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이수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①] ‘K팝 아이돌 산업의 창시자’ ‘K팝 한류 열풍의 개척자’였는데…

↑ 이수만 (출처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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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는 거의 50년간 가수, MC, 기획자, 경영자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며 K팝의 세계화를 일궈낸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런 이수만에게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SM은 2000년 아이돌그룹 HOT의 중국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 진출을 선도했던 ‘K팝의 종갓집’이다. 방탄소년단(BTS)을 거느린 하이브의 등장 이전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여러 K팝 스타를 거느렸던 명문 기획사였다. 하지만 이수만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으로 매년 거금이 새나가는 문제가 불거져 자신이 세운 회사의 경영진과 정면 충돌하고 급기야 자기 주식의 상당부분을 방시혁의 하이브에 넘기면서 SM에서 중도 하차하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SM의 경영권을 둘러싼 일진일퇴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SM 경영권 인수 의사를 밝히고 나선 두 경쟁자는 BTS·뉴진스 등이 소속된 하이브와 카카오 계열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다. 하이브는 이수만과, 카카오엔터트는 SM 현 경영진과 각각 손잡으면서 합종연횡하고 있다. SM의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3월 31일이 되면 SM은 하이브와 카카오엔터 중 한 곳의 품에 안기게 된다. 더불어 SM의 창업주이면서 ‘K팝 아이돌 산업의 창시자’인 이수만의 시대도 막을 내린다.

 

■개인 삶

이수만(1952~ )은 시대마다 각기 다른 이미지로 기억된다. 1970년대는 인기가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후반은 유명MC로 이름을 날렸다. 1989년부터 최근까지는 K팝 기획자나 기획사 대표로 활동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우리 가요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흔적은 ‘기획 가수’라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이었다. 이수만의 등장 전, 1970년대는 몇 사람의 대형가수를 전속으로 하고 있는 레코드사가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했다. 1980년대는 가수들을 관리·보조하는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이 레코드 회사를 설립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가 이수만의 등장 후 프로듀서, 매니지먼트, 자본의 힘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기획사들이 가수를 육성·배출해 가요계를 장악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수만은 아이돌 그룹 HOT의 성공 후 “미다스의 손”, “대중문화의 첨병”, “스타 제조기”로 불리며 우리 가요계를 쥐락펴락하고 그 영향력을 아시아 전반으로 확대해 “K팝 한류 열풍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성공 방식은 이후 우리 가요계 산업의 표준이 되었다.

 

▲가수와 유명MC

이수만은 서울에서 살던 부모가 6·25 때 피란간 부산에서 1952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희전문에서 수학물리과를 졸업한 교사였고 어머니는 이화여전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인이었다. 종전 후 가족이 둥지를 튼 곳은 서울 인왕산 자락의 종로구 부암동이었다. 이수만은 집에서 가까운 경복중을 거쳐 경복고에 입학했다. 어머니 덕분에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 이수만을 대중음악 세계로 인도한 것은 작은형 이수영이었다. 이수영은 항공대 시절 ‘활주로(runway)’ 밴드를 결성했다. ‘활주로’가 유명해진 것은 가수 배철수가 대학시절 ‘활주로’ 6기 멤버로 활동하면서였다.

이수만의 앨범 자켓

 

이수만은 형이 대학에서 밴드를 결성한 것처럼 자신도 경복고에서 ‘개구리(Frog)’라는 밴드를 결성해 리더를 맡았다. 1971년 입학한 서울대 농과대에서는 교내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즈’ 2기로 활동했다. 1972년 백순진과 함께 그룹 ‘4월과 5월’을 결성하고 1972년 4월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그해 10월에는 첫 솔로 앨범을 취입,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걸었다. 이수만은 1974년 개그맨 박성원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비바 팝스’의 후속 DJ와 1976년 MBC 라디오의 ‘청춘은 즐거워’ DJ를 맡아 재치 넘치는 언변과 입심을 자랑했다. 가수로는 1976년 MBC 신인가수상에 뽑히고 1977년 자작곡 ‘행복’으로 MBC 10대가수로 선정되었다. 이수만의 입담과 프로그램 진행 능력은 TV로 이어졌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MC를 맡아 재치 있는 진행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 총 8번이나 진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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