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가평 연인산] 소망능선~장수능선은 전체적으로 흙산 오솔길에 숲터널이어서 걷는 맛이 제법 쏠쏠하나 조망 없는 건 아쉬워

↑ 연인산 정상을 향해 가는 능선길. 흙산이어서 걷는게 편안하다.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코스와 거리 : 총 8㎞

     주차장 → 소망능선 → 정상 → 장수능선 → 원점회귀

☞ 산행 시간(휴식 포함) : 5시간

 

2021년 5월 8일 희용 부부와 경북 포항의 내연산에 다녀왔다. 내연산의 한자는 ‘內延’이지만 현대인에게 ‘내연’이 연상시키는 것은 부정적 의미의 ‘내연관계(內緣關係)’다. 내연산에 다녀오고 한달 후, 희용이 우리 두 쌍의 부부 위상을 이제는 부정적인 ‘내연’에서 긍정적인 ‘연인’으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7월 3일 산행을 떠난 곳이 경기 가평의 연인산(戀人山·1,068m)이다.

연인산 정상

 

■연인산은

 

연인산은 따로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가 없어 화전민들이 숲속에서 밭을 일구며 살았던 무명산이었다. 많을 때는 300여호나 되었던 화전민들의 삶은 박정희 정권의 산림정책에 의해 1970년대 초반에 막을 내렸다. 그러던 중 1999년 가평군에서 이곳을 새롭게 가꾸면서 새 이름을 공모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연인산이었다. 이름 유래는 이 글 맨 아래에 소개한다.

가평에는 산세와 풍광 면에서 연인산보다 뛰어난 산이 여러 개다. 그중 대표적인 산이 명지산, 운악산, 유명산 등이다. 그런데도 2007년 연인산만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개명(改名)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참고로 경기도립공원은 연인산, 남한산성, 수리산 세 곳이다. 연인산은 흙산이어서 걷기에 편하다. 사시사철 등산객이 찾는다. 특히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등산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들머리는 크게 세 곳이다. 주능선 동쪽의 백둔리(북면), 승안리(가평읍), 서쪽의 마일리(조종면)다. 이 가운데 동쪽의 백둔리에서 소망능선과 장수능선, 승안리에서 용추계곡으로 이어진 청풍능선과 연인능선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인기 있다. 두 코스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백둔리 코스 즉 백둔리에서 시작해 소망능선으로 올라가 정상을 밟고 장수능선으로 내려와 백둔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는 주차장이 넓고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3㎞에 불과하다는 게 장점이다. 대신 숲에 가려 정상을 제외하면 조망은 별로다.

승안리 코스(청풍능선~연인능선)는 골 깊고 수량 풍부한 용추계곡을 끼고 있어 계곡을 감상하면서 오른다는 게 장점이다. 그럼에도 초보 등산객이 꺼리는 이유는, 들머리인 승안리 탐방안내소나 용추계곡주차장(버스 종점)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10㎞가 넘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2㎞의 연인능선이 가파르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도 들머리에서부터 800m 이상 올려야 한다.  연인산은 100대 명산이다.  참고로 ‘100대 명산’을 정하고 등산객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산림청, 블랙야크, 월간산, 한국의산하 등 네 곳이다. 이 가운데 연인산은 산림청을 제외한 세 곳에서 ‘100대 명산’으로 꼽혔다.

연인산 지도

 

■우리 산행은

 

우리 산행의 들머리는 백둔리다. 즉 백둔리 주차장~소망능선~정상~장수능선~주차장이다. 거리는 대충 8㎞다. 백둔리에는 주차장이 두 곳 있다. 아래에 있는 제2주차장과 위에 있는 제1주차장인데 1.5㎞의 두 주차장 간 도로 폭이 좁아 버스는 제2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경우 무조건 제1주차장이다. 넓직한데다 정상까지 거리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전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제2주차장에 주차하려다 거리가 먼 듯 해 일단 올라가다가 제1주차장을 발견했다.

