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일성의 당·정 1인체제를 더욱 강화한 북한 주석제 채택

1972년은 남북한 양쪽에서 1인 지배체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린 특별한 해이다. 특히 12월 27일과 28일은 남한의 ‘유신(維新)’과 북한의 ‘유일(唯一)’이 연이어 태어난 날이다. 이 날 남한에서는 유신헌법 공포와 함께 제4공화국이 출범했고, 북한에서는 주석제를 골자로 한 새로운 사회주의 헌법이 채택됐다. 상호 묵인 하에 남북한 양쪽이 절대권력구조를 완성하는데 사용한 지렛대는 7·4남북공동성명이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공동성명 발표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뒤 ‘유신’과 ‘유일’이라는 기만적인 쌍둥이를 잉태했다. ‘적과의 동침’을 통해 자신들의 실리를 챙긴 것이다.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통해 영구집권을 꾀했고, 김일성은 유일체제를 완성해 아들 김정일로의 권력승계를 본격화했다. 유신체제가 조국의 평화적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면 유일사상의 골격을 이룬 주석제는 조국통일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기치로 내걸었다. 1972년 12월 2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1948년 제정된 구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했다. 광복 이후 줄곧 유지해온 내각제 형태의 수상제를 버리고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주석제를 새롭게 도입한 것이다. 이로써 김일성은 당 최고직책인 당총서기를 보유한 채 국가 주석까지 겸직함으로써 당·정 1인체제를 더욱 강화시킬수 있었다.

김일성이 주석제라는 새로운 권력구조를 탄생시킬수 있었던 것은 광복 이후 수차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해온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김일성은 1950년대 초 남로당계 숙청을 시작으로 1956년 ‘8월 종파사건’, 1967년 갑산파 제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권력투쟁을 통해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주석제는 아들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도 짙었다. 주석직 채택을 기점으로 김일성의 관심이 1972년 이전의 과제였던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에서 ‘혁명의 지속성 확보’라는 문제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복 후 1972년까지가 권력장악과 그 공고화를 위한 투쟁기였다면 후반기는 후계자 김정일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투쟁기였다. 주석제가 분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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