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은 오늘날의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남으로 칠레까지 아우르는 길고 큰 제국이었다. 신석기문명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로마에 비길만한 전국적 도로망에 뇌수술을 할 정도로 과학도 발달했다. 특히 석조건축은 쌓아올린 돌틈으로 면도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밀했고, 대형 지진도 이겨낼 만큼 견고했다. 다만 철기를 접하지 못했고 문자가 없어 기록된 역사가 없었다.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86명의 군사와 37마리의 말을 이끌고 이곳을 찾았을 때, 잉카제국은 비록 천연두로 많은 군사를 잃고 왕위 다툼으로 국력이 분열돼 있긴 했지만 그래도 8만 명의 군사를 보유한 제국이었다. 피사로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기독교 포교라는 사명을 받고 스페인을 떠났으나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곳에 풍부했던 금이었다. 1532년 11월 16일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아타우알파 왕에게 만남을 요청하자 왕은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피사로를 만나주었다. 한 신부가 왕에게 성경을 건네자 글을 알리 없는 왕은 성경을 바닥에 던졌고, 피사로는 계략에 따라 하나님을 모독했다며 왕을 결박했다. 수천 명의 군사도 스페인의 총을 당해내지 못해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잉카제국은 멸망했다.
왕은 자기를 풀어주면 자기가 감금되어 있는 방에 황금을 가득히 채워주겠다고 약속한 뒤 온 나라에 포고를 내려 금을 가져오도록 했다. 피사로는 왕의 몸값을 받고나서도 1533년 8월 29일 왕을 처형하고 11월에는 수도인 쿠스코를 점령해 잉카제국을 무너뜨렸다. 화형에 처해지면 영혼까지 멸망한다고 믿고 있는 왕의 청원으로 왕은 교수형으로 죽는 대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