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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 ⑬] 버몬트주, 맨체스터, 하일딘(링컨家 별장), 에퀴녹스 산, 그래프턴과 뉴패인, 타샤 튜더 할머니 정원

↑ 링컨家의 여름 별장 ‘하일딘’ 건물과 정원 (출처 하일딘 홈페이지)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버몬트주

 

▲맨체스터의 링컨가 여름 별장 하일딘(Hildene)

 

링컨의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이 지은 집

시원한 차창의 바람을 맞으며 단숨에 맨체스터를 향해 달려서 링컨가의 여름 별장인 하일딘(Hildene)을 찾아갔다. 링컨의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Robert Todd Lincoln)이 지은 집이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서 지금도 영업 중인 유서 깊은 맨체스터의 에퀴녹스(Equinox)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40년 후에 맨체스터를 다시 찾아와 배튼킬(Battenkill) 계곡과 주변의 산들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60여 만평의 땅을 사서 조지안식 2층집 장원을 지어 1905년에 완공했다. 그는 어려서 맨체스터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길래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계곡에다 평생의 터전을 꾸렸을까?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왼쪽)과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

 

하일딘은 숲속으로 난 외길을 꽤나 오래 들어가야 그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은 연중 문을 열고 있어 집안 곳곳을 자세히 둘러볼 수 있다. 잘 정돈된 고가구를 구비하고 있는 거실과 서재, 식당과 침실 등 24개의 방은 링컨 가족들이 사용하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대단한 재력가의 방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벽난로는 티파니 유리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티파니 유리 공예와 보석 공예는 대단한 것인가 보다. 여행 내내 티파니 유리임을 강조하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다. 내가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던 ‘티파니’가 이곳에서는 귀중하고 값 비싼 장식품의 대명사이자 자랑거리로 소개되고 있었다.

알고보니 티파니 유리는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1848~1933)가 설립한 티파니 스튜디오에서 1878년부터 1933년까지 만든 유리 공예품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티파니 보석상을 설립한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 1812~1902)의 아들로 태어나 유럽 여행에서 중세시대의 유리제품에 깊은 감명을 받고 아름다운 색과 디자인을 표현한 유리 공예를 발전시켜서 미국의 국보적 존재가 되었다.

티파니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벚꽃과 여성’(1890년). 오른쪽 인물은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다.

 

백년이 넘은 파이프 오르간이 아직도 우렁찬 음색을 자랑

우리 외에 다른 팀 2명이 관람객의 전부였다. 안내인이 질문할 것이 있으면 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며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알려준다. 서재를 구경하고 있는데 안내인이 거실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거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2층 계단 중간에 1,000개의 파이프가 들어서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따라 2층 계단에 설치된 파이프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1층 홀에서 춤과 음악의 파티가 열렸던 것 같다. 백년이 넘은 파이프 오르간이 아직도 우렁찬 음색을 자랑하며 매일 연주되고 있다. 홀의 가운데 정문을 열면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며 멀리로는 막힘이 없는 버몬트주의 그린마운틴 자연경치가 파란 하늘과 함께 한 눈에 들어온다.

2층에는 후손들의 침실이 몇 개 있다. 한쪽에는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글과 그림, 흉상 등이 전시되어 있고, 사진과 데드 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다. 미국에서 링컨 대통령의 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링컨 대통령의 업적과 노예해방의 과정을 설명하는 글과 역사적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아서 링컨 대통령의 작은 기념관이라고도 할 수 있게 꾸며 놓았다.

하일딘 2층 모습

 

한국 정원처럼 자연적 운치 더해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

저택 앞 정원은 배튼킬 계곡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다. 기하학적 프랑스식 정원이다. 정원을 멀리서 보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보이지만 정원의 끝으로 가보면 산과 정원 사이에 깊은 배튼킬 계곡이 장엄한 파노라마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정원은 쥐똥나무 생울타리로 기하학적으로 구획하고 각각의 구획별로 각기 다른 색의 꽃과 초화류를 심어 넣어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게 설계했다.

하일딘 정원 일부

 

정원에는 유난히 작약꽃이 많았는데 한창 꽃봉오리들이 맺고 있었다. 이 작약 꽃봉오리들이 6월 중순이 되면 만발하여 1,000송이 이상의 꽃이 핀다고 한다. 작약꽃을 매우 좋아하는 링컨 부인은 이 꽃이 필 때면 지인들을 초대하여 꽃을 감상하며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정원의 한쪽에 거대한 바위가 솟아있고 큰 그늘 나무가 서있어서 한국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적 운치를 더해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계곡을 내려다보는 절벽의 돌담에 서면 시원한 바람과 드넓은 시야가 최고의 정원임을 실감나게 한다. 포멀 가든 옆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넓은 초원, 여러 가지 채소를 키우는 텃밭, 쉼터, 오두막 등이 정겹게 전개되어 있다. 잘 다듬어진 기하학적 정원과 그 둘레에 펼쳐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오버랩되며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한 감동을 준다.

