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기타고 세계로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묵어야할 호텔에 연락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호텔에 짐을 푼 후 어머니께 무사 도착 전화를 드리고 딸에게 빌려온 넷북을 꺼내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연결이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화면 하나 넘어가는데 몇 분은 걸리는 것 같다.

큰일이다. 넷북에 의지해서 남은 일정 호텔 예약을 비롯 구글 지도를 통해 촌구석을 구석구석 뒤지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냐? 한숨을 쉬며 넷북을 집어던지고 샤워부터하고 나와 넷북을 가방에 넣으려고 또닥또닥 눌러보니 인터넷이 정상적으로 잘 연결된다. 아하! 한국 기계는 집어던지면 잘 작동하기 시작하는구나!

다음날 아침 일어나 먼저 뉴욕의 심장이자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맨해튼으로 들어갔다. 뉴잉글랜드 여행이라더니 왜 뉴욕이냐고? 뉴욕은 사실상 미국의 포털 사이트여서 이곳을 거쳐 찾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왕 뉴욕을 둘러볼 요량이라면 뉴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뉴욕의 탄생
영국의 찰스2세가 동생 요크(York)공에게 하사 후 뉴욕(New York)으로 이름 바꿔

영국의 찰스2세는 크롬웰에게서 정권을 탈환한 후 왕정복고에 성공하자 신대륙에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탐욕을 부렸다. 당시 신대륙은 대서양 연안을 따라서 북쪽(현재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역)은 프랑스가 활발하게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남쪽 즉 현재의 뉴욕 지역의 맨해튼과 허드슨 강 유역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1609년 이곳에 도착한 헨리 허드슨(1565~1611)이 강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서 따 ‘허드슨 강’이라고 칭하고 소유권이 네덜란드에 있음을 선언했다. 맨해튼은 원주민들의 말로 ‘언덕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뜻이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이 지역을 ‘뉴네덜란드’라고 했다.

헨리 허드슨

 

1626년 맨해튼을 두고 원주민들과 흥정을 벌여 거래가 성사되었다. 맨해튼의 가격은 60길더(네덜란드 화폐 단위)였다. 당시 네덜란드의 시내 도로를 포장하기 위해 쓰던 돌맹이 하나 값이 1길더였으니, 맨해튼의 가격은 돌맹이 60개의 값이었다. 네덜란드의 서인도 회사는 원주민들과 모피 무역을 하기 위해서 이 지역에 교역 기지를 세우고, 맨해튼 일대를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다. 회사는 원주민에게서 산 토지를 이주민들에게 분배했다.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네덜란드풍의 튼튼하고 멋진 건물이 들어찬 도시가 세워졌다. 이후 북쪽의 하트퍼드(현재 코네티컷주의 주도) 등에도 교역 거점을 건설하면서 식민지를 확대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식민지 사이에 매사추세츠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의 퓨리턴 식민지가 건설되고, 퓨리턴 식민지 외에도 메인주 지역과 뉴햄프셔주 지역에 영국 정부의 식민지 개설 노력이 진행되었다.

뉴잉글랜드의 인구가 늘어나자 새로운 토지를 찾아 내려온 영국인들이 풍요로운 도시 뉴욕에 눈길을 돌렸다. 1664년 봄, 찰스2세는 프리깃함 4척과 400명의 병력을 파견, 뉴암스테르담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국왕은 이때 점령한 뉴암스테르담을 동생인 요크(York)공 제임스에게 하사하면서 뉴욕(New York)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후 롱아일랜드(Long Island), 스태튼아일랜드(Staten Island), 웨스트체스터(Westchest) 등 세 지역을 묶어 요크주(Yorkshire)로 명명하면서 본격적인 식민 활동을 시작했다.

