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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⑧] 밀라노(2)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베로나, 아레나 경기장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지에 수도원에 그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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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최후의 만찬’

 

밀라노에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이다. 레오나르도가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최후의 만찬’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1495년이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12명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예수는 이 만찬을 마친 뒤 겟세마네로 올라가 기도를 드리고 곧바로 끌려갔다.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곳은 밀라노에 소재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부속 식당이다. 이 수도원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한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가 설계했다. 당시 이탈리아 수도원에는 어딜가도 ‘최후의 만찬’ 그림이 흔했다. 수도사들이 식사 중에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성찬의 의미를 묵상하라는 의도였다. 따라서 주제 면에서는 레오나르도 작품이라고 해서 딱히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원근법을 완벽하게 구현해 양식적 측면에서는 혁신적이었다.

레오나르도는 460×880㎝나 되는 대형 그림의 네 귀퉁이가 실제 식당의 천장과 벽 모서리가 맞닿아 있는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방을 식당과 연결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다보니 식당에 들어선 수도사들은 예수와 12명 제자들이 벽 저쪽 편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진짜로 식사하고 머리 위 그림 속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실제 식당 공간을 비추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오늘날 ‘최후의 만찬’은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레오나르도가 재료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그림이 금방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기법을 쓰지 않고, 템페라 물감과 기름을 혼합 사용해 얼마지나지 않아 벽화 바닥이 들뜨고 곰팡이가 생기는 등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프레스코화는 젖어 있는 회벽에 안료를 칠하면 벽이 마르면서 그림이 벽의 일부가 되어 단단하게 달라붙는 방식이다. 벽이 아닌 다른 곳, 예를 들면 목판 등에 그림을 그릴 때는 템페라 기법을 사용했다. 템페라는 안료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 끈적거리게 만들어서 그림이 목판에 붙게 만드는 기법이다. 프레스코 보다는 세밀한 표현에 유리하다.

 

‘최후의 만찬’ 원근법을 완벽하게 구현

레오나르도는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림의 장소가 수도원의 식당 벽이라는 사실이었다. 반대편에는 부엌이 있었다. 식당과 부엌에서 나오는 습기 때문에 그림은 마를 새가 없었다. 결국 그림은 벽에 제대로 달라붙지 못한 채 안료가 쉽게 벗겨졌다. ‘최후의 만찬’은 1497년 완성된 후 얼마지나지 않아 훼손되기 시작하더니 몇십 년 만에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복원 시도가 되풀이 되었지만 복원 작업은 오히려 그림을 더 빨리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레오나르도 본인도 벽화 위에 새 안료를 바르면서 훼손을 막아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림이 망가진 데에는 외부적 요인들도 있었다. 179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이탈리아를 점령했을 때 벽화가 있는 수도원을 마구간으로 사용한 것도, 1943년 2차대전 중 폭격으로 식당이 무너진 것도 작품 손상을 가속화했다.

다행인 것은 ‘최후의 만찬’이 완성된 후, 레오나르도의 후배 화가가 베껴 그린 그림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기준 삼아 1977년부터 1999년까지 22년간 마지막 복원이 이뤄졌다. 그래도 “복원 화가들이 80%, 다빈치가 20%를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는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밀라노 시는 작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입장객 수와 관람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 중 원근법을 잘 드러낸 그림은 ‘최후의 만찬’ 말고도 또 있다.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예수의 외할머니인 성 안나가 등장하는 ‘성 안나와 성 모자’(168×130㎝·1510년경)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자, 발명가, 해부학자, 군사전문가, 건축가, 음악가 등 다방면에 두루 뛰어난 만능형 천재였다. 회화, 철학, 시, 작곡, 연주, 악기제작, 요리, 육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능통했다. 심지어는 귀족이나 부자가 귀빈을 초청해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과시하려고 할 때도 레오나르도가 나서 파티와 만찬회를 주관했다. 와인 애호가답게 직접 포도를 경작해 와인을 제조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는 수시로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평소 갖고 다니던 노트에 글과 스케치로 기록한 메모광이었다. 노트에는 기중기, 태엽 자동차,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글라이더, 물 위를 걷는 신발, 깊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배 등 온갖 설계도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기록·낙서 등이 7000페이지가 넘는다. 인체를 탐구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의 해부도도 끊임없이 그렸는데  그가 해부한 사람의 시체만 30구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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