현재 기념품점 겸 매표소로 사용되는 건물은 원래는 링컨가의 마차고였다는데 매우 크고 지금도 쓸만하다. 정원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을 고르는데 천장에 여러 도시 이름과 함께 금액이 붙어있다. 연유를 물어보니 풀만 기차를 복원하기 위하여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각 도시별로 현재까지 모금된 금액을 표시한 것이란다. 로버트 링컨은 풀만 궁전기차 회사를 운영했었는데, 궁전기차란 기차에 침대를 비롯한 편리한 의자와 테이블 등을 갖춘 고급 특실형 기차다.

이 저택 역시 버몬트주에서 구입·관리하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특권층의 화려한 부와 재산이 결국 국가와 일반에게 돌아가도록 후손들과 국가가 잘 협력하는 것이 그들 특권층이 누린 호사를 욕되게 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퀴녹스 산

 

민간회사가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도로 만들어 통행료 받아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하다. 오늘 일정은 에퀴녹스(Equinox)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로 시작했다. 해발 1,175m의 산인데 민간회사가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도로를 만들어 통행료를 받는다. 산 정상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동쪽으로 버몬트의 그린 마운틴즈와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즈를 볼 수 있고, 서쪽으로는 날씨가 맑은 날에는 뉴욕주 최대의 산림공원 아디론댁(Adirondacks)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북쪽으로 캐나다 몬트리얼의 로얄산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에퀴녹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도로

 

그런데 막상 산 정상에 올라가보니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때문에 조망이 잘 안되어 답답했다. 그러나 전망대 공사가 대규모로 진행 중이니 머지 않아 멋진 조망을 즐길 날이 올 것이다. 표지판을 살펴보니 전망바위(Lookout Rock)라는 안내문구가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좁은 산길을 따라 약 20여분 동북쪽으로 걸어 내려가서 드디어 전망바위에 서니 탁트인 전망을 조망할 수 있었다.

한 눈에 보이는 산들은 봉분마냥 넘실넘실 한없이 멀리 이어지고 있었다. 해발 1,130m의 전망바위 아래쪽으로 산과 산 사이에 너른 분지가 있고 그곳에 포근하게 둥지를 튼 맨체스터 빌리지의 전통 가옥 마을이 숲속에 점점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였다. 망원렌즈를 통해 풍경을 당겨서 보니 하얀 교회와 꽤 고층의 흰 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상당히 큰 동네였다. 동네의 중심가는 녹색 자연과 흰색 건물만 보여서 깨끗하고 깔끔하였다.

에퀴녹스산 정상

 

▲카투시안 수도원

 

세상과 절연하고 검약하고 엄격한 수도 생활 지켜

다시 차를 주차해 둔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길 곳곳에 전망 좋은 포인트가 있다. 그때마다 차에서 내려 감상했다. 제1봉(Big Equinox)에서 약간 내려가다 보면 맞은편이 제2봉(Little Equinox)이고 그 사이에 산 아래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이 갈림길도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전망 좋은 포인트다. 서쪽으로 앙증맞게 내려다 보이는 카투시안 수도원(Carthusian Monastery)과 마들렌 호수(Lake Madeleine) 풍경이 인상적이다.

카투시안 수도원

 

호수 옆 숲속에 파묻힌 거대한 화강암 건물 속 수도원은 외부와 단절된 은둔과 고요 속에서 수도를 하는 곳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대신 서점과 기념품 판매점은 방문할 수 있고 아름다운 피크닉장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수도원에 들르지는 않았다. 에퀴녹스산의 이 드라이브 도로는 길이가 약 8.5㎞다. 조셉 데이비슨(Joseph G. Davidson)이 산을 사들여 1939년 공사를 시작하고 1953년 완공한 뒤 카투시안 수도회에 기증했다. 수도원 건물은 1960년에 건설되었다.

