를 지칭합니다. 쇼이치 국사에 의해 전해진 제법·제분기술의 덕택에 일본의 분식문화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 비는 쇼이치 국사의 위업을 후세에 전하려고 세운 것입니다.>

우동·소바의 발상지(왼쪽)이고 만두 제조법과 관련된 ‘御饅頭所’(가운데)를 설명하는 글이 조텐지 경내의 석판에 부착되어 있다.

 

1241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778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온돈(饂飩)이 바로 우동(うどん)을 지칭한다. 어원을 따져보면 우동은 따뜻하게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음이다.

쇼이치(聖一) 국사 (조텐지 소장)

 

사실 후쿠오카의 전통적인 축제 ‘야마가사(山笠)’도 쇼이치(聖一) 국사에게서 시작되었다. 1241년 하카다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때, 중국 송나라에서 귀국한 조텐지(承天寺)의 쇼이치(聖一) 국사가 ‘세가키다나(施餓鬼棚)’라는 가마를 탄 채 감로수를 뿌리고 다니면서 전염병을 물리쳤는데 그 가마가 오늘날 ‘야마가사(山笠)’로 발전한 것이다.  

조텐지 경내에 있는 야마가사(山笠) 발상지 비(왼쪽)와 후쿠오카 마츠리에 사용하는 현대식 야마가사(山笠)

 

일본에서 우동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조텐지(承天寺)를 돌아본 후 나카무라(中村) 조리학교의 이사장 나카무라테쓰(中村哲)씨를 만났다. 실제로 우동의 발상지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나카무라씨는 사실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하카다의 조텐지(承天寺)가 일본 우동의 발상지입니다. 만두와 오차도 그 시절에 함께 건너온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하카다는 예로부터 중국과 조선을 상대로 하는 무역항 역할을 했고, 절이 우동의 발상지라는 것은 그 당시 스님들이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나 조선에 유학을 많이 갔기 때문이란다. “그 당시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신분은 정부 관계자나 스님뿐이었습니다. 일반인이 유학을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면서 나카무라씨는 “우리가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문화의 흐름이다”고 강조했다. 스님들이 중국이나 조선에 유학을 간 것은 문화를 배우면서 덤으로 들여온 것이 우동·만두·오차다. 일본에서 우동이 이렇게 탄생했으나 요즈음처럼 인기를 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널리 번지게 됐던 것이다.

이유는 쌀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아무리 벼농사가 잘 돼도 세금을 많이 내야 했고, 그나마 남는 것은 팔아야 생활이 가능했다. 그래서 농민들이나 일반인들이 간단하게,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먹는 음식인 우동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옛날 방식으로 만든 전통 우동

 

우동과 소바에도 자연과 문화와 인간의 노력 흘러

일본인들이 즐기는 소바(蕎麦)는 우동보다는 다소 비싼 음식으로 손꼽힌다.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일본의 우동은 따뜻한 남쪽에서 많이 재배되고, 소바는 북쪽에서 주로 재배된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다시 나카무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남쪽은 평야지대라서 일찍이 벼농사나 밀농사가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홋카이도(北海道) 같은 북쪽 지방에는 논밭이 없어서 산악지대에 메밀을 심게 됐습니다. 한국의 강원도에도 메밀을 많이 심지요? 그러한 이치(理致)입니다.”

나카무라씨의 분석은 정확했다. 우동에도 소바에도 자연과 문화와 인간의 노력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기름진 땅에서 재배되는 쌀과 밀,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소바. 참으로 신비스러운 자연의 조화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기름진 땅에서 보다는 척박한 땅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게 자연의 이치와 섭리 아닌가. 우동 한 그릇, 소바 한 그릇, 소홀하게 다루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우동 발상지 하카다에서 깨달은 인간의 삶이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업무를 했다.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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