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이수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②] SM 소속 아이돌 그룹의 현란한 활약상

↑ 2022년 8월 20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의 ‘SMTOWN LIVE 2022’에 총출동한 SM 소속 아티스트들. 3만여 관객이 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처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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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현진영과 HOT

위 이수만의 개인사와 SM의 변천 과정에서 소개함

 

■SES : 데뷔 때부터 ‘가요계 요정’으로 불려

이수만은 HOT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SM 최초의 걸그룹을 기획했다. 걸그룹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눈요깃거리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게 그때까지 걸그룹의 경로였다. 이수만은 미국의 3인조 걸 그룹 TLC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 프로젝트 시작부터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두었다. 한국어 담당 최성희, 영어 담당 김유진, 일본어 담당 유수영이 수천 명의 경쟁자들을 뚫고 선발되었다. 이수만은 HOT 멤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걸그룹 멤버들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최성희는 바다, 유수영은 슈, 김유진은 유진이 되었고 이들의 이니셜을 따서 SES가 팀 명칭으로 정해졌다.

멤버들은 혹독한 트레이닝 끝에 1997년 11월 24일 ‘S.E.S.’ 제목의 1집 앨범을 발매하고 11월 28일 SBS 음악프로를 통해 데뷔했다. 요정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데뷔 당시부터 ‘가요계의 요정’으로 불렸다. SES는 일본(1998년 3월)과 대만(1999년 1월)에서도 데뷔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 걸그룹 최초로 한국, 일본, 대만에서 단독 공연을 하고, 공식 팬클럽을 보유하고, 일본 오리콘 차트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 걸그룹의 해외 진출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2002년 12월 공식활동을 접었다가 2016년 11월~12월 잠시 활동한 후 다시 팬들의 곁을 떠났다.

SES 3인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신화 :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는 SM이 배출한 6인조 보이 그룹이다. 1998년 5월 5일 데뷔 앨범이자 정규 1집 앨범 ‘해결사’를 발매했다. 1집이 3만장 판매에 그쳐 의기소침했으나 정규 2집 ‘T.O.P.’(1999년 4월 발매)가 인기를 끌어 기사회생했다. 신화는 HOT의 영향으로 신비주의 미소년이 주류이던 1세대 아이돌 붐 시장에서 유일하게 강한 남성미, 탈신비주의, 화려한 댄스 음악 등을 내세워 차별화에 성공했다. 신화 멤버들은 5년 계약기간이 끝난 2003년 7월 굿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가 2011년 본인들이 직접 신화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신화는 SM과 12년간 상표권 분쟁을 벌였다. 이수만은 신화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SM은 ‘신화’ 그룹명 상표권을 신화가 다른 기획사로 옮긴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에 출원했다. 이수만은 2004년 SBS 연말 특집 ‘가요대전’에서 프로듀서상 수상 소감으로 “SM을 나가서 잘된 사례가 없다”는 뼈 있는 말을 뱉었다. 바로 앞엔 상표권 분쟁을 겪고 있던 신화 멤버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신화는 2015년 오랜 소송 끝에 ‘신화’ 이름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3년~5년에 지나지 않는데도 신화는 데뷔 이후 25년이 지난 2023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룹 해체나 멤버 탈퇴와 교체 없이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붙여진 수식어가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다. 신화는 대한민국 댄스 그룹 최다 정규앨범 발매 기록도 갖고 있다. 정규 앨범 13집, 기타 앨범 3집, 라이브 앨범 3집 말고도 다수 앨범을 발매했다.

신화 멤버들

 

■보아 : SM 해외시장 진출의 상징적 인물

SM이 2000년 4월 코스닥에 입성하고 곧바로 대박을 칠 무렵, 이수만은 일본 시장 개척을 목표로 12세 초등학생 BoA(본명 권보아)를 연습생으로 발굴해 훈련을 시키는 중이었다. 당시 일본 최고 인기가수는 아무로 나미에였다. 이수만은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무로의 성장 궤적을 벤치마킹해 보아를 스타로 육성하기로 했다. 앞서 SES의 바다와 유진이 언어적 한계로 일본 활동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보아에게 최소 3년간 일본어를 가르쳐 무대에 세울 계획을 짰다.

보아는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이인데도 학교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서울 방배동 연습실까지 시외버스, 전철, 택시를 갈아타며 오갔다. 왕복 5시간이 걸렸지만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보아는 집에 돌아가서도 거울 앞에서 연습을 이어갔다. 보아의 일본 진출에는 HOT, SES, 신화 등이 벌어들인 수익이 쓰여졌다. 2000년 4월 코스닥 상장으로 현금도 확보했다.

