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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봐수까 ⑩] 따라비오름의 매력은 거친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억새밭과 관능적 능선 그리고 3개의 분화구

↑ 산마루에 오르면 분화구 능선이 빚어내는 관능적인 곡선이 눈길을 끈다.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따라비오름은

따라비오름은 제주도 동남쪽 중산간 마을인 표선면 가시리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고도 324m, 비고(순수 높이) 107m, 둘레 2,633m다. 제주도에서는 다랑쉬오름처럼 멋진 오름에 대해 ‘오름의 여왕’이라는 최고 칭호를 붙여주는데 따라비오름에도 이 칭호가 따라붙는다. 단 조건이 있다. 억새 무성한 가을에 한해서다. 그래서 따라비오름의 최고 경관은 제주 특유의 거친 바람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는 억새밭이다. 그것을 본 누군가 ‘오름의 여왕’으로 불렀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규모나 경관면에서 다랑쉬오름보다는 아래다.

따라비오름의 또 하나 매력은 분화구가 3개이고 봉우리가 6개라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모습은 제주도 오름 중에서는 유일하다. 용눈이오름도 3개의 분화구가 있지만 그곳은 한 개의 분화구가 세 칸으로 나뉘어진 분화구여서 독립된 3개의 분화구를 품고 있는 따라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 번째 매력은 능선의 관능적인 곡선미다. 이런 지질적 특성 말고도 시시각각 팔색조처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빛의 각도와 세기, 바람에 떠도는 구름의 조화에 따라 수시로 변신하면서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따라비는 ‘땅의 할애비’라는 뜻의 ‘따애비’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한자 이름이 지조악(地祖岳) 또는 지조봉(地祖峰)이다. 이름이 할애비이니 주변에 아들, 며느리, 손주가 없을리 없다. 큰아들을 뜻하는 장자오름과 작은아들인 새끼오름이 주변에 있고 모자(母子)처럼 생겨 며느리를 연상시키는 모지오름도 있다. 새끼오름은 따라비와 400m 쯤 떨어져있고 모지오름은 새끼오름과 1㎞쯤 거리를 두고 있다. 장자오름은 모지오름과 300m쯤 떨어져 있다. 손자를 뜻하는 손지오름은 1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들 자손 오름들은 해발고도가 높지는 않아 200~300m 정도다.

따라비오름과 주변 오름

 

■완만한 오름길과 관능적인 능선

따라비오름은 비교적 외진 곳에 있다. 표선면을 관통하는 1136도로에서 2.5㎞ 정도의 외길을 들어가야 주차장이 나온다. 언젠가부터 오름이 좋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데도 30~40대는 족히 주차할 정도로 주차장이 넓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두 번 모두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10여대는 되었다. 다만 과거에는 오름 아래에서부터 온통 억새로 출렁거렸다는데 최근에는 개발을 위해 입구쪽 억새들을 대부분 베어버려 약간 실망했다. 다행히 능선에는 늦가을인데도 억새들이 무성해 초입의 실망감을 위로해준다.

입구에는 제주도 오름에서 쉽게 목격되는 ‘ㄹ’자 목책이 처져있다. 이곳이 과거 갑마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갑마(甲馬)는 조선시대 최고 등급의 말이다. 따라서 갑마장은 조선시대 최고의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이다. 목책을 지나 300m 정도 걸어가면 오솔길이다. 오름에 오르기보다 오름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걷고 있지만 사실은 오르는 것이다. 오솔길을 지나면 나무계단과 야자매트가 완만한 오름길을 안내한다. 길 옆에선 억새들이 가을 햇살에 반짝이며 불어오는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오름길이 가파르긴 하나 짧은데다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렵지는 않다. 입구에서 쉬엄쉬엄 20분이면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 올라붙자마자 오름의 전체 윤곽이 한 눈에 드러난다. 말굽형태로 터진 3개의 분화구 바깥에 또다른 말굽형 분화구가 쌍으로 맞물려 전체적으로는 3개의 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는 모습이다.

따라비오름 오름길

 

따라비오름의 관능적인 능선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북쪽 새끼오름에 올라야

산마루에 오르면 분화구 능선이 빚어내는 관능적인 곡선이 눈길을 끈다. 제주 오름 중 곡선미는 용눈이오름을 최고로 치지만 따라비오름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선과 선이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고, 하나의 선이 또 다시 여러 선으로 나눠지는 독특한 모양새다. 이 때문에 다른 오름에서는 환(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산책로만 있으나 이곳에는 여러 산책로가 얽기설기 이어져 있다. 서있는 장소에 따라 분화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보이기도 하고 제각각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 수도 있고 대각으로 갈 수도 있다.

