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마거릿 대처 영국 최초 여성 총리 돼

1960년대 말부터 10여 년동안 영국은 물가인상, 경제성장률 하락, 국제수지 악화 등으로 국가 전체가 흔들렸다. 국가는 복지비용 충당을 위해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고액의 세금을 거두어갔고, 국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보살펴 주는 보호막에 안주하며 일을 멀리했다. 생산성이 떨어졌지만 노조는 파업을 일삼았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마거릿 대처가 무대에 등장한다. 1979년 5월 3일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보수당 당수 대처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것이다. 두자릿수의 인플레와 낮은 경제성장, 고질적인 노사분규 등이 그를 맞았으나 대처는 “웅변은 남에게 맡기고 나는 행동만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도 경제가 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인기가 곤두박칠쳤다. 그렇다고 흔들릴 대처가 아니었지만 다행히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터져 대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전쟁 승리와 함께 ‘대처리즘’도 서서히 효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3년 또 다른 전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20개 석탄 채굴회사의 문을 닫아버리자 탄광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탄광노조는 1974년 히스 정권을 몰락시켰던 최강의 노조였지만 결국 1년 뒤 완패를 선언하고 대처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후 파업횟수가 줄어들어 영국이 안정을 찾아갔다. 국민들은 1983년·1987년 대처를 연거푸 총리에 당선시켜 11년 동안 영국을 재정비하도록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대처리즘’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1990년 11월 당수를 뽑는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자 대처는 당내 지지를 잃었다고 판단하고는 총총히 총리 관저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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