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세르게이 붑카의 장대높이뛰기 세계신기록, 26년(실외경기)·21년(실내경기) 만에 깨져… 옐레나 이신바예바의 세계신기록은 여전히 난공불락

↑ 세르게이 붑카(왼쪽)와 옐레나 이신바예바

 

by 김지지

 

일찍이 장대높이뛰기에서 세르게이 붑카(1963~ )만큼 오랫동안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없었다. 그는 ‘장대높이뛰기의 전설’이자 ‘신기록 제조기’였다. 그가 장대높이뛰기에서 세운 세계신기록은 20여 년 동안 난공불락이었고 한동안 깨지지 않았던 ‘마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이 실내경기(2014년)에 이어 실외경기까지 2022년 경신되면서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격언이 다시한번 확인되었다.

먼저 깨진 것은 1993년 2월 실내경기에서 기록한 6.15m의 세계신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2014년 2월 15일 6.16m를 기록함으로써 21년만에 구기록으로 물러났다. 라빌레니의 세계신기록은 다시 6년만인 2020년 2월 8일 6.17m를 기록한 스웨덴의 아먼드 듀플랜티스에 의해 깨졌다가 일주일만인 2월 15일 6.18m를 뛰어오른 듀플랜티스에 의해 또다시 경신되었다. 듀플랜티스는 이후에도 실내경기에서 6.17m(2022년 2월), 6.21m(2022년 7월)를 넘어서더니 2023년 2월 26일 6.22m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이 기록은 현재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실내경기 세계신기록이다.

듀플랜티스는 2020년 9월 17일 이탈리아 로마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 실외경기에서도 6.15m를 기록, 붑카의 종전 세계신기록(6.14m)마저 26년만에 깨뜨림으로써 명실공히 장대높이뛰기 세계 1인자로 부상했다. 듀플랜티스는 이후 실외경기에서도 6.21m를 넘어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다. 실내 역대 1~5위, 실외 역대 1~3위 기록도 모두 듀플랜티스가 주인공이다. 다만 옐레나 이신바예바(1982~ )가 2011년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세운 세계신기록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세르게이 붑카

 

6번 연속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상 차지하고 35차례 세계신기록 경신

붑카는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의 루한스크)에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어로는 이름이 세르히 나자로비치 부브카이지만 현역 초기 구소련을 대표해 국제경기에 참가했기 때문에 러시아어 이름인 세르게이 붑카로 세상에 알려졌다.

붑카가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살이던 1983년이었다. 그해 8월 제1회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5.70m의 기록으로 일약 세계 정상에 올랐는데 이것은 1997년까지 6회(1983년, 1987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7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거머쥐게될 시발점이었다. 1984년 5월 26일에는 생애 첫 세계신기록인 5.85m를 뛰어넘어 10년 넘게 이어질 독주체제를 채비했다. 한 해 동안 무려 7개의 세계신기록(실내 3회, 실외 4회)을 작성해 ‘신기록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1984년이었다. 붑카는 이후 세계신기록을 연이어 경신하며 장대높이뛰기의 신기록사를 새롭게 써나갔다.

9살 때 처음 폴을 잡고 성장 가도를 달리던 붑카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연습 중 오른발에 심한 골절상을 입어 의사로부터 선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최후 통보를 받은 1981년(18세)이었다. 하지만 같은 장대높이뛰기 선수였던 형이 “의사에게 속지 말고 자신에게 지지 말라”며 재기를 독려하자 붑카는 깁스한 다리는 어쩔 수 없더라도 상반신 트레이닝이라도 계속하겠다며 병실에서 아령과 역기를 들었다. 그렇게 1년간의 고통이 끝나고 퇴원했을 때 그의 팔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박차고 오를 수 있는 철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수십cm나 긴 폴을 사용하고 그립도 10여cm나 높이 잡았다. 이것은 183cm·80kg의 탄탄한 몸매, 100m를 10초2에 달리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근력을 바탕으로 한 붑카만의 장점이었고 세계기록 경신의 비결이었다.

세르게이 붑카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마의 6.0m 벽’을 세계 최초로 뛰어넘은 것은 1985년

붑카가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마의 6.0m 벽’을 세계 최초로 뛰어넘은 것은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한창이던 1985년 7월 13일이었다. 이후 그에게는 ‘인간새’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붑카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6번 연속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35차례(실외기록 17차례, 실내기록 18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는 사이 “붑카는 점프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을 날 뿐”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세계 장대높이계를 호령했다. 그는 세계신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도 자신의 기존 기록에서 1~2㎝만 높혀서 기록을 경신했다. 이 때문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것은 기록이 어떻든 무조건 신기록만 내면 포상하는 당시 소련의 포상금 정책 때문이었다.

