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독립협회 강제 해산

1898년 12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였던 ‘독립협회’가 고종의 만민공동회 금지령과 함께 사실상 해산됐다. 독립협회가 출범 초기와는 달리 점차 급진적인 정치단체로 선회하면서 고종의 위기 의식이 폭발한 것이 해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이 11년 만에 귀국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개혁사상으로 민중을 지도·계발하여 자각된 민중의 힘으로 조국을 ‘자주독립의 완전한 국가’로 만든다는 취지로 1896년 7월 2일 창립됐었다. 명분은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이었다. 초기의 독립협회는 개혁인사와 고급관료들의 사교모임 수준이었으나, 독립신문이 보수파 정권의 외세의존정책을 비판하면서 점차 개혁파 관료들과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민중적 사회단체로 변모했다.

만민공동회 개최를 시작으로 민중이 국왕과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민권 투쟁기로 접어들자, 수세에 몰린 보수세력은 “독립협회가 고종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세우려한다”는 설을 퍼뜨리며 이상재·남궁억 등 17명의 독립협회 요인들을 체포했다. 독립협회는 회원을 총동원하여 석방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시켜 보부상 수천 명을 서울에 불러들여 독립협회 회원들에게 테러를 가하게 하여 유혈사태를 빚었다.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 활동을 반체제운동으로 단정하고, “처음에는 충군한다, 애국한다 하여 그 뜻이 좋았으나 결국패륜하고 난국함에 의구심이 생겼다”는 칙어와 함께 민회금압령을 내려 독립협회 활동을 중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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