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카사노바는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수많은 여성을 탐닉한 감각파였고 낭만파였지만 그가 추구했던 지향점은 여성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자유였고 그의 촉수는 언제나 상류사회를 향했던 현실파였다. 18세에 법학박사를 받을만큼 뛰어난 두뇌, 40여 권의 저서를 저술한 박식함, 신학·자연과학·예능 등 다방면에 걸친 재능은 카사노바를 어느 한 곳에 묶어두지 않았다. 일생동안 한 여성의 남자가 되기를 거부했고 유럽 전역을 내 집 드나들 듯 떠돌아 다녔다. 교황 글레멘스 13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등 당대의 실력자들을 만나서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했고, 계몽사상가 볼테르를 만나서는 그의 사상을 반박했다.

넘치는 재능과 해박한 지식은 신분 상승을 위해 상류사회를 기웃거릴 때도 활용됐지만 여성들을 탐할 때도 동원됐다. 2m나 되는 큰 키와 남자다운 풍채를 겸비한 그를 여성들도 유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의 여성관은 자서전 서문에 드러나있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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