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에서 북극해를 지나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만 있다면….” 유럽인들의 오랜 꿈이었지만 차가운 북극바다는 언제나 그들의 뱃길을 거부했다. 길은 러시아 북쪽을 지나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북쪽을 지나는 ‘북서항로’ 두 갈래 뿐이었다. 남아프리카를 돌아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뱃길에 비하면 그야말로 황금같은 뱃길이었다.
북태평양의 베링해가 알려지고 1879년 핀란드의 노르덴시욀드가 베링해를 거쳐 일본까지 항해하는 ‘북동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이제 남은 건 ‘북서항로’ 뿐이었으나 바다는 좀처럼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1497년 영국 탐험가 캐보트가 헨리 7세의 명을 받아 북서항로를 탐험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항로를 뚫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가장 끔찍했던 일은 1845년 영국 프랭클린 탐험대원 129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던 일이다.
1903년 6월 17일 밤, 8년 뒤 인류최초로 남극점을 밟을 아문센이 47t의 ‘요아(Gjoa)호’를 타고 7명의 승무원과 함께 조용히 오슬로항을 떠났다. 출항 3개월. 아문센은 캐나다 북부의 킹 윌리엄섬 남안에 닿았고, 3년간 머무르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 섬에는 프랭클린 탐험대가 남겨놓은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06년 7월 이곳을 떠난 아문센이 북극의 얼음과 사투하기를 50일. 베링해를 빠져나오자 북태평양에 위치한 캐나다의 놈항이 멀리 시야에 들어왔다. 북서항로가 마침내 인간에게 길을 내준 것이다. 1906년 8월 3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