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네티컷강 하구에 인접해 있는 에식스 마을. 잘 조성해놓은 울창한 나무들 속에 하얀 집들이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고 강 위에는 밤 하늘 별처럼 하얀 노트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코네티컷주
▲에식스 빌리지
5월 5일 토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트퍼드의 주청사 인근 중심지를 대강 둘러보고 코네티컷강 하구에 있는 미국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로 소문난 에식스 빌리지(Essex village)로 일찌감치 출발했다.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1,000개의 마을’에서 ‘완벽한 미국의 작은 마을’로 선정되고 ‘미국 최고의 100대 마을’에서 선두를 차지했다고 자랑하는 마을이다.
하트퍼드에서 구글 지도상의 이동 거리는 39.5마일, 예상 소요시간 48분이다. 어제는 미국에서의 첫 운전이자 가장 까다로운 구간인 뉴욕시티에서 빠져나와 하트퍼드까지 바짝 긴장하며 내비게이션과 고속도로 통행 그리고 렌트카 운전의 적응 과정을 무사히 넘겼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방도로를 달렸다.
코네티컷주 명칭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긴 강인 코네티컷강의 이름에서 땄다. 이 코네티컷강 하류 지역에 숲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영국식 전통을 유지하며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어 놓아서 모두 사진으로 찍고 싶은 아담한 집들이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천당을 공간적으로 설명할 때 길과 집들이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고 천상의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천당의 모습을 설명하라고 하면 바로 이 코네티컷강 하류의 강변에 위치한 마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름다운 경치와 모습은 천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으나 즐겁고 행복한 천당의 콘텐츠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이란 것이 잔디 깎고 정원 가꾸고 요트 타고 노는 일 외에는 늘 적막하고 외롭고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미국의 작은 마을’ ‘미국 최고의 100대 마을’
강 하구에 가장 인접한 에식스 마을은 넓은 강과 구불구불 둘려쳐진 숲의 환상적인 경치 속에서 수많은 하얀 요트와 집들이 어울려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앙증맞은 집들이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집이라는 준공년도 문패를 달고, 집집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가꾸어진 정원과 함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담을 치지 않고 개방해 놓아 천천히 걸으며 길가에서 이집저집을 둘러볼 수 있다. 주택과 상점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은 작고, 심지어 은행마저도 귀엽고 작은 표지판만을 내걸고 있었다. 간판이 고객의 눈을 강제로 잡아 끌어가는 무례를 범하지 않고 건물 한 쪽에서 다소곳이 장식의 미를 더해 주고 있어서 편안했다.
에식스 마을은 긴 코네티컷강의 하구에서 대서양과 만나고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17세기 후반부터 일찍이 무역이 성했다. 1656년 부두가 처음 만들어진 후에는 선박건조업이 발달했다. 1776년 미국독립전쟁 당시 이곳 해이든 조선소에서 미국 최초의 전함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호’를 건조함으로써 독립전쟁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대가로 영국군으로부터 엄청난 폭탄 세례를 받아 큰 피해를 당했다. 후세에 이 아름다운 마을을 폭격한 영국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최초의 대서양 횡단 화물선도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대서양과 만나는 코네티컷강 하구에 자리잡아 일찍부터 조선업 발달
조선산업은 한동안 계속 발달했으나 목조선박이 퇴조하고 철선이 주종을 이루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요즘은 군함이 아닌 요트와 같은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최초의 요트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의 요트 경기가 이곳에서 코네티컷의 주도인 하트퍼드까지 진행되었다.
이 작은 마을은 조선산업으로 급발전했으나 이 때문에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독립전쟁 때 군함을 건조하고 진수했다는 이유로 영국군에게서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은 이미 기술했다. 그 보다 더 아픈 역사는 1812년 발발한 미영 전쟁 중에 영국에 협조했다가 비난을 받은 것이다. 1814년 영국 해군은 코네티컷강 하구에 전함 조선소가 있는 에식스 마을을 공격, 계류 중이던 함정 28척을 불태웠다. 마을 사람들은 기세등등 상륙한 영국군에 항복하고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적군에 부역을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이 마을은 비겁한 반역자 마을로 미 전역에서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들은 강 박물관에 자기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소상히 기록하고 전시하는 것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전국에서 쏟아진 신문 지면의 비난 기사들도 모두 모아 벽면에 전시함으로써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
1812년 美·英 전쟁 중에 영국군에 부역했다고 해서 비난과 손가락질 받아
보통 조선소가 있는 동네라면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공장 지대를 연상하는데 이곳의 거리는 산뜻하고 고요한 기품을 갖추고 있다. 에식스 마을에서 중심지는 ‘그리스월드(Griswold)’라는 호텔 겸 식당이다. 1776년 독립전쟁 때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더 그리스(The Gris)’라고 한다. 250년의 역사와 맛을 자랑한다. 일요일 점심에는 ‘사냥꾼의 아침(Hunt Breakfast)’이라는 영국식 음식 뷔페를 내어 놓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1812년 전쟁 때 영국 군인들이 에식스에 주둔하면서 먹던 영국식 식사인데 양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나 같은 나그네는 ‘사냥꾼의 아침(헌트 브렉퍼스트)’을 먹어보기 위해 요일을 맞추어 다시 찾아올 수는 없었다. 그냥 점심식사로 영국식 피시앤칩(Fish & Chips)을 시켜놓고 250년 관록의 때가 곳곳에 스며있는 식당에서 감회에 젖었다. 식당 안에는 이곳에서 건조한 듯한 수많은 배들의 빛바랜 크고 작은 사진 액자들이 시커멓게 그을은 벽에 가득 매달려서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보여주고 있었다.