보아는 14살이던 2000년 8월 1집 앨범 ‘ID: Peace B’를 발매하면서 데뷔했다. 일본에서는 이듬해 5월 같은 제목의 데뷔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SM은 일본 시장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장의 발판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데뷔 앨범은 오리콘 차트 싱글 20위에 오르는 데 그쳤으나 2002년 1월 선보인 네 번째 싱글 ‘리슨 투 마이 하트’가 일본 휴대전화 광고음악으로 깔리면서 대중성과 인지도를 얻었다. 같은 해 3월 나온 보아의 첫 정규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싱글과 제목이 같다)는 오리콘 차트 주간순위 1위를 기록했다. 일본 진출 1년 만에 얻은 성과였다. 보아는 SM 해외시장 진출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HOT 강타와 함께 SM 비등기 이사로 선임되어 지금도 활동 중이다.

보아 2집 앨범 (출처 SM엔터테인먼트)

 

■동방신기 : 아시아 음악시장 제패를 표방

동방신기는 2003년 12월 26일 5인조 그룹으로 데뷔했다.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는 뜻의 동방신기는 아시아 음악시장 제패를 표방하면서도 중국 시장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멤버들의 활동 가명을 이름 앞에 예명을 붙인 4글자 이름으로 작명했다. 유노윤호,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최강창민이 그것이다. 하지만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 시장 진출 후 일본 위주로 활동을 펼쳐 중국 음악시장을 타깃으로 삼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와는 조금 멀어졌다. 2009년 7월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3인이 SM에서 독립하기 위해 SM의 불공정 계약을 이유로 전속계약 효력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일부 인용결정을 하고 SM이 이의제기 신청을 했으나 법원이 2011년 2월 SM의 가처분 이의신청을 모두 기각함으로써 소송은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에서 SM의 전속 기간이 무려 13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노예 계약’이란 타이틀로 공론화되었다.

그 사이 3인은 2010년 9월, 자신들 이름의 영어 철자 앞글자를 딴 그룹 JYJ(김재중·박유천·김준수)를 결성, 각자의 본명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JYJ는 지상파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 출연하지 못했다. 떠난 자에 대한 이수만의 가혹한 응징 원칙이 이유였다. 당시 JYJ 소속사 관계자는 “JYJ가 공연하기로 약속된 장소에는 어김없이 SM 관계자들이 나타나 JYJ 공연을 강행하면 앞으로 SM 소속 아티스트는 일절 출연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SM에 JYJ에 대한 활동 방해를 금지하는 시정명령을 내려 JYJ에 힘을 실어주었다.

소송과 별개로 2010년 8월부터 유노윤호, 최강창민 2인만 남게된 동방신기는 2012년 3월 14일 출시한 일본어 싱글 ‘스틸(STILL)’이 발매 당일 오리콘 일간차트 1위에 오르고 3월 20일 해외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차트 통산 10번째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1월부터 4월까지는 일본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26회 공연에 55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입장권, 상품 판매금액 등을 합친 매출이 약 1000억원에 달했다. 55만명은 한국 가수가 국내·외에서 (투어 포함) 단일 공연으로 모은 최다 관객이었다. 3인조 JYJ는 멤버 중 박유천의 문란한 사생활 문제가 터지고 JYJ 팬덤이 박유천과는 손을 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완전체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2019년 4월 박유천의 마약 투약 문제로 인해 소속사마저 박유천과의 계약을 해지함에 따라 더 이상 완전체의 JYJ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동방신기의 5인조 재결합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동방신기 데뷔 초 모습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슈퍼주니어 : 중화권에서 신드롬 불러일으킨 첫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가 2005년 11월 6일 데뷔할 때 명칭은 ‘슈퍼주니어 0.5’였다. 데뷔 전, SM은 슈퍼주니어 0.5에 쟁쟁한 실력자와 대중에 이미 알려진 꽃미남 배우들 12명을 포진시켜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데뷔 당일 수천 명의 팬들이 SBS 등촌동 공개홀 뒷뜰에 모여들었고 이들의 응원 덕에 무대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SM은 중간중간 멤버와 인원에 변화를 주는 로테이션 방식을 목표했기 때문에 슈퍼주니어 0.5은 자칫 1년 만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슈퍼주니어 0.5’는 팀명에서 알 수 있듯 연도별로 멤버 전원을 교체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등용문 같은 그룹이었다. 그러다보니 동방신기 데뷔 후 SM이 연습생 2군을 정리하기 위해 한방에 내보낸 그룹이라는 설이 돌았다.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는 멤버들은 그룹 해체를 우려하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멤버들은 SM의 의도한 바와 달리 스스로 생존하고 발전하는 잡초같은 생명력을 보이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댄서가 필요없는 대형 인원이 한꺼번에 칼같이 움직이다가도 시시각각 변하는 안무 대형은 슈퍼주니어의 장기였다. 노래도 노래지만 예능에서 필사적으로 쌓아올린 ‘친근한 옆집 오빠’의 이미지와 함께 멤버들 간의 시너지가 어울려 SM도 손댈 수 없는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어느덧 팬덤을 형성한 팬들은 SM의 로테이션 시스템에 반발했다. 결국 SM은 2006년 6월 규현을 13번째 멤버로 영입한 뒤 정식 그룹 ‘슈퍼주니어’로 명명함으로써 힘을 실어주었다.