붑카는 세계선수권대회를 6연패나 하면서도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5.90m로 금메달을 땄을 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컨디션 난조로 예선 탈락을 하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경기 직전 기권했다. 은퇴 무대로 삼았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도 예선 탈락했다.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7연패에 실패한 그였기에 기량보다는 세월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랜 비상을 끝내고 마침내 날개를 접어야 했다. 그날은 고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장대높이뛰기대회를 끝내고 은퇴식이 열린 2001년 2월 5일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세계는 붑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해 붑카를 감동시켰다.

실외 세계신기록(6.14m, 1994.7.31)을 세웠을 당시 모습

 

장대높이뛰기는 ‘육상의 종합선물세트’

장대높이뛰기는 ‘육상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린다. 그만큼 다양한 근력이나 순발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장대높이뛰기는 상체와 하체의 협응, 스피드, 민첩성, 근력, 유연성 등 육상 종목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춰야 가능한 종목이다. 단거리 선수의 스피드(도움닫기)가 필요한가 하면 높이뛰기 선수와 멀리뛰기 선수의 도약력(구르기)을 요구한다. 체조 선수와 같은 균형감(공중자세)은 물론 포환·해머·원반·창던지기와 같은 투척 선수의 악력과 마무리 자세(낙하)도 필요하다.

장대높이뛰기 기록은 어느 장대를 썼느냐에 따라 다르다. 20세기 초까지는 골프채의 샤프트로 쓰이던 히커리나무(서양호두나무)나 회초리로 주로 쓰던 물푸레나무가 쓰였다. 하지만 그런 장대들은 탄력이 거의 없어 당시 남자 세계 최고기록은 3.55m에 불과했다. 그 후 등장한 일본산 대나무로 만든 장대는 기록을 4.77m까지 높여주었다. 일본산 대나무를 대신한 알루미늄 장대가 나온 것은 1940년대 중반이었다. 알루미늄 장대는 1960년까지 사용되며 4.88m의 기록을 세워주었다. 오늘날 주로 사용되는 유리섬유나 탄소섬유는 1960년대 초반 등장해 붑카 같은 선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신기록사는 이신바예바의 독무대

옐레나 이신바예바(1982~ )는 러시아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체조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15살 때인 1997년 몸집이 너무 커져 체조를 할 수 없게 되자 장대높이뛰기로 종목을 바꿨다. 여자선수로는 키(174㎝)가 크고 체중(65㎏)이 많이 나갔지만 체조로 단련된 몸 덕분에 바를 넘는 그녀의 몸은 누구보다도 유연하고 근력도 뛰어났다.

그녀가 17살의 나이로 세계 육상계를 놀라게 한 것은 4.82m를 뛰어넘어 자신의 첫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2003년 7월 14일이었다. 이때 이후 여자 장대높이뛰기 신기록사는 이신바예바의 독무대였다. 2004년 아네테 올림픽에서도 세계신기록(4.91m)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5년과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도 제패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30여 차례의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빼앗기지 않았다.

옐레나 이신바예바

 

2005년 7월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의 6m보다 더 힘들다는 ‘마의 5m 벽’(5.00m)을 깨뜨리고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는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인간새’ 붑카에 빗대어 ‘미녀새’로 불렀다. 이신바예바는 육상 종목 중 비교적 밋밋했던 여자 장대높이뛰기를 ‘볼거리가 있는 아름다운 종목’으로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이신바예바가 공중을 넘나드는 멋진 몸짓은 여자 체조 그 이상이었다.

그녀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은 5.06m를 뛰어넘은 2009년 8월 28일, 스위스 취리히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 그후에는 5m에도 근접조차 못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4.65m로 6위에 그쳤다. 그러자 ‘이신바예바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한동안 무성했다.

그러나 2012년 2월 24일 스톡홀름 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5.01m을 넘어 실내경기 세계신기록을 수립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이 기록은 그의 28번째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70m의 저조한 기록으로 동메달에 그치게 되자 현지 언론이 앞다퉈 “드디어 이신바예바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신바예바는 2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차지하자 아름다운 퇴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전으로 목표를 바꿨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딴 후 은퇴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옐레나 이신바예바

 

그러나 2016년 올림픽 개막 전, IAAF(국제육상경기연맹)가 국가 주도 도핑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 육상팀 전원에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의결함으로써 마지막 올림픽 참가는 무산되었다. IAAF가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선수에 대해선 개인 자격으로 오륜기를 달고 출전하도록 하고 이신바예프는 약물 복용 증거가 없어 참가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를 달고 올림픽에 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면서 은퇴의사를 밝혔다.

그때까지 이신바예바는 모두 28차례(실외경기 15차례, 실내경기 13차례)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실외기록(5.06m)과 실내기록(5.01m) 모두 이신바예바가 보유하고 있다. 2016년 8월 한국의 유승민과 함께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되어 스포츠행정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현재 한국신기록은 2019년 8월 수립된 5.75m(남자)와 2012년 5월 수립된 4.41m(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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