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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 ⑦] 로드아일랜드州, 프로비던스, 뉴포트, 대장원(大莊園) ‘더 브레이커즈’ ‘마블 하우스’, 밴더빌트 가문

↑ 아퀴드넥 섬 남단 대서양 연안의 대장원 저택과 ‘바다의 절벽길’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로드아일랜드州

▲로드아일랜드 이주사

 

매사추세츠의 지나친 형식성과 위선적 권위주의가 싫어 로드아일랜드에 정착

뉴잉글랜드 정착지의 개척 과정은 개신교의 분파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퓨리턴 식민지들의 맏형인 매사추세츠는 교회를 통해 퓨리턴 신앙의 정통성을 고수하고 현실 사회에서 퓨리턴적 이상을 삶 속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때때로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신자들의 신앙 양심에 관대하지 못하고 그들을 배척했다. 이 때문에 ‘퓨리턴적인 것’의 지나친 형식성에 집착하고 조직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위선적 권위주의적 조직체로 비치기도 했다.

이것에 불만을 품고 저항하다가 추방된 사람들, 탄압을 못이겨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나선 사람들, 퓨리턴 신앙의 순결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몇몇 지도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며 새로운 식민사회를 형성했다. 코네티컷, 뉴헤이븐, 로드아일랜드 등이 이런 사정에 의해 개척된 곳이다. 이 지역들은 점차 맏형인 매사추세츠와 경쟁하는 세력으로 발전했다.

로드아일랜드는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된 로저 윌리엄스를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 든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개성적이고 고집스러운 신앙 성향과 사회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종교적 극단주의자, 자유사상가, 무정부주의자 등의 과격한 성향의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그들은 매사추세츠의 강압적이고 집단주의적인 통치에 반발하여 떠나온 사람들이라 무엇에도 매이기 싫어했다.

그래서 공동의 신앙고백이나 신조, 공동의 교회체제, 공동의 신앙생활 양식, 법에 따라 강요되는 공동의 종교의식 같은 것은 아예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틀에 박힌 종교적 질서를 원천적으로 배격했다. 그들의 신앙적 삶의 기본단위는 신앙양심을 지키는 개인과 그 개인들로 구성된 가정이었다.

뉴잉글랜드 6개주 지도(왼쪽)와 로드 아일랜드 상세 지도

 

프로비던스, 포츠머스, 뉴포트, 워릭 등이 새로 형성된 주요 정착지

로드아일랜드 식민지의 모체가 되는 정착지는 나라간셋트(Narragansett)만 북쪽에 위치한 프로비던스(Providence)다. 뒤를 이어 포츠머스(Portsmouth), 뉴포트(Newport), 워릭(Warwick)이 들어섰다. 토지는 원주민 부족들과 개별 접촉해 그때그때 매입했다.

프로비던스는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된 윌리엄스가 1636년 건설한 정착촌이다. 윌리엄스는 이곳 지명을 고통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역사라고 생각해서 ‘신의 섭리(Providence)’라고 명명했다. 2년 뒤에는 역시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당한 허친슨과 그 추종자들이 나라간셋트만 입구에 위치한 아퀴드넥(Aquidneck)섬(공식 명칭은 로드섬)에 정착하면서 포츠머스가 시작된다.

프로비던스의 로저 윌리엄 공원에 있는 로저 윌리엄 동상

 

보스턴에서 상업에 종사하다 신앙문제로 마찰을 빚은 사람 중에는 윌리엄 코딩턴도 있다. 그는 부와 지식, 정치적 감각과 경제적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이다. 그 역시 새 정착지 건설에 나서 현재의 로드섬 남단에 뉴포트 정착촌을 조성했다.

프로비던스, 포츠머스, 뉴포트, 워릭의 정착민들은 광대한 나라간셋트만을 가운데 두고 주변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데다 나름대로의 신념과 고집에 사로잡힌 이상주의자들이어서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않은 채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다. 그러자 이 정착촌들을 흡수하려는 매사추세츠의 위협이 노골화했다. 국왕의 특허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다.

