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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여기저기] 북한산성 14성문(혹은 16성문) 15㎞ 종주… 산행 내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대자연의 연속이지요

↑ 원효봉 아래 너른 암반에서 올려다본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왼쪽부터)의 웅장한 모습. 희용이 “원효봉은 북한산의 테라스”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by 김지지

 

2013년 9월 13일, 희용의 리드로 대학 친구 4명이서 북한산성 14성문을 종주했다. 원효봉 능선으로 올라가 대남문 지나 의상봉 능선 아래 국녕사로 내려왔다. 초행인데다 늦여름 더위에 지쳐 산행이 끝났을 땐 사방이 깜깜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중성문과 중성시구문을 다녀오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12성문이다. 희용이 9년 만에 또 다시 종주를 제안한다. 이번에는 14성문에 2개 수문터란다. 그리하여 대학친구 봉우 영수 정형 태성 희용 다섯이서 종주에 나서니 2022년 5월 5일이다.

북한산성 승군의 총대장을 지낸 성능대사가 1745년 간행한 ‘북한지(北漢誌)’에 수록된 북한산성 지도

 

■북한산성과 14성문(혹은 16성문)

북한산성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산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른 뒤 한양 도성의 외곽을 지키기 위해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쌓았다. 길이는 11.6㎞이고 넓이는 5.3㎢다. 여의도 면적이 2.9㎢이니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산성 공사는 1711년 4월 시작해 6개월만에 끝났다. 산성에는 성 안팎으로 드나드는 성문(城門)이 14개 있다. 대남문·대성문·대동문·대서문·중성문·북문 등 대문이 6개이고 눈에 띄지 않게 출입하는 암문이 8개다. 암문(暗門)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나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한 문이다. 8개 암문에는 시체를 내가는 문이란 뜻의 시구문(屍口門) 2개도 포함된다.

북한산성 14성문 종주는 이 대문과 암문을 지나는 산행이다. 여기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수문(水門)이 2개 더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수문터(水門地) 일부만 남아있다. 북한산성 성문 개수를 두고 14성문, 16성문 하는 것은 2개의 수문 때문이다. 14성문 중 12개는 북한산의 능선과 봉우리를 따라 원형으로 이어지지만 중성문과 중성시구문은 북한산성 한 가운데에 있다. 이 때문에 산성 종주를 할 때는 12성문과 별개로 중성문과 중성시구문은 따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북한산 8개 암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보국문 청수동암문 용암문 백운동암문 중성시구문 원효시구문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의상봉능선으로 올라가 대남문~대성문을 거쳐 원효봉능선으로 하산하는 것을 기준하면 14성문은 아래 순서로 이어진다. ①대서문 → ②가사당암문 → ③부왕동암문 → ④청수동암문 → ⑤대남문 → ⑥대성문 → ⑦보국문 → ⑧대동문 → ⑨용암문 → ⑩백운봉암문(위문) → ⑪북문 → ⑫서암문(시구문)이다. 여기에 산성 가운데에 위치한 ⑬중성문과 ⑭중성시구문이 추가된다. 2개 수문터는 북한산성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성계곡(북한천)에 있다. 하나는 산성계곡(북한천) 아래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중성문 옆 계곡에 있어 찾기 쉬우므로 이 글에서는 첫 번째 수문터 찾아가는 방법만 안내한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평지길을 몇분 정도 걸어가면 왼쪽에 ‘산성계곡(북한천) 무장애탐방로’ 안내 표시가 보인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오른쪽에 장애물이 없다는 뜻의 무장애(無障礙) 탐방로가 계곡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무장애 탐방로 흙길을 따라 몇 분 정도 걸어가면 데크길로 이어지고 수백미터를 진행하면 오래전 소실된 수문터가 나온다. 오른쪽 데크 옆 성벽은 최근 복원한 것이고, 계곡 건너에는 세월의 더깨가 묻어있는 원래 석성이 산 위로 뻗어있다.

산성계곡 무장애 탐방로 입구
왼쪽은 수문과 연결된 계곡 건너 산성이고 오른쪽은 수문이 있었던 산성계곡이다.