 

▲뉴욕 시티

맨해튼은 뉴욕의 심장이자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이곳에는 바둑판처럼 뻗은 도로 사이에 가지각색의 건물이 빼곡하다. 그 사잇길을 무질서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질서있게 사람들이 무리지어 잘도 다닌다. 통일된 형상과 컬러도 없는 다양한 인종들이 별의별 제스쳐를 하며 움직인다. 나는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이니까 무작정 상경식으로 다니기로 했다. 먼저 거쳐야 할 동선의 시작은 지하철이다. 지하철역이 서울과는 달리 허술한 소형 구축물 형태라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허드슨강 (출처 위키피디아)

 

맨해튼의 최남단인 로우어 맨해튼 끝자락 역으로 향했다. 맨해튼의 동쪽을 감싸고 흐르는 이스트강과 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허드슨강이 대서양과 마주 만나는 삼각주 끝단에 조성해 놓은 배터리 파크를 찾았다. 때마침 부슬부슬 내렸다. 비를 맞으며 날궂이 하듯이 거닐며 스테튼 아일랜드로 건너가는 대형 무료 여객선인 사우스 페리를 탔다. 건너편 ‘자유의 여신상’을 사진에 담느라 부산을 떠는 사이 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선하자마자 다시 승선하는 곳으로 가서 도로 그 배를 탔다. 자고로 관광이라면 건너가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오가며 두루 둘러보는 것이다. 바다에서 보이는 맨해튼의 마천루를 사진에 담느라 또 수선을 떨다보니 배는 어느덧 맨해튼에 도착했다.

배터리 파크 (출처 위키피디아)

 

관광은 자고로 편도가 아니라 왕복

배터리 파크에서 다시 빌딩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월가가 나온다. 세계의 돈이 집중된 곳이다. 월가의 상징 황소상 앞은 비가 오는데도 기념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그동안 완전 개방돼 있던 황소상을 사방에서 철조망으로 차단하고 머리 쪽에서만 사진 촬영을 하게 했다.

차단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각시가 황소의 우람한 거시기를 붙잡고 사진촬영을 하는 여자들이 많아 남세스러워서 차단했을 거라고 아줌마 개그를 한다. 황소의 역동적인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고 어디 하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곳이 없는 명작이다. 균형 잡힌 이목구비와 뿔,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등줄기와 앞다리의 근육과 골격, 결코 물러서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만큼 튼실하고 우람한 뒷다리 허벅지, 그리고 절묘한 곡선과 꺾임으로 들어 올린 꼬리의 자태가 황홀하다.

황소상 앞뒤 모습

 

볼 것 없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도 관광객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니 신성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곳은 두 개의 파워 즉 돈과 무기로 세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한 축이다. 그것을 과시하듯 성조기가 회색 건물 열주 사이에 선명하게 나부끼고 있다.

 

증권시장은 환상을 사고 파는 곳

나는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증권시장을 볼 때 마다 가장 불합리한 거래를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대가며 환상을 사고 파고 곳이라 생각한다.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대형 도박장을 차려 놓은 곳이 카지노와 증권시장이다. 노력과 관계없이 일확천금을 쥐기도 하고 때로는 패가망신하는 곳이다. 그런데 카지노 출입자는 별 볼 일 없는 갑남을녀라고 하고, 증권시장 출입자는 최고의 지식을 가진 지성인 투자자라고 구분한다. 증권시장은 노력 없이 돈을 따는 게 아니라 엄청난 두뇌작업을 통한 노력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래가치라는 환상으로 포장한 주식을 배팅하라고 한다. 과연 기업의 미래가치가 현재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인가? 현재부터 언제일지도 모르는 미래까지 사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미래가치를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경영학, 경제학, 금융학이다. 이 불합리한 도박판을 합리적으포 포장해 설명하는 자들이 경영학박사, 경제학박사들이다.

