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때 미국의 참전을 부른 결정적인 두 요인 가운데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독일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짐머만 전문(電文) 사건’은 독일의 운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 사건이었다. 전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독일은 U보트를 이용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등에서 연합군에 보내오는 보급선을 막으면 6개월 내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유일한 관건은 미국의 참전을 막는 길 뿐이었다. 그 때 전문사건이 터진 것이다.
1917년 1월 17일 영국 정보부의 암호 해독 요원은 전날 가로챈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이 워싱턴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암호 전문을 해독하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전문에는, 미국이 곧 시작될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맞서 참전할 경우 멕시코가 독일 동맹국으로 가담해준다면 그 대가로 1848년 미국에 잃었던 뉴멕시코·애리조나·텍사스 등 전(前) 멕시코 땅을 되돌려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예정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2월 1일 시작됐다. 이때만해도 미국은 전문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 미국인들은 전쟁에 무관심했고 윌슨 대통령 역시 전쟁 불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2월 24일 전문이 미 국무부에 전달되자 중립노선을 견지해온 윌슨 대통령은 격노했다. 전문을 미국의 안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한 윌슨은 이튿날 의회에 미국 상선을 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요청했다. 3월 1일에는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전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75%의 미국인이 참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자 4월 2일 미국은 참전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