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나일강의 수에즈운하 개통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토목기술상의 문제로 단념하고, 나폴레옹도 홍해와 지중해의 수위차가 25㎝에 불과한데도 10m로 너무 높게 측정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프랑스가 이토록 수에즈운하에 집착한 이유는 막강 해운대국으로 대서양에서 누리는 영국의 절대적 우위를 흔들기 위함이었다.

1854년 이집트 왕으로부터 운하 공사권과 조차권을 따낸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다시 운하뚫기를 시도했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프랑스인의 회심의 카드였다. ‘수에즈운하 만국회사’를 설립한 레셉스는 주식을 프랑스(20만7000주)와 이집트 왕(17만7000주) 몫으로 나누고, 개통일로부터 99년간 이 회사가 운하를 독점 운영하기로 이집트와 계약을 체결했다. 운하는 1859년 4월 공사를 시작해 15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고 수천 명의 목숨이 희생된 끝에 1869년 11월 17일 개통됐다. 대서양과 인도양, 동양과 서양을 가로막았던 단절의 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운하개통 후 런던에서 인도에 이르는 뱃길은 1만7300㎞에서 1만138㎞로, 7000㎞ 이상이나 단축됐다.

심기가 편치 않았던 영국에 기회가 찾아온 것은 개통 6년 뒤였다. 사치로 빚에 시달리던 이집트 왕 이스마일 파샤가 1875년에 주식 전량을 영국에 팔아 넘긴 것이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가 국유화를 선언, 운하는 이집트 소유가 됐지만 이 과정에서 수에즈분쟁이 일어나 세계를 긴장시켰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