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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시리의 ‘쫄븐갑마장길’을 아시나요… 오름과 잣성길, 들판과 하천 숲길을 따라 10㎞ 걷는 호젓하고 한적한 산책길이랍니다

↑ 따라비오름에서 바라본 잣성길. 풍력발전기 뒤 오름이 큰사슴이오름이고 그곳까지 뻗어있는 삼나무·편백나무 숲이 잣성길이다.

 

by 김지지

 

제주도에 ‘쫄븐갑마장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2년 전 늦가을, 따라비오름에 오를 때였다. 그러나 따라비오름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이고 쫄븐갑마장길 거리가 10㎞나 되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후 따라비오름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쫄븐갑마장길이 자꾸 연관검색어로 뜬다. 덕분에 길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해서 2021년 4월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갔을 때 쫄븐갑마장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지형을 알지 못한 채 글만 읽고서 10㎞나 되는 길을 홀로 걷는 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 소재 대학의 현직 교수인데도 수년 전 제주 표선면에 정착한 영만형을 찾아가 “쫄븐갑마장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주 쫄븐갑마장길을 걷는다”며 지형을 자세히 알려준다. 머릿 속으로는 이해했으나 그래도 도상(圖上)으로 익힌 것이어서 자신이 없었다. 영만형에게 맛난 저녁을 얻어먹고 헤어지면서 “내일 갑마장길을 걸어가면서 헷갈리면 전화를 하겠다”고 하니 “언제든 물어보라”며 힘을 실어준다.

따라비오름. 멀리 보이는 게 큰사슴이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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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븐갑마장길은 10㎞를 걷는 순환 트레킹 코스

 

쫄븐갑마장길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걷기길이다. 가시리는 표선면 서북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을 잇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옛날 활화산이던 한라산과 오름들이 뿜어낸 용암이 바다를 항해 흘러가다 가시리에서 멈추어 드넓은 평원과 초지대를 형성했다. 조선시대에 제주에 설치한 10여개의 말목장 중 가장 규모가 큰 녹산장과 최상급 갑마(甲馬)들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인 갑마장이 가시리에 만들어진 이유다.

갑마장길은 이 대평원을 에워싸고 있는 가시리 마을과 오름들 그리고 목장길로 이어지는 순환 코스다. 전체 거리는 가시리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20㎞로 7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이 길에서 핵심만 추려 절반 정도 규모인 10㎞ 구간으로 만든 게 쫄븐갑마장길이다. ‘쫄븐’은 ‘짧은’의 제주도 방언이다. 따라비오름과 사슴이오름, 목장의 경계선인 잣성, 그리고 가시천을 따라 걷는다. 호젓하고 한적하다.

갑마장길. 전체 거리는 20㎞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출발지를 따라비오름으로 잡았으나 순환 코스이므로 출발지를 중간 어디로 삼아도 상관이 없다. 그래도 주차 등을 감안하면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유채꽃프라자, 조랑말체험공원 등이 적당하다. 쉬엄쉬엄 걸으면 4~5시간 걸린다. 쫄븐갑마장길은 멋진 산책길인데도 의외로 다녀온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번에 내가 잣성길과 가시천길을 지나갈 때 만난 사람도 한 쌍의 부부뿐이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찾아갈 탐방객을 위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코스를 소개한다.

쫄븐갑마장길은 녹산로와 가깝다. 녹산로는 제주 동부 중산간 마을인 구좌읍 송당리와 표선면 가시리를 잇는 왕복 1차선 도로다. 봄이면 샛노란 유채꽃과 분홍 벚나무가 도로 옆을 가득 수놓아 장관을 연출한다. 가시리에서 정석항공관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약 7㎞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두 번이나 선정될 정도로 제주에서도 멋진 길로 꼽힌다.

 

■전체 코스는 따라비오름~잣성길~큰사슴이오름~유채꽃프라자~가시천~따라비오름

쫄븐갑마장길 지도

 

▲따라비오름~잣성길

아내와 함께 쫄븐갑마장길 탐방에 나선 것은 2021년 5월 1일이었다. 이번 탐방에서 따라비오름 말고는 아는 곳이 없어 따라비오름을 출발지로 삼았다. 코스는 자연스럽게 따라비오름~잣성길~큰사슴이오름~유채꽃프라자~가시천(꽃머체~헹기머체)~따라비오름으로 정해졌다. 표선면 가시리에 자리잡고 있는 따라비오름은 해발고도 324m, 비고(순수 높이) 107m다. 둘레는 2.633m다. 마침 따라비오름이 2년 전 늦가을 다녀온 곳이어서 마음만은 편했다.

따라비오름 주차장은 표선면을 관통하는 1136도로에서 2.5㎞ 정도의 외길을 들어가야 나온다. 따라비오름에서도 출발지는 두 곳이다. 한 곳은 따라비오름 남쪽 능선으로 올라가 북쪽의 잣성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따라비오름 아래 오른쪽 둘레길을 돌아 잣성으로 연결된 길이다. 대부분은 따라비오름 능선길을 이용한다.