슈퍼주니어는 한류의 인기를 해외에서 개척한 그룹이었다. 동남아권 뿐만 아니라 중화권에서도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특히 중화권에서 한국 가수를 통틀어 신인상과 대상을 함께 수상한 최초 그룹이라는 영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부 한국 가수들도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중화권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경우는 슈퍼주니어가 처음이었다. 슈퍼주니어는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덧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2010년 7월 멤버 중 강인이 입대하고 중국인 멤버 한경의 소송 등으로 13명의 완전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슈퍼주니어 13명의 파트가 전부 있는 곡은 단 4곡밖에 안 된다. 현재 슈퍼주니어 이름으로 활동하는 멤버는 9인이다.

슈퍼주니어 13인 활동 때 모습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소녀시대 : 강력한 팬덤 갖춘 ‘걸그룹의 교과서’

동방신기(2004년)와 슈퍼주니어(2005년)가 데뷔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SM은 2005년 이후 연속적으로 적자를 냈다. SM이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한 것은 4년만인 2009년이었다. 일등 공식은 2007년 8월 5일 데뷔한 9인조 걸그룹 소녀시대였다. 소녀시대는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 이후 연달아 발매한 ‘소녀시대’, ‘Kissing You’, ‘Baby Baby’와 같은 청순하고 청량하고 사랑스러운 곡들로 인기를 얻어 데뷔 초부터 대중성과 인지도, 강력한 팬덤을 모두 갖춘 ‘걸그룹의 교과서’로 통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1월, ‘Gee’ ‘소원을 말해봐’의 초메가 히트곡을 탄생시켜 범국민적 신드롬과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아이돌의 아이돌’ 걸그룹으로 우뚝 섰다. ‘소녀시대’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걸그룹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상 보이그룹들의 음반 판매량을 이긴 유일한 걸그룹으로 통하며 수많은 걸그룹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소녀시대의 당대 영향력을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가 2012년 8월 대한민국 연예인을 대상으로 처음 발매한 소녀시대 우표였다. 소녀시대의 성과에 힘입어 SM은 2011년 K팝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후 소녀시대 멤범 4인이 재계약을 포기하고 SM을 떠나면서 2023년 현재 SM 소속은 5명(태연·써니·효연·유리·윤아)이다.

소녀시대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엑소(EXO) : ‘초능력 세계관’을 내세워 데뷔

엑소(EXO)는 2012년 4월 8일 초능력 세계관을 지니고 데뷔했다. EXO라는 이름은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엑소플래닛(exoplanet)’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SM은 2004년 동방신기부터 2009년 FX까지 매년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한 팀씩 번갈아 데뷔시키는 관행을 깨고 2년 넘게 신인 그룹을 선보이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었다.

베일을 벗은 엑소의 세계관은 충격적이었다. ‘엑소플래닛’이라는 미지의 행성을 배경으로 멤버 개개인이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리더 수호는 물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찬열은 불, 세훈은 바람, 첸은 번개를 다루고, 카이는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멤버를 상징하는 고대 상형문자도 정했다. 이수만이 엑소의 초능력 콘셉트를 직접 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데뷔 초기엔 판타지적인 요소를 중시한 그의 프로듀싱에 대한 열광과 냉소가 엇갈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세계관에 재미를 붙이는 팬이 늘기 시작했다. 엑소는 데뷔 이듬해 발매한 ‘으르렁(Growl)’이 히트하면서 3세대 대표 보이그룹으로 성장했다.

EXO는 EXO-K 6명과 EXO-M 6명으로 이뤄진 12인조로 데뷔했다. 한국인 6명으로 구성된 EXO-K는 EXO에 Korean의 K를 붙여 정해진 이름으로 한국어로만 노래한다. EXO-M은 EXO에 표준중국어를 뜻하는 Mandarin을 뜻하는 M을 붙여 이름을 만들었다. 어느 나라에서 공연을 하든 간에 중국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EXO-M의 중국인 멤버 3명 중 2명이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확인 소송 제기하면서 탈퇴하고 1명은 2022년 전속계약이 만료되어 2023년 현재 9인조(EXO-K 6명, EXO-M 3명)로 활동하고 있다. EXO-K와 EXO-M은 EXO의 유닛 그룹이 아닌 별개의 그룹으로 활동하는데 함께 모여 활동할 경우엔 EXO라 부른다.

