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
1992년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
1991년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
1990년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
1989년
7·7 선언은 ‘북방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이른바 ‘북방외교’는 2차대전 후 시작된 냉전기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수교할 수 없었던 소련과 중국 그리고 동구권과의 국교 수립을 […]
1988년
16년 만에 집단적 보이콧 없이 세계가 하나 된 올림픽 1981년 9월 30일 오후 3시 40분, 독일 라인강변의 작은 휴양도시 바덴바덴에 설치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장에 팽팽한 […]
1987년
☞ 대한민국 헌법 제정(1948년)이 궁금하면 클릭!! 민의 충실히 반영하고 민주 절차 밟았다는 점에서 의미 인정받아 야당인 신민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워 돌풍을 […]
1986년
↑ 1986년 당시 신문 기사 제목들 ‘단군 이래 최대 호황’ 소리 들어 1985년 9월 G5(선진 5개국)가 합의한 이른바 ‘플라자 합의’의 당초 목적은 급증하는 […]
1985년
제1차 적십자회담이 시작된 후 13년 만에 이뤄진 첫 남북 고향 방문단 성사 1985년 9월 21일 오전 10시 20분, 부모와 자식, 형제와 오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
1984년
세계는 그때까지 어떤 예술가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예술의 경지에 경탄 ’20세기의 르네상스 예술가’, ‘뉴미디어의 오디세이’ 등으로 불리는 백남준(1932~2006)에게 예술은 남과 달라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는 […]
1983년
반도체 시장 진출은 이병철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건희의 첫 작품 1974년 1월에 설립된 한․미합작의 ‘한국반도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외국업체로부터 하청을 […]
1982년
‘잃어버린 4시간’ 숙명으로 알고 살아 1981년 말까지 매일밤 자정만 되면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전국에서 동시에 울렸다. 그러면 거리는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
1981년
등을 대고 눕지 않는다는 ‘장좌불와’ 정진 8년 동안 계속해 1980년의 ‘10․27 법난’은 한국 현대 불교계의 최대 치욕이었다. 불교계가 위기 국면을 타개할 인물로 주목한 것은 […]
1980년
언론사 대표들이 따라간 곳은 보안사령부 지하실 무대 뒤의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언론 장악 시나리오를 가동한 것은 1980년 초였다. 먼저 언론에 대한 회유와 […]
1979년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
1978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
1977년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
1976년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
1975년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
1974년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
1972년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