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세계 발레사의 전설’ 바츨라프 니진스키 사망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평생 두 번 죽었다. 세속적인 생명은 1950년 4월 8일에 끊겼지만 예술가로서의 생명은 1919년부터 사실상 멈춰있었다. 1919년부터 죽을 때까지 주로 정신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명성의 정점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발레사(史)의 전설’ 니진스키는 어려서는 ‘발레의 신동’이었고 성장해서는 ‘발레의 신’이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 중력의 법칙을 비웃는 듯한 도약을 자랑하는 그의 등장은 고전발레와 현대발레의 분기점이었다.

니진스키는 세르게이 댜길레프라는 20세기 최고의 공연기획가를 만나면서 찬란한 발레리노의 꽃을 피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파국도 맞았다. 둘을 이어준 것은 댜길레프가 창단한 발레단 ‘발레 뤼스’(러시아 발레단)였다. 1909년 니진스키는 ‘발레 뤼스’의 파리 첫 공연에 합류했다. 열광하는 관객들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공연이 회를 거듭할수록 니진스키는 파리 예술계의 명사로 확실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의 무용에 넋이 나간 조각가 로댕은 그가 춤추는 모습을 3점의 조각으로 남겼고, 시인 장 콕토는 공연포스터와 팜플렛을 직접 디자인했다.

1912년 5월에는 직접 안무까지 맡아 ‘목신의 오후’를 무대에 올렸으나 고전무용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 5월에는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봄의 제전’ 안무를 맡아 폭동에 가까운 객석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생전에 그가 안무한 작품은 모두 4편에 불과하고 무대공연은 단지 20여 회에 불과했지만 그의 몸짓은 어느덧 현대발레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개인사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스승이자 동성애 연인 디아길레프와 헤어져 여성무용수와 결혼하자 질투에 불탄 디아길레프가 니진스키를 발레단에서 쫓아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니진스키는 결국 정신질환의 나락으로 떨어져 무용가로서의 인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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