뉴욕 증권거래소

 

미래가치란 분명히 만들어진 환상이다. 이 환상 위에 기초하여 번영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다.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성서에서 가르치고 있다. 청교도들이 순수한 신앙을 찾아 이주해온 신대륙에서 이 미련한 자들이 정교한 도박장을 차려 놓고 돈벼락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좌표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

월가를 보고 브로드웨이를 따라 맨해튼의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다리가 아파서 걷기 힘들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맨해튼의 주소는 단순하고 수학적이다. 아래 위로 길쭉하게 생긴 맨해튼에 가로, 세로로 반듯한 금을 그었다. 긴 세로축에 가로선을 나란히 긋고 남단부터 번호를 매겨 1번부터 263번까지 가로선으로 구획했다. 228번까지가 맨해튼에 속하고 그 위로는 브롱스에 속한다. 비교적 짧은 가로축은 고유명사를 붙여 ‘OO애비뉴’라고 부르는 세로선으로 구획했다. 주소는 가로 세로선의 교차점을 찍어서 예를 들면 ‘OO번가 OO애비뉴’라고 부른다. 주소가 좌표인 것이다.

좌표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다. 좌표가 있어서 공간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게 가능해지고 모든 사람이 그 위치를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을 비롯해서 모든 공간표시 작업은 당연히 좌표의 덕분이고, 수치의 시각화로 경제학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다만 구도심 지역인 로우어 맨해튼은 좌표를 구획하기 전에 형성된 길이어서 구불구불 복잡한 곡선형 가로다. 로우어 맨해튼 북동쪽에는 이스트강을 가로지르는 브루클린 다리가 있어 차량과 사람들을 분주하게 브루클린섬으로 이어준다. 1883년 개통된 브루클린 다리가 명물인 것은, 낡았지만 현수교의 긴 버팀줄의 선들이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라 다리 가운데에 사람들이 도보와 자전거로 건너다닐 수 있는 목교가 있어서 수목이 울창한 섬들과 마천루를 보며 산책하고 사진찍고 운동할 수도 있다. 자동차의 천국이지만 인간의 행보를 차단하지 않는 행정이 뉴욕을 명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수많은 대교들에서 사람들이 자동차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편안하게 건널 수만 있다면 이 대교들도 서울의 명품이 될 것이다.

브루클린 다리

 

▲빈티지 생태도시
낡은 것 뜯어내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 뉴요커들의 상상력 돋보여

서울에 고가공원 ‘서울로7017’이 있다면 맨해튼에는 ‘하이라인 철도공원’이 있다. 물론 서울 고가공원은 맨해튼의 하이라인 철도공원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맨해튼을 세로로 가르며 달리던 고가철도가 1980년 운행이 중단되어 도심의 흉물이 되자 철로길을 그대로 살려둔 채 그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꽃과 잔디, 나무를 심어 독특한 도심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기획에 10년, 공사에 3년 이상 걸렸다. 낡은 철도를 뜯어내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 결과 첼시 지역 14번가부터 30번가까지 1.6㎞의 아름다운 철길 정원이 지상 9m 높이에 조성되었다. 하이라인 공원에 올라서면 정원 아래로 도심의 분주한 일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또한 빌딩 사이사이로 보이는 허드슨강과 부두창고, 그리고 늘씬한 고층빌딩과 낡고 어두운 옛 건물들이 어울려 신선한 빈티지의 미도 만날 수 있다.

하이라인 철도공원

 

빈티지의 미학은 첼시 마켓에서도 만날 수 있다. 1900년 경에 세워진 공장이 이전하고 대형 건물만 볼품없게 남게 되자 기존의 벽돌벽에 현대적 인테리어를 가미해 건물 내부 공간에 색다른 미적 공간을 조성했다. 그곳에 빵집과 수산식품점 등 다양한 업소를 입점시켜 이색적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시장 건물 바닥은 120년의 역사가 묻어나 반질반질 윤이 난다. 기존 공장에 남아있던 투박한 돌들을 활용해서 만든 반들반들 두꺼운 돌의자, 돌벤치, 돌장식 등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주민과 관광객에게 선물한다.