소망능선과 장수능선 모두 제1주차장이 들머리다. 소망능선은 주차장에서 바로 직진하고 장수능선은 주차장 왼쪽에서 출발한다. 지도와 안내판마다 들쑥날쑥한데 소망능선은 정상까지 거리가 3.0~3.4㎞이고, 장수능선은 정상까지 4.8㎞다.

 

▲들머리~정상(소망능선)

9시 15분 제1주차장을 출발해 소망능선에 올라탔다. 초입부터 쭉쭉뻗은 잣나무숲이다. 이곳 백둔리(栢屯里)는 잣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잣나무숲은 과거 화전을 했던 자리다. 이곳 말고도 연인산 곳곳에 아름드리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옛 화전터다. 지금도 용추계곡이나 연인능선, 우정능선 등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옛 집터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잣나무숲과 초반 오름길

 

잣나무숲부터 급경사인 탓에 땅만 내려다보고 올라가야 하니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몸도 마음도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아 ‘소망능선’ 대신 ‘기도능선’으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오르막이 제법 가팔라 ‘소망능선’ 이름을 ‘절망능선’으로 바꾸고 싶다는 글도 있다.

잣나무숲을 지나면 ‘소망철쭉터널’이라고 표시한 안내판이 있다. 지금은 7월 초여서 철쭉꽃을 볼 수는 없지만 연인산은 철쭉 산행지로 유명하다. 소망능선과 장수능선에도 100년 이상 된 철쭉이 터널을 이룰 정도로 풍성하다. 정상 부근과 용추계곡 일대도 산철쭉 군락지다. 매년 5월 철쭉제가 연인산에서 열린다.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오른 곳에 동굴이 있다. 그저 그런 동굴인데도 가평군이 정성스럽게 안내판까지 만들어 스토리를 입혔으나 작위적이다.

소망철쭉터널 안내판과 철쭉나무(오른쪽)

 

동굴 지나면서 능선 갈림길까지 1시간 동안은 급경사의 연속이다. 그 사이 도시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숲에서 귀로 전달된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인데 내 귀에는 “사각사각”으로 들린다.

잣나무 군락지는 계속 이어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아름드리 나무 대신 가늘고 높이 뻗어올라간 잣나무가 숲을 이룬다. 일부 구간에는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등산객이 많이 다녀간 후유증이다. 문득 이태 전,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길이 떠올랐다. 다산초당길에서 수백년된 소나무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을 본 시인 정호승은 ‘뿌리의 길’이라는 시를 지었다. 답답한 것은 잣나무와 전나무가 헷갈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낙엽송도 구분하지 못하니 나무에 관한 한 초딩 수준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날이 흐리다. 덕분에 흙길이 선명하고 깔끔하다. 풀은 청초하고 나무는 생기가 있다.

중반 오름길

 

흙으로만 1000m 고봉(高峯)을 이룬다는 게 신기

연인산은 흙산이다. 대형 암반이 없다. 그런데도 흙으로만 1000m 고봉(高峯)을 이룬다는 게 신기하다. 1000m 고산에 이렇게 완벽한 흙산은 이곳 말고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급경사 구간이 많아도 흙산이어서 오름길이 순하다. 문제는 산에서 조망을 보장하는 대형 기암기석이 없기 때문에 조망이 별로라는 것이다.  능선 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주차장을 출발한 지 1시간 45분이 지난 11시다. 주차장에서 2.2㎞ 거리다.

능선 삼거리는 왼쪽 장수능선과 만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우측 정상까지는 0.8㎞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능선도 숲터널이다. 해발고도가 1000m도 넘는 정상 부근인데도 잡풀이 허리까지 자라고 하늘을 가린 나무들이 즐비하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숲이 좋고 오솔길이어서 걷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갈림길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니 능선 왼쪽 아래에 장수샘터가 있다. 넓지는 않지만 구상나무 군락지도 있다. 갈림길에서 정상까지 30분이 걸렸다.

