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 청나라 말기의 절대권력자 서태후 사망

중국 청나라 말기 절대권력을 행사한 ‘서태후’는 이름이 아니다. 1861년 함풍제가 병사하고 후궁에서 태후에 오른 서태후가 서쪽에, 정실이 동쪽에 기거해 편의상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17세에 궁녀로 입궁한 그녀가 귀인과 빈을 거쳐 태후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황제 생전에 총애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함풍제의 뒤를 이을 유일한 아들이 그의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감한 결단력에 간교한 계책까지 갖춘 야심가였고 남성을 능가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5세의 어린 아들이 ‘동치제’로 즉위하면서 그녀의 47년 절대권력도 함께 시작됐다. 정실 동태후가 있었지만 그녀는 성격이 온순해 서태후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동치제가 생모인 자신보다 양모인 동태후를 더 따르자 그녀는 아들을 미워했고 아들은 결국 나이 스물을 못넘기고 1874년에 죽었다. 그녀는 4세 밖에 안된 여동생의 아들을 ‘광서제’로 내세워 수렴청정을 이어갔다. 1881년 동태후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자 모든 권력은 사실상 그녀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사치에 빠진 그녀는 쌀 5000㎏에 상당하는 비용을 하루 식사비로 썼으며 옷만 해도 3000상자가 넘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옷을 갈아 입었다. 1898년 청년이 된 광서제가 개혁주의자들의 무술변법에 힘을 실어주며 개혁을 추진하려 했을 때는 위협을 느껴 수구파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변법을 103일만에 진압하고 광서제를 무력화했다. 결국 광서제는 10년 간 유폐된 채 지내다가 1908년 죽음을 맞았다. 광서제 사망 다음날인 11월 15일 서태후는 이제 2세밖에 안된 광서제 동생의 아들 푸이를 선통제로 세우고는 자신도 같은날 73세로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권력을 움켜쥐려했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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