삼나무·편백나무 숲길

 

우리도 따라비오름으로 올라가 잣성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능선 북쪽에 ‘갑마장길 큰사슴이오름’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다. 그것을 보고 능선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삼나무·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그곳에 ‘← 갑마장길’ 안내판이 있다. 길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숲 사이로 이어진다. 삼나무숲 왼쪽 옆으로는 잣성이 같은 길을 향해 나아간다. 따라비오름 능선에서 보면 잣성과 삼나무·편백나무 숲길이 큰사슴이오름까지 계속 이어진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잣성은 말목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이다. 조선시대 때 거무튀튀한 현무암을 쌓아올려 만든 이곳 잣성은 제주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 본격적으로 말목장이 설치된 건 조선 초기였다. 1492년(세종 11년) 중산간 지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국영목장인 10소장(十所場)과 동부 산간지역에 녹산장 등 3개의 산마장(山馬場)을 조성했다.

 

잣성길은 부드러운 흙길에 간간이 숲길이어서 호젓

잣성 옆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다. 대부분 1970년대 말 산림녹화 차원에서 심어진 나무들이지만 간벌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었을 뿐 굵지는 않다. 참고로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기둥이 사실상 같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구분한다면 편백나무는 잎이 짧고 납작하게 생긴 반면 삼나무는 잎이 길고 뾰족뾰족하다.

숲길은 10분 정도 가다가 잣성의 왼쪽으로 이어진다. 즉 잣성 오른쪽의 삼나무·편백나무 숲길을 걷다가 잣성 왼쪽의 평지 산책길로 바뀌는 것이다. 잣성길 왼쪽은 너른 초지다. 어두웠던 삼나무숲길과 달리 잣성 왼쪽길을 걸으니 다양한 수종이 저마다 연초록의 옷을 입고 반긴다.

잣성길

 

이후에는 가끔씩 나타나는 갑마장길 안내판만 보고 직진 방향으로 걸어가면 되므로 알지 못하는 길을 간다는 불안감이 서서히 해소된다. 잣성길 중간에는 애기동백나무숲도 있다. 제주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ㄹ’자 목책도 간간이 눈에 띈다. 가끔 초지에는 고사리를 캐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한결같이 고사리 주머니를 달고 있다. 듣기로는 주머니에 한가득 채우면 10만원의 수입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고사리를 캔다. 잣성길은 부드러운 흙길이고 간간이 숲길이어서 호젓하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된다.

 

▲잣성길~큰사슴이오름(대록산)

쫄븐갑마장길은 2㎞ 정도 거리의 잣성이 북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0여 기의 거대한 백색 풍력발전기와 태양열 집진판이 너른 벌판을 차지하고 있다. 갑마장길 안내판을 보고 5분 정도 진행하면 황토색 포장길이다. 왼쪽은 나중에 큰사슴이오름에서 하산할 때 만나게 될 유채꽃프라자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큰사슴이오름의 동쪽 탐방로로 이어지는 갑마장길이다. 포장길은 잠시후 시멘트길로 바뀌어 10여분 동안 이어진다.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길이 길게 이어지고 사방이 탁 트인 것을 본 아내가 사진에서 본 남프랑스 같다고 한마디 한다.

큰사슴이오름 정상으로 이어진 시멘트길

 

시멘트길 왼쪽으로는 큰사슴이오름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조금전 함께 걸어온 잣성과 삼나무·편백나무숲이 북쪽을 향해 뻗어있다. 그 길을 어느정도 가다보면 갑마장길/대록산 정상(왼쪽)과 대록산둘레길(직진)로 갈라지는 안내목이 나온다. 우리는 큰사슴이오름 정상을 선택했다.

큰사슴이오름(大鹿山·대록산)은 해발고도 474m에 비고(오름 자체 높이)는 125m다. 완만한 오름길에 연륜 있어 보이는 목침 계단을 만들어놓아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중간중간 뒤돌아보면 큰사슴이오름에서 4.4㎞ 떨어져 있는 따라비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20분 정도 올라가면 분화구 능선이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 정상에 올랐다. 따라비오름, 풍력발전기, 유채꽃프라자, 대록산주차장, 녹산장과 산마장 등 너른 초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큰사슴이오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보이는 따라비오름과 너른 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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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슴이오름~유채꽃프라자~가시천~따라비오름

쫄븐갑마장길은 큰사슴이오름 정상에서 내려와 유채꽃프라자를 거쳐 가시천으로 이어진다. 유채꽃프라자는 정상 바로 옆 하산길(서쪽 탐방로)로 내려가도 되고 조금전 올라왔던 동쪽 탐방길로 내려가도 된다. 어느쪽으로든 끝지점에서 만나는 둘레길이 유채꽃프라자와 연결되어 있다. 유채꽃프라자는 숙소, 무인카페, 세미나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공공 게스트하우스다.