낡은 것을 뜯어내고 삐까뻔쩍하게 새 것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과 달리 하찮은 공장건물마저 역사가 묻어나는 문화상업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뉴요커들의 상상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600년 고도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궁궐 말고는 역사유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 200년 역사의 미국에 역사유적이 즐비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니라 역사의식의 부재에 기인한다.

 

어린 시절 102층 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먼나라 얘기

뉴욕의 대표 아이콘은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 할 수 있다. 3층집만 보아도 높이 우러러보던 내 어린 시절에 102층짜리 빌딩이 미국 뉴욕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 먼나라 얘기였다. 그 정도 높이면 맨해튼 어디서도 우뚝 솟은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었으나 건물이 있다는 5애비뉴 34번가를 찾아가도 보이지 않는다. 건물 보수용 가설재 판자 지붕 터널을 지나서 코너를 도니 울각시가 건물을 가리키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란다. 실망스럽다. 뉴욕 최고의 빌딩이 머리를 빼꼼이 들어 올려 확인해야 겨우 보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One of the tallest buildings’이다. 지붕까지 331m, 안테나 첨두까지 443m다.

1931년 완공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명성을 날리다가 1972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그 명성을 양보했으나 2001년 9·11사태로 다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지위를 되찾는 행운(?)을 얻었다. 20세기 말에 세계 최고 빌딩 짓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높이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맨해튼 단상
구경하러 갔다가 구경거리 되는 곳

맨해튼은 인간이 습득한 모든 이론과 기술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현대판 바벨탑이다. 인간이 피조물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자임을 선포하고 과시하는 도시다. 이 도시는 신이 만든 자연은 없고 인공물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인공물이 아름답고 선하고 옳은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맨해튼의 빌딩은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신선하다. 독창적 아이디어와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걸작의 집합체다. 이 걸작들이 도시 전체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걸작은 보는 이의 시야에 들어올 때 진가를 발휘한다. 문제는 사람들의 시야가 눈앞 거대빌딩의 벽에 막혀 걸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딩의 주소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찌르고 있는 빌딩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빌딩 사이사이의 틈을 비집어 겨우 빌딩의 실체를 파악한다. 가장 아름다운 빌딩을 지어놓고 정작 빌딩의 밀림 속에서 빌딩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불합리가 맨해튼의 건축물이 가진 비극이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타임스퀘어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온다. 대낮같이 환히 비추는 네온사인 불빛 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 이 많은 인파가 왜 매일 이곳으로 몰려드는 걸일까?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 모두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외로운 섬들이다. 아는 사람은 없고 단지 동행자들끼리 사진을 찍고 얘기하다가 돌아간다. 엄청난 인파는 결국 ‘우리’가 아니고, 각각 익명의 ‘그들’이다. 이들은 각각 서로를 구경하다가 돌아간다. 구경하러 왔다가 구경거리가 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온갖 정성을 들여 스스로 구경거리나 설치미술의 소재가 되기를 자원한 사람들이다.

 

인간의 눈에는 천국이고, 귀에는 지옥인 곳

맨해튼은 인간의 눈에는 천국이고, 인간의 귀에는 지옥이다. 하루 종일 사이렌 소리가 쉼없이 귀청을 때려댄다. 청소차량을 비롯 거대한 트럭들이 두툼한 배기가스관을 차량의 어깨에 굴뚝마냥 높이 매달고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엄청난 소음을 쏟아낸다. 마치 우리 귀가 얼마나 소음을 참낼 수 있는지 한계를 테스트하는 듯하다. 운행차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란 택시들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울려대는 경적소리도 소음이 잠시라도 멈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열차의 쇠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거대 철공소 작업장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

승객들이 반칙을 할 때 마다 지하철 출입문이 빽빽 울어대는 신경질적 고음에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고 일상이 돌아간다. 퀸즈의 전철이 지나갈 때 마다 흔들리는 고가철교가 곧 무너져내려 금방이라도 내 차를 덮칠 것 같은 착각 속으로 나를 빠뜨려 철마의 거친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는 차라리 공포스럽다. 그 속에서도 거리나 지하철역 등 곳곳에서 화음을 넣어 부르는 흑인들의 노래소리는 흥겹고 색소폰과 기타 연주는 즐겁다.

