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일본 영토가 됐고, 이때 결사항전한 의병들의 전적비가 도처에 있다”며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
10여일 뒤 31명의 우리 의원이 ‘대마도 반환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일본을 더욱 압박했다. 대마도 요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대응책과 장차 있을 한일회담에서 일본의 콧대를 꺾으려는 엄포용의 성격이 강했지만 회견 소식을 접한 일본의 요시다 총리는 혼비백산 맥아더 사령관에게 달려가 하소연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해방이 돼 1945년 9월 귀국을 서두르자 대마도는 내 줄 수 있어도 우장춘은 내줄 수 없다”며 귀국을 만류했다는 일본 정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