카투시안 수도원은 독일의 쾰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성 브루노(St. Bruno Hartenfaust, 1030~1101)가 정치에 물든 종교에 염증을 느끼고 1084년 프랑스 그르노블 근처의 깊은 숲속에서 그를 따르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이나 동굴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본받는 삶을 살기위하여 수도 생활을 했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유럽 전역에 약 200개 소의 카투시안 수도원이 있었다. 이들은 종교개혁을 인정하지 않아 많은 박해와 공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더욱 세상과 절연하고 검약하고 엄격한 수도 생활을 지켜나갔다.

산을 내려와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배튼킬 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으나 역시 강가를 따라 자리잡은 개인주택들 때문에 강가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별로 많지 않았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볼 수 있는 플라이낚시에 의한 송어잡이가 유명한 곳이지만 아직 시즌이 일러 낚시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비시즌이라 호젓하고 편리하긴 한데 볼 것이 많이 없어 너무 아쉽다. 초록의 잎과 갈색 나무 가지가 녹아있는 듯한 특이한 녹갈색을 띠며 흘러가는 배튼킬 강의 강물은 또 하나의 이국적 자연 풍경이다.

 

▲그래프턴과 뉴패인

 

그래프턴은 옛날 보스턴에서 몬트리얼로 가는 길에 하룻밤을 묵던 마을

확실한 안내서 없이 배튼킬 강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경치 좋은 곳은 모두 개인 사유지여서 캠핑장을 대신 찾아갔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맨체스터를 떠나 인근의 아름다운 소도시로 소개된 그래프턴(Grafton)과 뉴패인(Newfane)으로 향했다. 에퀴녹스산 입구에서 그래프턴까지 37.5마일 약 1시간 거리다. 버몬트 주도 7A 북쪽으로 진행하다가 맨체스터 센터 로타리에서 주도 11번 동쪽과 121번 동쪽을 타고 그래프턴에 도착했다. 작지만 단단한 품격이 느껴지는 도시임에 분명하지만 그날 내 눈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소도시 중의 하나로 비쳤다.

그래프턴. 왼쪽 건물이 우체국이다.

 

뉴잉글랜드에서 아름다운 소도시라고 소개된 곳을 찾아가보면 비슷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대개 역사가 약 200년 이상 된 영국풍의 마을이다. 메인 스트리트에 높은 첨탑을 한 교회가 마을의 수호신인양 고상하게 자리잡고 있고, 거리 끝에는 역시 약 2세기 이상에 걸쳐 마을을 웃고 울린 온갖 사연을 전설처럼 간직하고 있는 술집 겸 여인숙인 주막(Tavern)이 있다. 마을 한쪽에는 큰 시냇물이 흐르고 단아하게 지어진 고옥들이 반짝이는 역사를 자랑하며 잘 가꾸어진 화단과 함께 기품을 뽐내고 있다.

그래프턴의 겨울 설경 사진을 보면 하얀 첨탑이 솟은 교회가 산을 배경으로 시선을 잡아당긴다. 마을의 집들은 회색 지붕에 흰 페인트 칠의 판자집들로 내가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풍경을 보는 듯 산뜻하다. 이곳은 옛날 보스턴에서 캐나다의 몬트리얼로 가는 길에 하룻밤을 묵고 지나가는 마을이다. 1801년 문을 연 주막이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3층의 하얀 건물에 30여 개의 방을 갖추고 영업을 하고 있다.

 

뉴패인은 뉴잉글랜드의 대표적 포토존

‘정글북’이라는 단편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프 키플링(Joseph Kipling)은 그래프턴을 매우 좋아해서 1892년 이 마을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활석(soapstone) 채석장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다가 19세기 말 활석이 고갈되면서 쇠퇴해서 폐허가 될 운명에 처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이 마을을 찾은 한 사람이 채석장이 있던 곰산(Bear Mountain)과 색스턴강(Saxtons River)이 자아내는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과 영국풍의 산뜻한 집들에 반해서 이 마을에 투자를 할 생각으로 지역발전전략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시했다. 이후 마을을 가꾸면서 마을의 주요 산업인 낙농업을 치즈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체다 치즈(Cheddar cheese) 생산이 버몬트주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인구 600여 명의 소도시이고 지금은 관광객이 우리 밖에 없지만 가을 단풍철에는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북적인다고 한다.

뉴패인은 그래프턴에서 남쪽으로 15분 거리에 있다. 우리 민족을 백의(白衣)민족이라고 한다면 영국민족은 백가(白家)민족이라고 해야 할라나? 뉴잉글랜드에서 역사가 깊은 소도시들의 집은 대부분 하얀집이다. 뉴패인의 중앙 광장에 자리한 대표적 건물인 교회와 법원, 타운홀과 주막도 모두 하얗다. 초록색 잔디와 수목 그리고 파란 하늘이 하얀 건축물과 대비되니 순결함 그 자체다. 싱그럽고 신선하다. 그래서 뉴패인은 뉴잉글랜드의 대표적 포토존으로 꼽힌다.