맨해튼에서 운전은 낯선 이방인에겐 곡예에 가까웠다. 너무 양보를 자주해서 오히려 운전하기 불편했던 지방 도시에서의 경험이 맨해튼에 들어서면 180도 바뀌어 양보란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만이 내 차의 전진을 보장한다. 모든 길이 일방통행이기에 나 같은 이방인은 통행 가능한 도로를 찾다가 뒷차의 빵빵거리는 소리에 좌든 우든 회전은 엄두도 못 내고 가던 길을 괜스레 더 달려가기 일쑤다. 게다가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건널목을 건너다니니 조심 또 조심이다.

그뿐인가? 인력거와 마차가 대로, 소로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대형 청소차가 집집마다 내어 놓은 쓰레기 봉투 수십 개를 일일이 다 담을 때까지는 절대로 길을 비켜주지 않으니 몇 십 분이고 뒤만 따라 갈 뿐이다. 도로는 덜컹덜컹 성한 곳이 없다. 운전이 아니라 혼비백산이다. 어느 날 한국인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여기서 운전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그 분 대답이 “서울보다는 훨씬 낫다”. 얼마 전 20년 만에 서울에 가서 운전했는데 너무 힘들었단다. 그렇다. 익숙한 것이 편리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연소하여 폭발하도록 계획된 도시

뉴욕을 정의하라면 인간의 욕망을 소비로 다 쏟아내도록 자극하고 유혹하는 곳이다. 세계 최고의 상품과 새 기기들을 만나면 인간의 욕망이 연소하여 폭발하도록 계획된 도시다. 이 도시에서 절제, 희생, 양보란 미덕일 수 없다. 소비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소비품으로 가꾸고 만들어 내놓는다. 여기에선 사랑도 욕망의 소비일 뿐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뉴욕에선 모든 것이 자유다.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다른 사람의 행위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길에서 노래를 하던, 냄새를 피우던, 옷을 벗고 춤을 추던, 진한 키스를 한없이 퍼붓던 모든 게 자유다. 눈치도 굴레도 없다. 자유다. 내 생각을 제약하지 않고 실행한다. 표현한다. 폭발시킨다. 내 이익과 욕구를 최대한 추구한다. 극도로 이기심을 충족시킨다. 그것이 일정 한계를 넘어 충돌하면 경찰이 출동한다. 경찰이 없으면 절대로 굴러갈 수 없는 도시가 뉴욕이다.

 

▲흑인교회 ‘아비시니언 침례교회’ 예배
교회 앞에서 관광객 상대로 심심풀이 간섭하는 비교인에게 속아

할렘지역에 있는 흑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여러 흑인교회 중에서 아비시니언 침례교회(The Abyssinian Baptist church in the city of New York)를 선택했다. 아침 9시 예배에 참석할 계획으로 교회를 찾아 갔더니 교회 문 앞에서 한 안내인이 “9시 예배는 본교회 교인만 드릴 수 있고 관광객들은 11시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며 “선착순으로 25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하니 큰길가에 줄을 서라”고 안내한다. 예배시간이 2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200여 명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로 보인다. 신문에 흑인교회의 예배 참석이 주요 관광코스로 인기가 있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줄이 길어지자 허수레한 중노인이 나타나서 줄 옆으로 지나가며 농담을 섞어 일일이 말을 건다. 짧은 치마와 바지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갈아입고 오라고 한다. 꽉 끼는 바지를 입은 여자들도 입장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줄에 서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아 담배를 피우려면 다른 데로 가서 피우라고 쫓아낸다. 그런데 잠시 후 알고 보니 이 중노인은 술 한잔 걸치고 일요일이면 예배참석하려고 줄 서있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재미삼아 장난치며 소일을 하는 자였다.

