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세계는 전쟁방지와 세계질서 재편에 총력을 쏟는다. 피폐된 경제를 부흥시키고 교역을 확대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였다. 세계는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해답을 찾았다. 1944년 7월 1일부터 22일까지 44개국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연합국 통화금융회의’를 열고 머리를 맞댄 결과,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와 IMF(국제통화기금) 창설을 결정했다. 환율을 안정시켜 자유무역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IMF가, 경제부흥과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IBRD가 필요하다는데 각국은 의견을 같이했다.
관심은 다시 어느 나라를 중심축으로 삼는가로 모아졌다. 달러를 중심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화이트안(案)’과 파운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영국의 ‘케인스안’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쪽은 미국이었다. 달러를 세계의 중심 통화로 삼고 각국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도가 채택됐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공식 출범한 것은 1945년 12월 27일 각국의 비준을 거친 후였다. 하지만 미국의 국제수지적자와 달러화의 신인도 저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 각국은 1973년에 고정환율제를 포기해야했다. IMF도 이 여파로 존립기반이 흔들렸으나 제1차 오일쇼크로 외환부족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 겨우 회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