뉴패인. 건물이 모두 하얗다.

 

▲타샤 튜더 할머니 정원

 

한국에서도 인기 많았던 정원

버몬트주에서 매사추세즈주 서쪽의 노스애덤스(North Adams)를 향해 가다가 말보로(Marlboro)에서 묵을까 하고 GPS로 이리저리 찾아보는데 갑자기 ‘타샤 투더 뮤지엄(Tasha Tudor Museum)’이 뜬다. ‘타샤 튜더 할머니 정원’은 우리나라에서도 TV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었다. 책도 수십 권이 번역되어 팔렸다. 나도 TV와 책을 통해 좋아했던 할머니이기에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타샤 튜더 할머니 정원에 관한 정보를 여러모로 찾아보았다. 알고보니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고 매년 한 두 번 정도 특정일에만 공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해서 우리 일정과는 맞지 않아 일정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GPS에 뮤지엄이 뜨니 궁금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로 뮤지엄이라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GPS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갔다.

타샤 튜더

 

길은 울창한 숲속 비포장도로로 이어졌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만큼 첩첩산중 속의 길이다. 사람 사는 집이라곤 어쩌다 한 두 채 씩 눈에 띄었다. 이런 울창한 숲 속에 한 두 집 씩 모여 살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오랜 시간을 달리니 목적지가 가까웠음이 GPS에 표시되었다. 참 깊은 숲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대를 갖고 다가가는데 한 촌로가 걸어오다가 어디를 찾아 가느냐고 묻는다. 타샤 튜더 뮤지엄을 찾아간다고 하자, 그런 곳은 없고 근처에 가족들 집이 있는데 개인 가정집이라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억양이 독특해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자기도 그 가족이라며 구구절절 무언가 설명을 하지만 내가 못 알아 듣는 표정을 짓자 난감해하며 미안하지만 돌아가라고 한다.

예상했던 터라 인사를 하고 안으로 조금 직진해 들어가서 차를 돌려 나오는데 그 분이 다시 차를 세우더니 숙소가 어디냐는 등 몇 가지 질문을 한다. 그의 표정에서 그냥 돌려보내자니 미안하고 집으로 데려가자니 곤란하다는 난감함이 읽혀졌다. 그래서 혹시나 정원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서 타샤 투더 할머니의 인기와 그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자기도 잘 안다며 그래서 매년 정원 투어를 몇 차례 실시하는데 금년에는 6월 중순 경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고민고민 하더니 결국에는 미안하지만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선다. 아쉽지만 인사를 하고 떠나왔다. 적극적인 한국인들이 이 산골짜기 숲속에서 한적하게 유유자적하며 사는 가족들을 찾아와 얼마나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더 떼를 써서 잠깐만이라도 정원 구경을 시켜달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 분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의 힘이 아닌 꽃을 사랑하는 열정만으로 세계인이 열광하는 정원 만들어

타샤 튜더는 버몬트의 자연환경을 매우 좋아해서 56세 나이에 그린 마운틴 산악지대 남쪽 말보로에 맘에 드는 숲을 매입한 뒤 뉴햄프셔에서 이사를 왔다. 30만 평이나 되는 넓은 숲에 초지를 만들고 정원을 조성했다. 버몬트는 겨울에 영하 20~3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악조건 지역이다.

타샤 튜더 정원

 

전문적인 식물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거의 혼자 힘으로 그 열악한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꽃과 나무를 찾아 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미국에서도 뛰어난 정원을 가꾸었다. 돈의 힘이 아닌 꽃을 사랑하는 열정의 힘으로 세계인이 열광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것이다.

그녀의 정원은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말고도 여러나라 TV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정원도 정원이지만 일생을 바쳐 낙원을 건설해 낸 그녀의 열정과 소박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마침 내 나이 56세다. 타샤 튜더가 버몬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 나이다. 직장 생활을 정년퇴직하고 떠나온 은퇴기념여행이지만, 지금은 내 인생의 종결점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해도 타샤 튜더의 정신으로 시작한다면 정말 멋있는 성취를 맛볼 수 있는 시점임을 새삼 되뇌이게 된다.

 

김정일

은행 지점장 퇴직 후, 뭐라도 배우고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한 ‘뭐라도학교’ 초대교장으로 3년간 활동하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10년째 소나무와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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