결국 고립과 독립성에 만족해 오던 이곳 정착지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뭉치기 시작했다. 통합의 주도적 역할을 한 지역은 위협을 가장 민감하게 느낀 프로비던스였다. 윌리엄스가 1644년 크롬웰 영국정부에서 특허장을 발급받아 독자적인 식민지 기초를 세우고 1647년 네 정착지의 대표들이 모여 로드아일랜드의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헌법은 통합 정부와 개별 정착지 사이의 권력 분산을 명시하고, 공직의 기회를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하고, 모든 주요 사안을 주민 투표에 따라 결정하도록 했다.

프로비던스 시가지 모습

 

로드아일랜드는 상업 중심지 뉴포트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교역 활동에 힘입어 점차 경제적 번영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의 드높은 이상은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 노예무역까지 성행하며 세속화되었다.

 

▲뉴포트
로드아일랜드주의 진주이자 대서양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5월 8일, 매사추세츠주 데드햄에서 짐을 모두 차에 싣고 다시 남쪽을 향해 도시 노마드 행렬을 시작했다. 뉴포트까지 이동거리는 62.5마일, 소요시간은 70분이다. 당초 정한 여행 방향이 일단 뉴욕시티에서 대서양 해안을 따라 북쪽의 메인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애팔래치안 산맥을 따라 내려와서 마지막에 북서쪽 뉴욕주로 향하는 것인데, 오늘은 역방향이 되어 남쪽으로 간다.

뉴포트는 로드아일랜드주의 진주이자 대서양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다. 19세기 말 여름별장지로 알려진 이곳에 뉴욕의 은행가, 철도 재벌, 무역상 등 대부호들이 여름별장을 지었다. 미국 역사에서 1860년대부터 1893년까지의 남북전쟁 이후 부흥기를 ‘Gilded Age(황금기)’라고 부른다. 마크 트웨인과 찰즈 더들리 워너가 미국의 대규모 산업 부흥기의 영광을 일컬어 ‘Gilded Age’라고 부르면서 일반화된 용어다.

이 시대에 미국 주요 도시에서 엄청난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1876년 벨이 전화를 발명하고, 1879년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했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과 함께 록펠러의 석유사업, 카네기의 철강산업, J P모건의 은행산업, 밴더빌트의 철도산업이 번창하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쥔 부호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여러 부호들이 미국 곳곳에 화려한 건축으로 부를 과시했다. 이 황금기에 뉴욕에서 가까운 대서양 연안의 뉴포트로 몰려온 부호들이 경쟁적으로 화려하게 대장원(大莊園)을 지었다. 오늘날에는 일부 장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존협회 비영리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뉴포트의 요트 센터

 

퀘이커 교도들이 영국 본토와 매사추세츠에서 몰려와 정착

뉴포트가 원래 부자들만의 사교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뉴포트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들은 매사추세츠에서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추방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매사추세츠에서 남쪽으로 이동, 저마다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었는데 뉴포트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에 앞서 1656년 보스턴에 퀘이커교도가 들어오자 매사추세츠는 이들을 ‘사탄의 사자’로 규정하고 엄격히 단속했다. 매사추세츠주 투옥, 벌금형, 장형, 화인형, 추방형 등의 법령을 강화한 반면 로드아일랜드는 신앙의 자유와 개별성을 중시하는 신앙적 분위기 때문에 퀘이커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이와같은 종교적 관용의 분위기 때문에 영국 본토 뿐만 아니라 보스턴 등 매사추세츠 식민지로부터 종교적 박해를 심하게 받던 퀘이커 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이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 집중적으로 정착했다. 퀘이커교도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1700년대에 이르러서는 뉴포트 주민의 절반이 퀘이커교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개인적 신앙 체험을 중요시했다. 전쟁 참여를 거부하고, 맹세를 하지 않으며, 검소하게 살고, 음주를 하지 않고, 노예제에 반대했다. 이들은 예수 당시의 신앙의 자세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교회 건물도 필요 없고, 종교의식과 종교적 권위와 목사의 권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 개인이 성령이 인도하는 내면의 빛을 따라 고요하게 살아가자는 주장이다. 뉴포트는 이처럼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퀘이커교도들의 본거지가 됐다.