■15㎞ 종주

 

▲종주 순서

북한산성 종주는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한다. 이후 북한산 능선을 올라타 성벽을 따라 원형으로 돌아본 뒤 원점회귀한다. 종주 거리는 실제 성곽 길이보다 3~4㎞ 더 긴 15~16㎞다. 시작 코스는 북쪽 원효봉(510m)을 지나는 원효능선과 남쪽 의상봉(501m)을 지나는 의상능선이다. 우리는 의상능선으로 올라가 원효능선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우리 코스를 중심으로 종주를 안내한다. 혹자는 의상능선이 북한산 최상급 난이도여서 원효능선으로 올라갈 것을 추천하지만 원효봉과 백운대 아래 백운봉암문(위문) 오름길도 만만치 않는 급경사여서 어느곳이 더 수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중성문과 중성문 옆 시구문·수문터 그리고 산성계곡(북한천) 하류의 수문터 등 모두 네 곳을 먼저 둘러보고 나서 나머지 12성문을 돌아볼 것인지 아니면 12성문을 먼저 둘러볼 것인지를 출발에 앞서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대서문을 지나 중성문과 중성문 옆 시구문·수문터 등 네 곳을 먼저 살펴보고 다시 내려와 의상능선의 가사당암문으로 올라갔다. 이후 산성을 한 바퀴 돌아 11성문을 모두 돌아본 뒤 내려와 마지막으로 산성계곡(북한천) 하류의 수문터를 살펴보니 16성문이다. 산성계곡(북한천) 하류 수문터를 맨 나중으로 미룬 것은 북한산성의 얼굴 격인 대서문을 먼저 지나는 것이 종주 기분학상 깔끔하기 때문이다.

첫 관문인 대서문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대서문~중성문(시구문·수문터)~국녕사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①대서문까지는 평지길로 15분 정도 거리다. 대서문은 북한산성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실질적으로는 산성의 주출입구 역할을 한다. 아치형의 홍예문이 유려하고 시원스럽다. 대서문에서 다시 15분 정도 지나면 오른쪽 의상능선으로 올라가는 법용사(들머리에서 1.9㎞ 거리)가 보인다. 우리는 나중에 이곳을 지나 의상능선을 탈 것이기 때문에 일단 ②중성문을 향해 계속 올라간다. 10분 정도 오르니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중성(重城) 성문이다.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다음 해에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는데 산성 북서쪽이 평지라 적의 공격에 취약하다며 다른 성을 더 쌓아 방비하라는 내용의 중성 축성을 지시했다. 이에따라 1714년 북한산성의 내성으로 축조한 것이 중성이고 중성문이다. 중성문 옆 암반과 계곡에는 ③시구문과 ④수문도 만들었다. 폭 2.1m 높이 1.8m 규모의 시구문은 지금도 그대로 있지만 수문은 축성 당시의 흔적만 일부 남아있을 뿐 모두 소실되었다. 계곡 건너에 수문과 연결된 산성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데 1745년(영조21)에 편찬한 북한지(北漢誌)에는 수문 모습이 보이지 않아 3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소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중성문 다음 성문은 의상능선을 올라타야 만나는 ⑤가사당암문이다. 우리는 10분 전 지나왔던 법용사까지 다시 내려가 국녕사를 거쳐 의상능선으로 올라탔다. 북한산 초입의 북한산초등학교까지 한참을 내려가 의상능선을 탈 수도 있지만 경사가 가팔라 가사당암문으로 바로 올라가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의상능선 허리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지만 의상능선 주능선보다 상대적으로 길이 편하고 안전하게 국녕사를 거쳐 가사당암문까지 이동할 수 있다. 법용사는 길가에서는 여염집 같아 보이지만 뒤로 조금만 들어가면 어엿한 사찰 분위기가 난다.

법용사에서 15분 정도(0.6㎞) 올라간, 산 중턱에 있는 국녕사는 나름 역사가 있는 사찰이다. 국녕사는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창건된 승영사찰의 하나로 초기엔 규모가 제법 컸다. 승영사찰이란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 군사 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해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 역할을 겸한 사찰을 말한다. 국녕사는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가 근래 새로 조성했다. 국녕사로 다가가니 동양 최대 크기의 거대 청동 좌불이 시선을 압도한다. 2000년 24m 높이로 만든 국녕대불인데 황금색을 입혀 꽤나 화려하다. 산행은 불상 앞 오른쪽 옆길로 이어진다.

가사당암문 지나 산성길. 뒤는 용출봉이다.

