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삼풍백화점 붕괴… 총체적 양심 불량이 그대로 까발려진 참사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백화점 소유주의 탐욕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은 붕괴되기 수개월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1995년 4월 중순부터 건물이 약간 흔들리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더니 2개월 후에는 벽면에 금이 생겼다. 1995년 6월 29일 오전 9시쯤에는 백화점 A동 5층 식당가 일부 음식점의 천장과 바닥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한 식당의 천장은 금이 간 채로 내려앉아 기둥과 천장이 분리되었다.

급기야 오전 11시 50분쯤 5층의 식당 부근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백화점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감지되었다. 건축사무소 책임자는 현장을 확인하고 에어컨과 냉각탑의 가동을 정지시켰다. 오후 2시 이준 회장과 이한상 사장 등 백화점 최고 경영자들이 참석한 임원회의에서 건물의 균열 현상이 보고되었다. 그런데도 “괜히 호들갑을 떨다 소문만 나면 창피하니 좀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결국 살인 회의가 되고 만 대책회의는 이렇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40분 만에 끝이 났다. 오후 3시쯤 건축 전문가들의 안전진단 결과, 옥상을 떠받치는 기둥 사이에 위치한 바닥 부분 4곳이 내려앉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후 4시 두 번째 긴급 대책회의가 소집되었으나 이번에도 “설마 무너지기야 하겠느냐”는 안전 불감증에 빠져 붕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수공사의 시기와 방법이 집중 논의되었다. 결국 회의에서는 “5층에 일단 출입 제한 조치를 내리고 영업을 마감한 뒤 보강공사를 벌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실종된 기업윤리로 인해 두 차례의 대책회의가 결국 살인 회의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오후 5시 30분, 건물의 균열이 급박하게 진전되고 건물 전체에 매캐한 가스 냄새가 번지는 등 붕괴 조짐이 뚜렷해졌다. 곧 일부 직원과 고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저녁 피크 타임에 맞춰 장을 보러온 주부 등 고객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지하 슈퍼마켓을 비롯한 매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학교 수업을 막 마친 학생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오후 5시 40분, “붕괴가 시작된 것 같다”는 급보가 회의장에 전해져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회의 참석자들은 고객들을 내팽개쳐 둔 채 부랴부랴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비상벨은 오후 5시 50분에야 울렸다. 백화점 곳곳은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후 5시 57분쯤 결국 A동 5층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연쇄 붕괴가 일어나면서 A동 전부와 B동과의 연결부가 폭삭 주저앉았다. 백화점 건물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데는 2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앙상한 골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 이 어처구없는 참사에 온 국민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테러도 아니고 건물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은 건축공학사의 충격”

조사 결과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주가 준공 전에 무리하게 설계를 변경하고 준공 후에도 공무원의 협조로 수차례에 걸쳐 불법으로 구조를 변경하는 등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공사한 것으로 드러나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설계도상 32인치여야 할 건물 기둥은 실제 23인치밖에 되지 않았고 4층으로 설계된 건물 위에는 5층 증축을 강행했다. 무리하게 올린 5층에는 본래 계획이던 롤러스케이트장 대신 무거운 온돌을 깐 음식점들을 열었다. 뒷돈을 받은 공무원들은 이를 눈감아주고 공사가 40% 진행된 상황에서 영업 허가를 내줬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백화점 소유주의 탐욕이었다. 사고 당일 오전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기둥이 옥상을 뚫고 나오는 상황에서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한 설계감리회사가 ‘붕괴 우려’ 진단을 내렸는데도 정상 영업을 감행해 500여 명의 인명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결국 건물은 무너졌고, 붕괴와 함께 총체적 부패 구조, 부실시공과 불법 설계 변경, 공무원의 뇌물 수수, 인명 경시 풍조, 배금주의, 임의 용도 변경 등 우리 사회의 총체적 양심 불량이 그대로 까발려졌다.

붕괴 사고로 실종자 30명을 포함해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건물 속에 매몰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최명석, 유지환, 박승현 등 3명의 20대 남녀가 각각 11일, 13일, 16일 만에 구조된 ‘생환 드라마’로 온 국민은 잠시나마 인간 승리의 환희와 감동에 젖기도 했다. 붕괴 사고로 1852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사망자 유족들의 보상금과 부상자들의 치료비로 각각 1905억 원, 1004억 원이 지급되었다. 백화점 대표와 관계 공무원 등 30여 명이 부실공사와 뇌물 수수 혐의로 사법처리되었다.

외신은 “테러도 아니고 건물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은 건축공학사의 충격”이라며 “선진국이 200년 동안에 달성한 것을 20년 만에 축약해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일본 언론은 “성수대교를 잊었다”며 망각을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토록 충격적인 성수대교 붕괴를 불과 8개월 전 겪고도 달라진 게 없다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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