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군, 미군과의 과달카날 해전에서 태평양전쟁 개전 이래 첫 대패

태평양전쟁 개전 초부터 1942년 여름까지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태평양의 섬들을 잠식해 들어갔다. 파푸아뉴기니 동쪽에 위치한 솔로몬 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인 과달카날섬 역시 거의 무혈입성이었다. 1942년 8월 7일, 미군이 함대를 동원해 섬에 상륙하려하자 일본군은 미군 함대에 야습을 감행, 치명적인 타격을 주긴 했으나 결국에는 7000명이나 되는 미 해병대의 상륙을 막지 못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후 섬을 둘러싼 수차례의 육·해전 끝에 제공권과 제해권이 미군에 넘어가는 바람에 섬에 잔류하고 있던 일본군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전세가 역전돼 이번에는 일본군이 증원부대를 보내려고 계속해서 상륙작전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물량 공세로 저지당했다. 11월 12일, 섬을 탈환하기 위한 일본군의 총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미군은 ‘과달카날 해전’이라 부르고, 일본은 제3차 ‘솔로몬 해전’이라 불렀던 대규모 전투였다.

3일간의 전투로 미군도 큰 피해를 입었으나 수송선에 타고 있던 일본군 증원부대 역시 최악의 살육전에 그대로 노출됐다. 수송선 7척이 과달콰날 활주로에서 출격한 미군 폭격기 편대에 의해 격침됐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3척이 병력을 육지로 상륙시켰으나 이들 역시 미군의 총구에 여지없이 쓰러졌다. 이제 섬에 남아있는 일본군은 고립무원 상태였다. 최고 3만6000명에 달했던 병력 가운데 2만4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들 가운데 반수 이상은 아사자였다. 1만2000명은 이듬해 2월에 겨우 철수에 성공, 목숨은 부지했지만 일본으로서는 태평양전쟁 개전 이래 최초의 대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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