 

▲가사당암문~(용출봉~용혈봉~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나한봉)~청수동암문~대남문

국녕사를 지나 급경사길을 15분 정도 오르니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고갯마루에 가사당암문이 우리를 맞는다. 의상봉능선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암문이다. 이렇게 암문은 산성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한다. 우리는 용출봉 방향으로 진행했지만 이왕에 여기까지 왔다면 진행 방향 뒤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의상봉을 올라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의상봉은 초입의 북한산초등학교를 들머리로 삼을 경우 가파른 길을 40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있다. 정상은 꽤 넓다.

우리가 진행하는 가사당암문 남쪽으로 굽이굽이 능선길인 의상봉 능선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동쪽으로는 북한산성 주능선과, 우뚝 솟아있는 염초봉(662m), 백운대(836m), 만경대(799m), 노적봉(718m)이 시야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마치 솥뚜껑을 엎어 놓은 듯한 거대 암반의 원효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녕사도 내려다 보인다.

가사당암문부터 대남문까지 2.7㎞ 산성길에는 2개의 암문(⑥부왕동암문과 ⑦청수동암문)이 있고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등 500m급 봉우리들이 천혜의 방어막 역할을 함으로써 산성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 오르내리막 산길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용출봉에서 의상봉과 원효봉을 바라보는데 9년 전 북한산성을 처음 종주할 때 희용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두 봉우리 중 해발고도가 높은 봉우리를 원효봉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원효가 법력이 더 높고 역사적 위상도 빼어났기 때문”이라고. 용혈봉은 2007년 7월 낙뢰사고로 등산객 4명이 죽고 4명이 다친 곳이다. 우리는 지형이 험하고 봉우리 위세가 날카로운 일부 봉우리 정상은 패스하고 우회길을 선택했다. 산행 후 생각해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산성길에는 성랑지가 많다. 성랑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가 있었던 곳으로 병사들의 숙소 역할도 했다. 북한산성에는 총 143개의 성랑이 있다. 가끔은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을 뜻하는 여장(女墻)도 눈에 띈다.

가사당암문에서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을 지나 부왕동암문까지 1시간 걸린다. 이후에도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나월봉(635m)과 나한봉(665m)을 순서대로 타고 넘으면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청수동암문을 만난다. 청수동암문 도착 2~3분 전 남장대지와 행궁지 안내표시가 보인다. 진행 방향이 아닌 샛길에 있지만 남장대지의 조망이 뛰어나 잠시 다녀올 만 하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왼쪽 아랫길로 빠지면 곧 남장대지다.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한데다, 북한산의 비경인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장소다.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면 대남문, 대성문, 동장대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북으로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가 위풍당당한 위무를 뽐내고 서있다.

용출봉(왼쪽)과 의상봉

 

남장대는 남쪽의 장대란 뜻이다. 장대는 군사 지휘가 용이한 높은 곳에 돌로 쌓은 장군의 지휘소다. 북한산에는 남장대 말고도 동장대와 북장대가 있다. 하늘에서 북한산성을 내려다보면 산성 높은 곳에 남장대, 북장대, 동장대가 삼각형의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고 있다. 이중 남장대와 북장대는 소실된 채 터만 남아있고 1~2시간 후면 산성길에서 만나게 될 동장대는 복원되어 있다. 북장대지는 중성문 아래 법용사와 노적봉 사이에 있으나 법용사 부근 산행로에 안내만 있을 뿐 길 표시가 없고 올라갔다는 지인도 없어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한번쯤 올라가 천하를 호령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활짝 열고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싶다.

의상봉 능선 산성길

 

▲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백운봉암문(위문)

청수동암문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동쪽으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⑧대남문이 나온다. 대남문에서 0.3㎞ 거리의 ⑨대성문을 지나면 성곽 옆 돌계단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는다. 15분 뒤 나오는 전망터부터는 최근 복원해 반듯하게 생긴 성곽이 길게 이어진다. 전망터에서 염초봉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문과 도봉산 능선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대남문

 

뒤이어 ⑩보국문을 지나면 칼바위능선 입구다. 보국문에서 15분 거리의 ⑪대동문은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생김새는 대남문, 대성문과 같은데 홍예문은 대동문이 가장 크다. 대동문을 지나면 동장대가 고개 위에 우뚝 서 있다. 장군 지휘소 답게 대성문 보현봉 대남문 문수봉 청수동암문 나한봉 나월봉 남장대지 의상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장대는 원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이 남아있는데도 다르게 복원해 아쉬움이 크다.