정상 안내판이 재미있다. <테스형네 집 ㅋㅋ>라고 쓰여진 안내목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태양 1억5천만㎞>, <안드로메다 2400경㎞>라고 표시된 안내목도 있다. 명지산 방향으로 <영숙이네집 ㅋㅋ>라고 되어 있어 연인산 부근 음식점인가 싶어 검색해봤는데 ‘영숙이네 집’ 상호를 가진 음식점은 없다. 궁금해 경기도청 연인산 담당 공무원께 전화로 물어봤더니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이 한번 쯤 웃어보라는 뜻에서 이런 안내판을 생각했다”고 한다. ‘영숙이네 집’ 표시도 그냥 친숙한 이름을 적어놓은거란다. 연인산 공무원께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명지산까지는 5.9㎞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연인능선

 

정상에서 바라볼 때 북서쪽으로 한북정맥이 한 일(一)자로 지나간다. 오른쪽은 귀목봉(가평)이고, 그 왼쪽의 뾰족한 산은 경기 포천과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이다. 정상에서 북쪽은 명지산이고 서쪽은 운악산이다. 참고로 한북정맥은 강원과 함경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군의 추가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의 강구(江口)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또한 청계산은 전국적으로 네 곳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걸쳐 있는 산(618m), 경기 양평군에 있는 산(658m), 경북 상주시에 있는 산(877m), 경기도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산(849m)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맨 오른쪽이 귀목봉이고 가운데 뾰족한 산이 청계산이다.

 

▲정상~날머리(장수능선)

자 이제 하산이다. 정상에서 내려와 능선 갈림길 지나 장수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올라온 길도 그랬지만 내려가는 길도 심플하다.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내려가 공터에서 점심을 하는데 날씨가 춥다. 음력 오뉴월에는 개도 안걸린다는 감기에 걸릴 정도다. 매사 준비가 철저하신 두 중년 여성들께서는 준비해온 긴팔 바람막이를 꺼내 입는다. 방심했던 희용과 나는 긴팔 상의가 없어 우비를 꺼내입었다.

장수능선 하산 중 찰칵

 

정상에서 장수능선으로 하산하면 거리가 4.8㎞다. 정상에서 조금전 올라왔던 능선 갈림길까지 0.8㎞이고 그곳에서 주차장까지는 4.0㎞다. 장수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주차장으로 좌회전하지 않고 직진하면 청풍능선이다. 중간에 장수봉(879m)과 송악산(705m)을 지나는데 이름만 산과 봉일 뿐 구릉지여서 안내판이 없다면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그저 능선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수능선이 소망능선보다 거리가 많이 길어서 상대적으로 완만할 줄 알았는데 장수봉을 지나고부터는 급경사 구간이 제법  길다. 괜히 1000m 높이의 산이 아님을 일러준다. 막바지 길은 다시 잣나무숲이다. 그중 꽤나 큰 잣나무가 보이는데 살짝 드러난 뿌리를 보니 마치 공룡의 발처럼 보인다. 오후 3시쯤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비로소 장맛비가 조금씩 내린다. 약 8㎞ 거리를 오르내리는데 5시간 30분쯤 걸렸다.

아름드리 잣나무. 뿌리가 공룡의 발 같다.

 

■길수와 소정의 사랑 이야기

옛날옛적 화전을 일구며 숯을 굽는 청년 길수와 김참판 댁의 여종 소정이가 눈이 맞았다. 길수가 소정과 혼인하고 싶다고 참판에게 말했다.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거나 숯 가마터를 넘겨주면 결혼시켜주겠다고 했다. 길수는 다행스럽게도 연인산 정상 바로 아래에 밭을 일굴 수 있는 넓은 땅을 발견하고 아홉마지기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정을 줄 마음이 없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라고 모함을 했다.

포졸들이 길수를 잡으려고 들이닥쳤을 때 가까스로 도망친 길수는 함께 도망갈 생각으로 소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소정은 길수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소문에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남은 생을 포기한 뒤였다. 소정의 시신을 안고 아홉 마지기로 돌아간 길수는 자신의 희망이었던 조를 불태우며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죽었다던 소정도 아홉마지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보니 두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신발 두 켤레만 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신발이 놓여 있는 자리 주위에는 철쭉과 얼레지가 불에 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후 봄이면 얼레지꽃과 철쭉꽃이 눈부시게 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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