17~18세기 마을 정경을 그대로 간직
정지된 시간인 마냥 한산한 마을은 17~18세기의 마을 정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 끝 부둣가에 서 있는 소박한 창고같은 건물에 강 박물관을 차려놓고 마을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이른 봄의 꽃들도 흰색, 집들도 흰색, 도크에 서 있는 요트들도 흰색, 약간 흐린 하늘과 하늘이 비친 강물도 희어서 마음도 하얗게 세탁이 된다.
에식스 외에도 코네티컷강을 따라 올라가며 아이보리톤(Ivoryton), 체스터(Chester), 이스트 해담(East Haddam) 등의 예쁜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마다 강과 숲과 정원과 집이 한데 어울려 환상적이다. 차를 몰아 천천히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집마다 생생한 조경 교과서라고 할 만 했다. 이런 마을에서 며칠 묵으며 센터부룩과 세이부룩까지 둘러보고 보트도 타면서 컨트리풍에 흠뻑 젖어보면 좋으련만, 가야할 곳은 많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곳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나절 나들이로 마치고 보스턴을 향해 출발했다.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
에식스 빌리지를 둘러보고 가까운 이스트 해담에 있는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Gillette Castle State Park)에 잠깐 들렀다. 깊숙한 산 속에다 가공하지 않은 돌들을 이리저리 쌓아서 중세시대 풍의 독특한 요새와 성을 만들었다. 잡석을 연마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 3층의 웅장한 성채를 건축하고 주변에 성곽을 쌓아 두르고 아치형 문까지 조성해 놓았다. 들쭉날쭉한 돌맹이만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지어진 성은 잘 다듬어 가꾼 정원인데도 불구하고 곧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귀곡성 같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그럴 것이다.
성곽의 한 쪽은 강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한 눈에 강과 그 너머 산과 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행주산성 같은 지형 지세다. 건물 외부는 나무 등 다른 자재를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석만으로 성채의 난간, 창틀, 계단, 아치 대문, 지붕까지 만들어 노력과 집념이 돋보인다. 그러나 실내 인테리어는 산성 주변에서 벌채한 참나무로 정교하게 꾸며졌다고 한다.
여행 내내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미국 동부 대부분의 국공립 관광시설이 현충일(Memorial Day, 5월 4째주 월요일)부터 시즌 오픈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레트 캐슬의 내부는 관람하지 못했다.
중세시대 풍의 독특한 요새와 성이 눈길 끌어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은 연극배우 겸 극작가였던 윌리엄 질레트(William Hooker Gillette, 1856~1937)가 직접 설계·감독·건설했다. 그는 일시 은퇴 중이던 1914년부터 1919년 사이에 약 20명의 인부를 데리고 성채를 지은 뒤 이 외딴 곳에서 살았다. 이곳은 코네티컷 강변을 따라 연달아 솟은 ‘일곱 자매(Seven Sisters)’라는 봉우리 중에서 일곱 번째 봉우리다. 성채에 24개의 방과 47개의 문이 있는데 똑같이 생긴 것이 없을 정도로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다양하게 만들었다.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을 구경하다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서둘러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방값이 비싼 보스턴을 피해 보스턴 인근 데드햄의 힐튼호텔에서 3박을 묵으며 일대를 둘러볼 작정이다. 여기서 103마일, 2시간 거리다. 주간고속도로 95번을 타고 동북 방향으로 달린다. 밤 9시가 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김정일
은행 지점장 퇴직 후, 뭐라도 배우고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한 ‘뭐라도학교’ 초대교장으로 3년간 활동하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서 10년째 소나무와 씨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