현재 동장대 모습(왼쪽)과 일제강점기 때 외국인이 찍은 동장대 모습. 완전히 다른 모습이고 산은 민둥산이다.

 

동장대에서 ⑫용암문까지는 20~30분 거리다. 보국문~동장대~대동문~용암문 구간은 성벽 살짝 아래에 조성된 흙길에 숲길이어서 걷는 맛이 있다. 용암문은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 용암봉암문으로도 불린다. 용암문에서 ⑬백운봉암문(위문)까지는 비좁은 바윗길에 가파른 오름길이다. 살짝 힘들지만 후반에는 멋진 경치가 기다리고 있어 힘듦을 보상받는다. 가까이는 속알머리가 없는 노적봉 정상과 뒤태를, 멀리는 의상봉능선과 원효봉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북한산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조망 구간이다.

백운봉암문으로 가다가 내려다본 의상봉(왼쪽)과 원효봉

 

▲백운봉암문(위문)~약수암~북문~(원효봉)~서암문~원점회귀

용암문에서 30~40분 거리의 백운봉암문(위문)은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이다.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백운대 정상을 앞두고 등산객들이 항상 쉬어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암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언제나 시원하다. 백운봉암문 양 옆으로 화강암의 암벽을 그대로 노출한 백운대(836m)와 만경대(799m)가 우뚝 서 있다. 백운대 아래에는 염초봉(662m)이, 만경대 아래에는 노적봉(718m)이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해 만경대이고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모습과 같다고 해 노적봉이다. 염초봉은 본래 이름이 영취봉이어서 영취봉으로 표기하는 글도 많다.

북한산성은 백운봉암문(위문)에서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 염초봉과 원효봉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일반 등산객이 그 길을 따라 갈 수는 없다. 백운대 정상~염초봉 구간이 수직벽도 있는 암장(巖嶂)이어서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등산객은 백운봉암문에서 대서문 방면으로 1㎞의 급경사의 돌계단 내리막을 하염없이 내려가다 약수암 삼거리(혹은 상운사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⑭북문으로 이동한다. 약수암 삼거리에서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기둥 부위만 초연히 남아있는 북문(430m)을 만난다. 북문은 원효봉와 염초봉 사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형태를 보이는 안부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북문에서 원효봉(505m)은 0.2㎞ 거리다. 원효봉으로 오르다 보면 정상 아래에 100여 명은 족히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암반이 나온다.

그 곳에 서면 저 멀리 백운대와 염초봉, 만경대와 노적봉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우뚝하다. 계곡 건너에는 우리가 지나온 의상봉능선과 산성주능선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길게 이어져 있다. 사이사이 문수봉, 나한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이 보인다. 정면으로는 북장대지가 노적봉 아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 멋진 광경에 희용이 “원효봉은 북한산의 테라스”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내 눈엔 대형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파노라마 전경이다.

북한산 북한산성 14성문
원효봉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오른쪽부터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한봉

 

원효봉 이름은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간 곳의 원효암에서 유래하는데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단다. 믿거나말거나인데 사실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에 원효의 이름이 어른거린다. 원효봉에서 30분을 걸어내려가면 마침내 ⑮서암문(西暗門)이다. 시신을 성밖으로 내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린다. 서암문에서 다시 10여분을 내려가면 북한길 둘레길이고 그곳에서 20분 정도를 걸어가면 ‘산성계곡 무장애탐방로’가 위치한 계곡과 다시 만난다. 마지막으로 만날 성문은 이 글 위에서 소개한 북한천 하류의 ⑯수문터다.

산행 후 봉우가 자신은 ‘무등(武登) 스타일’이고, 희용은 ‘문등(文登) 스타일’이라며 둘의 산행 스타일을 비교한다. 봉우 자신은 오로지 산을 오르는 데만 집중하고 희용은 인문학적 배경을 갖고 산에 오른다는 뜻의 조어(造語)인데 그럴싸하다. 북한산 종주는 꼴찌로 올라간 나를 기준하니 10시간 걸렸다. 하지만 ‘문등 스타일’의 희용을 기준하면 9시간 정도 걸렸을 것 같고 ‘무등 스타일’의 봉우에게는 6~7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영수는 지치지 않고 한발한발 올라가는 스타일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평소 산행이라면 자신없어 하는 태성이 씩씩하게 내 앞을 치고 올라가니 태성의 새로운 발견이다.

용암문 가다가 쉬고 있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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