능선에는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가 두 곳 있다. 서쪽 전망대에서는 큰사슴이오름(대록산)과 10여개의 풍력발전기가 가까이 보이고, 멀리는 한라산 봉우리가 장관이다. 동쪽 전망대에서 보면 동부권 오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제주 바다도 펼쳐있다.

따라비오름 서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록산(큰사슴이오름)과 풍력발전기

 

억새는 능선은 물론이고 분화구 안쪽과 바깥쪽 모두를 덮고 있다. 쉬지않고 불어오는 제주도 바람 때문에 황금빛 억새가 좀처럼 쉬지 못하고 출렁거린다. 제주 억새는 보통 10월 중 만발하고 12월과 1월에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것은 이 즈음이다. 동서쪽을 잇는 능선 옆에 무덤 하나가 외로이 누워있다. 산담(무덤 주변에 울타리롤 쌓은 돌담) 안에 무덤과 봉분과 동자석이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무덤 양식이다. 가장 큰 분화구 안쪽 가운데에는 멀리서 보면 말똥처럼 보이는 몇 개의 붉은 화산 송이 돌탑이 덩그러니 서 있다. ‘송이’는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혼합물이 굳어 형성된 것을 말한다.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자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그 바람을 맞는 나도 억새의 하나가 된 듯 출렁거린다.

따라비오름 분화구. 바람이 거세다. 화산 ‘송이’가 마치 말똥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팁 하나. 따라비오름을 감상하는 거야 능선에 오르는 것이 첫 번째이지만 3개의 분화구가 만들어낸 곡선이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진면목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북쪽 새끼오름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곳까지 가는게 뭐하면 이(齒) 대신 잇몸이라고 능선에서 북쪽 삼나무숲길 쪽으로 내려가다 보이는 묘소에서 바라보아도 좋다.

2019년 11월 말에 다녀오고 2021년 4월 말 다시 따라비에 올랐을 때는 억새가 아니라 연초록이 반긴다. 4월 연초록도 가을 억새 못지 않게 인상적이다. 1년 중 보름 정도만 열리는 연초록의 향연 덕분이다. 봄인데도 바람은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저 아래에 풍력발전기가 있는 이유다. 바람에 머리털은 봉두난발이다. 머리 상태를 신경쓰지 않으니 바람이 자유를 선물한 셈이다.

멀리서 바라본 따라비오름(출처 제주도)

 

■쫄븐갑마장길

따라비오름은 트레킹 하기에 좋은 쫄븐갑마장길과도 연결된다. ‘쫄븐’은 ‘짧은’의 제주도 방언이다. 쫄븐갑마장길은 따라비오름에서 출발해 잣성, 큰사슴이오름, 유채꽃프라자, 가시천, 꽃머체, 헹기머체를 거쳐 따라비오름으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쉬엄쉬엄 4~5시간 정도 걸린다. 거리는 10.3㎞다. 잣성은 조선시대 ‘국마장(國馬場)’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인데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심어져있다. 현재 흔적이 남아있는 잣성길 거리는 2㎞다. 제주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쫄븐갑마장길 지도

 

■제주 토속음식 ‘몸국’

몸국은 제주도 토속음식 중 하나다. 몸은 해조류인 모자반의 제주도 말이다. 몸국은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 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느끼함이 줄어들고 독특한 맛이 우러나는데, 제주의 집안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이 국물에 국수를 말면 고기국수가 되고 순대를 넣으면 순댓국이 된다.

이 몸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따라비오름을 품고 있는 가시리의 ‘가시 식당’이다. 지나는 길에 있어 궁금해졌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가격이 적당해서인지 관광객 보다는 동네 주민들이나 직장인들이 많아 보인다. 몸국의 맛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국의 일종인 순댓국을 시켰는데 내 입맛이 문제인지 몸국 맛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첫 숟가락부터 혀와 뇌가 거부한다. 피 한 방울도 아까웠는지 선지를 너무 많이 넣어 텁텁하다. 심지어 피 비린내까지 느껴진다. 서울에서 익숙한 순대도 보이지 않는다. 가격은 착하지만 도무지 입에 댈 수 없다. 결국 두어숫가락 만에 손을 내려놓았다. 일행 중 특히 내가 심했다.

가시식당 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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