유채꽃프라자

 

유채꽃프라자에서 벗어나면 조금전 지나온 황토색 포장길과 다시 만나 녹산로 옆 유채꽃프라자 입구로 연결된다. 너른 들판길에 세워져 있는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옆에서 힝힝 소리를 내며 돌아가니 약간 불안하다. 유채꽃프라자 입구에서 녹산로로 빠져나가지 않고 왼쪽 공터 끝을 바라보면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가시천 입구가 보인다. 녹산로에서 보면 유채꽃프라자 입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이다. 다소 멀리 떨어져 있어 가시천 입구가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면 가시천으로 들어가는 갑마장길 표시가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부 구간에서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굉음이 들리긴 하나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다.

유채꽃프라자에서 가시천으로 가는 길. 너른 들판이다.

 

따라비오름을 출발한지 벌써 4시간 째여서 지칠만한데도 아내가 씩씩하다. 가시리에는 가시천, 두리물천, 구성물천 세 하천이 가로지른다. 모두 가마리 포구에서 바닷물과 합쳐진다. 제주 하천은 대개 폭우 직후에 잠시 물이 흐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천으로 변해 늘 물이 귀하다. 가시천 길을 가다보면 하천을 건널 때도 있으나 물이 바닥에만 고여 있어 그냥 건너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비가 내리면 하천물이 요동을 칠 것이고 그에 대비해 자일을 양쪽으로 연결해 놓은 곳도 있다.

가시천

 

가시천길은 용암의 흐름을 원형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곳

가시천길에는 푸른 이끼가 깔린 바위들 사이로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구간도 있다. 화산활동 때 용암의 흐름을 원형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시천길도 흙길이어서 호젓하다. 숲도 우거져 어딜가나 그늘이다. 구간에 따라 어두침침한 원시림을 보여주고 아름드리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증언한다.

가시천 숲길

 

중간에 꽃머체와 행기머체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안내표시가 없어 모르고 지나쳤다. ‘머체’란 용암이 분출될 때 형성된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용암 위에 흙과 나무, 풀과 꽃 등이 덮여 독특한 모습을 나타낸다. 꽃머체는 바위 위에 꽃과 나무가 자란다고 해서, 행기머체는 바위 위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 용암 덩어리는 제주 탄생의 지질적 기록을 가진 증인이기도 하다.

다녀와 인터넷에서 관련 사진을 찾아보니 두 머체는 꼭 다녀와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도 가시천 갑마장길에 안내표시가 없어 지나치고 말았다. 이처럼 여행이란 다녀오고 나면 항상 뭔가 허전하다. 이번에 두 머체가 그랬고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의 분화구도 그랬다. 다음에 또 오라는 뜻일게다. 아쉬움은 여행의 또다른 매력 아닌가. 가시천을 걷다보면 조랑말체험공원 안내는 비교적 구체적이어서 놓칠 염려는 없다. 조랑말체험공원은 과거 갑마장이 있던 가시리 공동목장 자리에 들어서 있다. 제주 목축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리립(里立) 박물관인 ‘조랑말 박물관’, 조랑말을 직접 타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조랑말 승마장’이 있다.

행기머체

 

따라비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5시간이 흘렀다. 따라비 주차장 도착 후 영만형에게 “너무 멋진 곳을 알려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친구들에게 소개하겠다”고 하니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호젓함이 떨어질테니 알려주지 말라”고 농담으로 답한다.

 

▲따라비오름 외 다른 출발지는

따라비주차장으로 돌아와보니 유채꽃프라자나 큰사슴이오름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갑마장길이 궁금했다. 바로 그곳을 찾아가 살펴봤다. 녹산로를 주행하다보면 오른쪽에 유채꽃프라자 진입로가 나오고 다시 녹산로를 따라 1㎞ 정도 주행하면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주차장이 길가에 보인다.

유채꽃프라자 입구. 돌탑으로 만든 표지석 뒤 오른쪽에 가시천 입구가 있다.

 

유채꽃프라자를 들머리로 삼을 경우, 진입로 바로 오른쪽 공터에 주차한 후 가시천 숲길로 들어가면 된다. 진입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의 유채꽃프라자에 주차할 경우, 그곳에서 진입로로 되돌아 걸어나와 가시천으로 가거나 아니면 큰사슴이오름으로 올라갔다가 우리가 걸었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큰사슴이오름 주차장(정석항공관 주차장)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는 큰사슴이오름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대록산 둘레길을 이용해 유채꽃프라자를 거쳐 가시천으로 가거나, 큰사슴이오름으로 올라가 역시 우리가 걸었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아 따라비오름으로 향하면 된다. 모두가 순환코스이므로 주차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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