엑소 (출처 SM엔터테인먼트)

 

■NCT : 무한개방과 무한확장이 콘셉트

NCT는 SM이 EXO(엑소) 이후 4년 만에 야심차게 선보인 보이그룹이다. NCT 뜻은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 혹은 SM의 신기술 ‘뉴 컬처 테크놀로지(New Culture Technology·신문화기술)’의 약자다. NCT는 2016년 4월 9일 중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2016년 4월 15일 KBS TV 음악프로그램인 ‘뮤직뱅크’로 데뷔했다.

그런데 NCT는 데뷔 때부터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몇 인조 그룹’이라고 정의하는 것부터 불가능했다. 데뷔 시점을 기준으로 공개된 멤버는 6명이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룹의 활동 지역과 콘셉트에 따라 새로 유닛그룹이 꾸려지고, 멤버가 자유롭게 나가고 들어오는 구조여서 멤버 인원은 고정되지 않았다. NCT의 콘셉트는 무한개방과 무한확장이었다. 따라서 멤버 수의 제한이 없고 새로운 멤버의 영입이 자유로웠다.

데뷔 당시 그룹 이름은 ‘NCT U(United)’였다. 팀명에서 알 수 있듯 곡의 콘셉트와 장르에 따라 멤버 구성이 자유롭게 바뀌었다. 2016년 7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을 지향해 서울의 경도에서 이름을 딴 NCT 127가 2번째 유닛으로 데뷔하고 다시 1개월 뒤 한국·중국·일본·태국·미국·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와 음악을 연결하는 청소년연합팀으로 구성된 NCT 드림(8월 데뷔)이 3번째 유닛으로 등장했다. 중화권을 기반으로 결성한 WayV(웨이브이)가 2019년 1월 데뷔하면서 4번째 유닛이 되었다. 이후 유닛마다 멤버에 늘어나 2023년 현재 멤버 수는 2023년 기준 23명으로 늘어났다.

앨범과 곡마다 자유로운 멤버 구성은 이수만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2005년 데뷔한 슈퍼주니어 역시 규현이 중간에 멤버로 투입되거나 중국 유닛 슈퍼주니어M을 론칭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NCT 드림 역시 멤버들이 성인이 되면 졸업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인기 멤버의 졸업으로 팀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결국 2020년 폐지했다. 이후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 지금은 ‘7명 드림’으로 고정되었다. NCT 드림과 NCT 127은 데뷔 6년만인 2022년 8월과 9월 국내 최대규모 공연장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입성했다. 음반도 많이 팔려 한국 음반 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와 달리 여전히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친숙한 메가 히트곡이 없기 때문이다.

nct 127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aespa) :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하이브리드’ 표방

이수만은 일찍이 메타버스를 엔터 산업에 접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품어 왔다. 결과물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하이브리드’를 표방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인으로 구성된 다국적 걸그룹 에스파다. ‘aespa(에스파)’는 ‘아바타 x 익스피리언스(Avatar x Experience)’를 표현한 ‘æ’와 양면이라는 뜻의 영dj 단어 ‘aspect’를 결합해 만든 이름이다. 에스파는 2020년 11월 17일 디지털 싱글 ‘블랙 맘바’로 데뷔했다. 보이그룹 NCT 데뷔 후 4년 만에 SM이 배출한 유일한 신인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그 무렵의 SM을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로 분석했다. 다행히 에스파의 ‘블랙 맘바’ 뮤직비디오는 사상 최단 1억뷰 신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95개국 음원 차트 진입, 미국 빌보드 글로벌 차트 K팝 아티스트 데뷔곡 최고 순위 등극, 중국 QQ뮤직 한국 차트 2020년 데뷔 걸그룹 최장 1위 기록 등도 세워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에스파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21년 5월 발표한 두 번째 디지털 싱글 타이틀 곡 ‘넥스트 라벨’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였다. 멜론 주간 차트(24Hits)에서 1위를 거머쥐고 27주간 10위 안에 들면서 K팝 걸그룹 역사상 최장기간 차트인 기록을 세웠다. 2022년 7월 발표한 두 번째 미니앨범 ‘걸스’는 역대 K팝 걸그룹 최다 음반 판매량(8월 기준 164만장) 신기록을 달성했다.

에스파 (출처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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