뉴포트는 나라간셋트만과 대서양이 맞닿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활발한 경제활동과 진취적 전향적 분위기가 더해져 그후 로드아일랜드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때는 보스턴, 뉴욕과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부의 증가는 인간에게 만족과 여유를 주기는커녕 더욱 부에 목마르게 만들어서 뉴포트는 노예무역의 전초기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뉴포트 해변 드라이브 코스 정말 멋져

밖에 간간이 비가 내려 비도 피할 겸 차를 타고 뉴포트 해변을 드라이브했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이어져 있다. 멋진 바다 절경을 배경으로 시커먼 바위절벽 위에 지어진 맨션들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 바위절벽을 전력 질주하여 때려 놓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러가는 파도의 정취는 매 순간이 새로운 풍경화였다. 약 1시간에 걸쳐 해안도로를 전세낸 듯 유유자적하며 드라이브를 했다. 1시간 이상 초저속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앞이든 뒤이든 차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았다.

뉴포트 반도 안에 있는 포트 아담스 주립공원, 브랜턴 포인트 주립공원, 발라드 공원과 구석구석 자리잡은 그 많은 별장 하나하나가 모두 놓치기 싫은 풍경들이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어서 보고 또 보며 최대한 차의 속도를 늦추며 왕복했다. 이곳은 대부분 별장이라서 여름에만 집주인들이 나타난다. 더구나 지금은 비가 내리는 늦은 저녁이라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정말 도로를 전세낸 듯 여유있게 드라이브를 했다. 드라이브 코스로 강추다.

부자의 요건은 아름다운 별장과 요트다. 부자들의 호화별장이 들어선 뉴포트 바다에서도 당연히 요트가 명물이다. 여름 별장들과 함께 1750년대 당시 뉴포트는 레저 보트들이 항구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1844년 뉴욕 요트 클럽이 설립되면서 뉴욕의 부자들이 뉴포트로 몰려들었다. 요트 박물관이 있는 아름다운 포트 아담스 주립공원에서는 매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하얀 현수교 ‘클레이본 펠 다리’와 뉴포트 항구를 조망하는 포트 아담스의 아름다운 무대가 음악축제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뉴포트와 제임스 타운을 잇는 하얀 현수교 ‘클레이본 펠 뉴포트 다리’ (3428m)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미국의 대표적 포크송 싱어 조앤 바에즈를 배출한 포크송 음악축제로 유명하다. 첫 페스티벌은 1959년 열렸다. 부호들이 사는 동네 이름에 걸맞게 여름 백악관으로 사용된 집들도 이곳 포트 아담스에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여름 별장, 케네디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오나시스의 어린시절 집이 그것이다.

 

바다에 붙여 조성한 대장원들의 정원을 가로질러 만든 산책길은 뉴포트 최고의 명소

다음날 아침, 비가 장대비로 변해 주룩주룩 내렸다. 얄궂은 봄비는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징그럽게 따라 다닌다. 대서양을 따라 펼쳐진 벨뷰 장원 지대 앞 바다의 절벽길(Cliff Walk)을 날궂이 하듯이 우산을 쓰고 걸었다. 활 모양으로 오목하게 이어지는 바다 절벽길 끝에 마을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한 쪽으로는 바다를 향해 한껏 폼을 잡고 서 있는 아름다운 대장원들의 건물과 정원을 감상하고, 다른 쪽으로는 해안가 바위덩어리를 조용히 때려대고 물러나는 파도의 격한 곡선과 검은 수평선 너머로 아득히 사라지는 무역선의 모습을 바라본다.

바다에 붙여 조성한 장원들의 정원을 가로질러 일반인들의 산책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할 건물주들은 별로 없었을 터인데 길을 내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거 같다. 어떤 집 앞엔 길이 좁아 장원의 정원을 일부 잘라 길을 만들기도 했는데, 덕분에 뉴포트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해변의 대장원 지역과 바다의 절벽길. 사진 위쪽 다리는 ‘클레이본 펠 다리’다.