조금 있으니 잘 차려입은 키 큰 사람이 손에 맥도날드 햄버거 봉지를 들고 복장검사를 또 실시한다. 교회의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한다며 옷을 바꿔 입으라고 정중하게 권고한다. 이 사람도 심심풀이로 와서 간섭하는 비교인이었다. 그러나 말은 다 옳은 말이었다. 줄 옆에는 어느새 헌옷 장수가 노점을 차려 복장 불량자를 상대로 옷을 팔고 있었다.

아비시니언 침례교회 (출처 아비시니언 침례교회)

 

본교회 교인과 관광객 예배시간 달라

1시간쯤 지나 다리가 아파오는 시점에 교회 완장을 찬 진짜 교인 두 분이 나타나서 두 줄로 줄을 서라며 긴 줄의 앞뒤로 다니면서 주의사항을 외쳐댄다. 그들은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어투로 공지사항을 외쳐댔다. 계속해서 관광객들이 몰려와 줄을 선다. 내 계산으로 1000명이 넘는 것 같다. 수용인원은 250명이니 그 뒤에 서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되돌아가야 할 거 같다.

11시 가까이 되니 예배가 끝났는지 교인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대열 옆으로 지나간다. 과연 이들의 복장은 정장이었다.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와 중절모자, 더운 날씨인데도 외투까지 잘 갖추어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 교인들도 드레시하게 잘 차려입고 머리도 정성스레 빗고 정중하게 치장했다. 예배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드리는 가 보다. 자유로운 복장에 1시간 안팍의 예배에 익숙해진 한국의 교회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다.

11시가 되자 안내인이 “곧 입장하니 두 줄로 서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줄을 점검한다. 11시10분쯤 입장을 시작했으나 속도가 매우 느려 입장하는 데만 약30분이 걸렸다. 본교인 외의 사람들은 예배보러 온 사람으로 치지 않고 단순한 관람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교회 측의 처사다.

 

흑인 교회 예배, 진지하면서도 활기넘쳐

내가 교회 2층 좌석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벌써 기도시간도 다 지나고 목사님이 그날 예배에 참석한 방문 손님들을 호명하고 일어나게 해서 교인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침례식이 있었다. 예배당 전면 2층에는 성가대가 둥그렇게 앉아 있었고, 그 아래층에 설교 연단 뒤로 아름다운 침례탕이 있었다. 여자 침례자들은 특이하게 하얀 가운을 입고 하얀 머릿보로 머리를 감싸고 침례를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침례를 마칠 때 마다 성가대가 화답송을 힘차게 불렀다. 이어서 성경봉독이 있고 성가대의 찬양이 시작되었다. 찬양은 엄숙하고 우렁찼다. 목사님의 설교는 힘이 있었다. 설교를 들으며 교인들은 박수를 치기도 하고 같이 외치기도 한다. 설교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설교에 화답하는 소리로 떠들썩 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출처 아비시니언 침례교회)

 

설교가 끝나고 헌금 시간이 되었다. 성가대의 찬양이 다시 시작되었다. 찬양은 설교 전 찬양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흑인 고유의 가락과 음색이 많이 섞여서 최고조의 흥분된 상태로 이루어졌다. 손뼉치는 소리와 높고 낮은 음색이 자유분방하게 교차하면서 절묘하게 화음을 이뤄나갔다.

주보에 헌금에 대한 안내문이 여러 나라의 말로 적혀 있었다. 그 중에는 한글도 있었다. 오늘은 우리 외에 한국인이 거의 안 보이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두 시간여의 예배를 마치니 1시가 넘었다. 흑인 교회의 예배는 우리 보다 훨씬 진지하면서도 활기차고 집중도가 높았다.

 

김정일

은행 지점장 퇴직 후, 뭐라도 배우고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한 ‘뭐라도학교’ 초대교장으로 3년간 활동하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10년째 소나무와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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