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궤도이탈이 반복됐다.

하지만 갓 출범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했고, 일본은 한참 달아오른 진무경기(神武景氣)를 이어갈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소련·중국과의 ‘반공블럭’이 절실했던 미국으로서도 양국의 안정은 시급한 과제였다. 양국은 졸속이나마 비밀각서인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타결했지만 학생과 야당의 거센 반발로 박 대통령은 공식채널을 재가동해야했다.

본회담에서는 ‘대일청구권문제’가 논란이 됐다. 줄다리기 끝에 총6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로 매듭지어졌지만 양국 모두 불만이었다. 35년 간의 피해보상액으로는 너무 적다는 것이 한국인의 불만이었다면, 일본의 당시 외환보유고(18억 달러)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일본인의 정서였다. 1965년 6월 22일, 양국은 마침내 한·일기본조약과 4개 부속의정서에 서명하고 새로운 동반자의 길을 준비했다. 이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상습적인 대일무역적자에 시달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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