 

사실 뉴잉글랜드 여행 내내 불만이었던 것이 대부분 천혜의 절경은 개인들이 사적 공간으로 점유하여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뉴잉글랜드 여행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뉴포트가 대부호들의 정원 앞 길을 잘라 일반인이 걸을 수 있도록 산책길을 조성한 것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한 빗속을 뚫고 바닷가 절벽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 말고 두어 팀 정도밖에 없었다. 절경으로 유명하지만 운치와 멋에서는 제주도 올레길이나 부산의 태종대에 떨어진다. 다만 집은 별 볼 일 없고 자연만 아름다운 우리나라에 비해, 아름다운 집들이 자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서양의 풍경은 부러웠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절벽길 산책을 중간에 중단했다.

 

▲대장원(大莊園) ‘더 브레이커즈’ ‘마블 하우스’
 두 대장원 모두 뉴욕 철도 재벌 밴더빌트 가문의 별장

대장원(大莊園)들은 아퀴드넥 섬(Aquidneck island) 남단의 대서양 연안 벨뷰 애비뉴 지역에 아름답게 가꾼 정원과 함께 들어서 있다. 독특하면서도 많은 건물들이 잘 구획된 도로를 따라 질서정연하다. 그중 유명한 대장원이 ‘더 브레이커즈(The Breakers)’와 ‘마블 하우스(Marble House)’다.

이곳의 저택들은 뉴욕 철도 재벌 밴더빌트 가문이 별장으로 지은 것이다. 입장료를 내고 아름다운 정원에 마음을 빼앗기며 감탄하다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 돈을 다 써도 좋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집을 만들어 보시오”라고 주문을 한들 이 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으로 벽면과 가구를 장식하는 것은 기본이고 당시 유럽 최고의 인테리어 전문가들을 불러오고 당대 최고의 건축 자재를 총동원하여 지었다. 프랑스의 궁전들을 모본으로 지었으나 이들 절대왕조의 성들 못지않게 화려하고 대단하다. 나는 그동안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루아르 지방의 쉬농소 성, 앙부와즈 성, 블로어 성 등을 둘러본 적이 있으나 지금 느낌으로는 더 브레이커즈의 내부 인테리어가 그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것 같다.

 

대저택의 내부 인테리어, 내 상상의 한계 뛰어넘어

‘더 브레이커즈’의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정원을 감싸는 아름드리 나무가 곳곳에 우람하게 둘러서 있다. 초봄을 맞아 갓 솟아나온 새싹들이 연두색 녹황색 연녹색 자색 등 제각각 타고난 수줍은 빛으로 봄단풍을 연출하고 있다. 대저택은 옅은 회갈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3층 모양의 4층집으로 45×75m 크기다. 대서양을 바로 앞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했다.

대저택 ‘더 브레이커즈’

 

규모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내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더 브레이커즈’는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2세가 1895년에 지은 여름 별장이다. 흰색 기둥과 벽 판넬, 그리고 금장 조각품으로 장식된 천정을 가진 2층 반짜리 15m 높이의 중앙홀이 중심이다. 짙은 갈색과 금장을 한 벽의 서재, 회색과 금장 벽에 빨간 커튼을 두른 음악실, 비공식 모임 장소인 아침방, 대리석과 금동으로 화려하게 꾸민 벽과 고전 천장화가 아름다운 식당, 시원한 회청색 대리석 벽의 당구실을 비롯해서 70개의 방이 있다.

이들 중 33개가 하인들 방으로 200명의 손님을 위한 만찬을 언제든지 열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이토록 화려한 별장을 지어놓고도 밴더빌트 2세는 사업과 자선활동으로 바빠서 자주 들르지 못하다가 ‘더 브레이커즈’가 완공된 다음 해에 중풍을 맞아 3년 뒤에 사망했다. 이 집을 지은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Richard Morris Hunt)도 건물 완공과 함께 사망했다. 얄궂은 집이다.

리처드 모리스 헌트

 

‘마블 하우스’도 ‘더 브레이커즈’를 설계한 미국의 걸출한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가 설계했다. 윌리엄 밴더빌트 부부가 설계를 요청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에서 영감을 받아 공사를 시작한지 4년만인 1892년 완공했다. 윌리엄은 건축물이 완공되자 아내인 앨바 밴더빌트의 39번째 생일 기념으로 이 집을 선물로 주었으나 겨우 두해 여름만 이곳에서 보내고 이혼하는 바람에 ‘마블 하우스’는 결국 앨바 부인의 사교장으로 활용되었다.

외관은 2층 슬라브 지붕의 흰색 석조 건물로 평범하다. ‘더 브레이커즈’보다는 규모가 작고 단순하다. 입구의 현관에 4개의 코린트식 열주가 단정하게 서있고 양 옆으로 마차 플랫폼이 프랑스 궁정 현관과 같이 반원형으로 펼쳐져 있다. 대서양 연안 쪽 정원의 끝자락에는 화려한 중국식 청기와를 이고 있는 원색의 다실 건물이 화려하게 자리잡고 있다. 잔디 정원은 우듬지(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가 정교하게 곡을 틀며 아름답게 감아 올라간 몇 그루의 나무가 있을 뿐 장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대서양의 검은 바닷물과 이어져 광대한 수평선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마블 하우스’ 역시 평범한 외양과는 달리 실내 모습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중앙홀은 황금색 시에나 대리석과 금장 조각품으로 벽과 바닥이 우아하게 치장되었으며, 대부분의 방이 황금색 및 붉은 계통 색조의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으로 단장되었다.

대저택 ‘마블 하우스’

 

미국 자본주의의 극치를 보면서 극단적 부의 편재 생각하게 돼

자본주의 자본가들의 권력이 절대왕조의 황제들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자본주의의 극치를 보면서 이와 같은 극단적 부의 편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와 같은 무한한 부의 축적 가능성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면서, 반면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본주의 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부침의 흐름이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이 눈 앞의 이익만 쫓으며 정신없이 만들어 나간 대업들이 거품이 되어 마침내 가라앉으며 바톤 터치를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공황이 그것이고 우리나라의 IMF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마블 하우스는 짓는데 1890년대 당시 화폐로 200만 달러, 인테리어와 가구에 900만 달러가 들어간 초호화 궁전이지만 대공황의 파도를 맞아 1933년 단 돈 10만 달러에 처분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 덕에 엄청난 부자들의 호화재산을 공익단체가 사들여 일반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익단체에서 소유한 뉴포트의 장원들은 지금 연간 6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로 재탄생하였다.

 

▲밴더빌트 가문
밴더빌트 가문의 건축물들은 오늘날 ‘미국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대부분 지정돼

뉴욕에 가면 42번가에 유명한 그랜드 센트럴역(Grand Central Terminal)이 있다. 뉴욕의 관문으로 이용되는 허브 역사인데 기차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웅장하고 아름답다. 2500개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려 놓은 중앙홀의 아치형 천장은 마치 바로크 시대의 성당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그랜드 센트럴역도 밴더빌트 가문의 유산이다.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1794~1877)는 선박과 철도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남북전쟁 시 북군 연합군에 증기선 밴더빌트호를 기증하여 미국 정부로부터 금메달을 받았다. 이 메달은 밴더빌트 가문의 명예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그는 사망 직전에 내슈빌 소재 밴더빌트 대학교 설립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기증하여 학교명이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로부터 시작되는 밴더빌트 가문의 후손들은 뉴욕의 5번가 대저택(Great Mansions), 뉴포트의 여름별장,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의 빌트모아 저택 등 다수의 위대한 건축물들을 지었다. 이들이 지은 건축물들은 오늘날 대부분 ‘미국의 역사적 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s)’로 지정되었다. 밴더빌트의 후손들은 돈 버는 재주도 뛰어났으나, 돈을 날리는 재주는 더 뛰어났다.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을 남긴 직계 후손들은 결국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사후 47년 만에 거덜이 나서 무일푼이 되었고, 뉴욕의 밴더빌트 5번가 대저택 10개가 그의 사후 70년 만에 모두 날아갔다.

뉴포트의 아름다운 대저택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이 뛰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이것을 모두 보려면 적어도 1주일은 걸릴 듯 하다. 그런데도 단 2개의 장원만을 보고 떠나야 하니 너무 아쉬웠다. 이 외에도 엘름(The Elms), 로즈클리프(Rosecliff), 샤또수르머(Chateau-Sur-Mer), 킹스코트(Kingscote) 등 거대한 궁전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김정일

은행 지점장 퇴직 후, 뭐라도 배우고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한 ‘뭐라도학교’ 초대교장으로 3년간 활동하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10년째 소나무와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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